- 오십이라는 나이에 비로소 보이는 것들
아득하기만 했던 숫자 50, 눈앞의 것만 바라보기 급급했던 20대였고 아이들을 키우며 치열하게 보낸 30대를 지나 어느덧 준비 없이 40대를 맞이했고, 인생의 반환점 같은 50대에 다 달랐다. 모든 시간이 빠르게 재생되는 필름처럼 스쳐 지나갔다
오십이라는 나이를 맞이하면 뭔가 대단한 어른이 되어 있을 것 같았는데 사실은 어제와 다르지 않은 나를 마주하고 있다. 막연했지만 그래도 무언가 두려움과 걱정이 앞서는 마음에 오십을 품고 있는 책들을 서둘러 읽어보기 시작했던 40대의 마지막 여름이 있었다.
생각보다 반백년을 맞이하는 어른들의 마음은 다 비슷한지 관련 책들이 꽤나 눈에 많이 밟혔다
'오십에 읽는 장자'부터 시작해서 순자, 사기, 손자병법, 맹자, 논어에 이르기까지 오십의 시리즈물들은 빠르게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어쩌다 내가 벌써 오십이 되었지?" 한숨을 가늘게 내쉬며, 생각과 마음은 그저 젊은이들 틈에 끼어 있어도 크게 다르지 않다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하지만 탄력을 잃어가는 피부와 어느새 검은 머리카락의 지분이 줄어들고 있는 현실, 점점 핸드폰을 볼 때 팔을 쭉 뻗거나 쓰고 있던 안경을 벗는 횟수가 증가하고 있다. 신체의 변화가 이제 당신은 노년의 세계에 입문했습니다! 하고 알림을 던져주고 있다. 아이들이 커가는 속도 보다 내가 나이 들어가는 속도의 체감이 더 짙은 건 나이 듦에 대한 서글픔이 큰 탓이겠지....
1. 손에 쥔 것보다 놓아야 할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문득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간 건 신호대기 중 낡은 건물에 쓸쓸하게 붙어 있던 '유품 정리해 드립니다'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왔을 때였다. 지금 나는 살아온 날 보다 살아갈 날들의 시간이 더 적게 남아 있는 지점에 서있다. 어느 날 갑자기 죽는다 해도 억울할 건 별로 없는 그런 숫자의 나이다. (아빠가 32살, 엄마가 44살의 나이에 돌아가셔서 그런지 50이라는 나이가 굉장히 오래 산 것 같은 느낌이다. 나의 부모님에 비해서 말이다)
내가 죽고 나서 아이들이 유품을 정리하면서 행여 무슨 쓸데없는 물건이 이렇게 많아하면서 힘들지 않을까?
그래서 대행업체에 돈을 지불해 가면서까지 정리를 맡기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부터 소유한 물건들을 줄여나가기 시작했다. 최소한의 물건으로 살아가기 충분한 일상을 가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면서 소비에 대한 나름의 철학이 생겼고, 미니멀한 환경이 만들어졌다.
이제는 소유하는 것보다 비움에 포커스가 맞춰진 것이다. 나이 오십에....
2. 건강 자산에 투자하는 시간을 확보하기 시작했다
급격하게 늘어난 요양원들을 보면서, 나이 들어서 스스로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는 상태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기 시작했다. 단순한 삶이 어쩌면 우리가 최종 다다르는 목적지가 아닐까 싶다. 거창한 목표와 빼곡한 실행리스트들 속에서 숨 가쁘게 살아가면서 잊고 사는지도 모른다.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볼 때마다 그들의 젊은 날이 스쳐 지나간다. 자신의 건강 보다 분명 더 중요한 것에 몰두하며 보낸 시간들이 복기된다. 나의 부모님들도 그랬다. 건강을 챙기기보다는 먹고사는 문제에 더 빠져있었고, 결국 새드앤딩으로 끝나버린 삶의 마지막 씬에서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
40대에 비로소 운동이라는 걸 맛보았다. 초등학교 때부터 체육시간을 너무 싫어했고 동적 활동 자체를 힘들어했다. 덕분에 유연성이라고는 1도 없는 뻗뻗하게 굳은 몸을 얻었고, 운동은 내 삶에 편승할 수 없는 단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동을 하기 시작한 건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었고 보다 인간적인 노후 삶을 위해 필수적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다. 난생처음 돈을 주고 배우기 시작한 운동 종목은 스피닝이었고, 코로나 시국을 맞이하면서 달리기에 입문했다. 다리 부상 이슈가 발생하면서 또 다른 종목을 찾아 헤맸고 수영에 발을 담그게 되었다. 그렇게 지금까지 달리기와 수영은 건강 자산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비싼 고급 승용차를 타는 것보다 근육질의 튼튼한 다리를 가진 사람이 더 부럽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이 오십에....
3. 관계의 중요성과 가까이해야 할 사람, 멀리 해야 할 사람이 보이기 시작했다
경제적인 풍요로움과 넉넉함은 가졌으나 주변에 사람이 없는 사람들의 특징이 있다. 그들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없다. 예의도 없다. 자기밖에 모른다. 돈도 시간적 여유도 이루었는데 함께할 사람이 없다. 얼마나 슬픈 일인가? 밥을 같이 먹자고, 차를 한잔 하자고 해도 피하기 일쑤다. 인생의 결과물 중 가장 값진 것이 있다면 나와 뜻이 맞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풍요로운 사람일 것이다.
빛나는 사람이 있다. 선명한 취향을 소유하고 있으며 그 취향을 함께하는 사람들과 건강한 일상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예전에는 그렇게 살았다. 싫어도 좋은 척 괜찮은 척 말이다. 괜히 관계가 안 좋은 게 싫고 두루두루 좋은 사람이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결이 맞지 않은 사람들과 굳이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싫다는 표현을 분명하게 하고 선을 긋고 산다.
A 씨는 인색하다. 사람을 봐도 눈을 맞추며 인사하지 않는다. 물 한잔 내어 주지 않는다. 늘 빈손으로 방문한다. 아무리 인생의 성과를 이루었지만, 마음이 가난한 A 씨의 주변에는 진정 함께하는 사람이 없다. 뒤돌아서서 다 얼굴을 찌푸린다. 같이 있으면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면 과감히 관계를 정리하는 게 옳다.
인생은 짧고 나에게 주어진 시간 또한 한정적이기 때문이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이 오십에....
10년 지기 직장 후배였었고, 지금은 두 딸의 엄마로 살아가는 인생의 후배가 "50대에 펼쳐질 화려하고도 잔잔한 인생을 응원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카드와 함께 샤넬립스틱을 보내왔다, 오십의 첫 생일날!
인생의 하프지점을 통과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풀코스 완주까지 무라카미 하루키가 말했듯 '적어도 마지막까지 걷지는 않겠다'는 다짐을 함께 복창한다.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는, 적어도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결과물 앞에 서겠다는 다짐일 게다.
어느덧 서게 된 오십의 또 다른 출발선에서, 지금까지 팽팽했던 마음선이 조금은 힘을 빼도 괜찮다고 말해준다. 힘을 빼는데 오십 년이 걸린 것이다. 그러면서 유연한 사고와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다. 계절이 주는 감사함과 친절함을 베푸는 넉넉한 마음, 건강한 일상 등이 시선에 걸린다.
노년기에 입문했다. 아직 나의 뇌는 번뜩이고 피는 뜨겁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고전 어록이 새삼 가슴 절절하게 다가온다. 접영 자세를 완벽하게 하고 싶고 풀코스 마라톤도 완주하고 싶고 하고 싶은 게 많은 노년기의 새내기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흔적들이 한치의 거짓 없이 내 몸에 고스란히 기록되었다. 때론 통증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다시 되돌리기 버튼이 없으니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젊은 날 하이힐을 즐겨 신었고,
오래 서있거나 오래 앉아있는 생활 패턴으로 나의 다리 정맥은 비정상적으로 늘어나고 고장 났다. 이렇듯 거짓 없는 내 몸 사용 성적표 앞에 숙연해진다. 좀 더 신경 쓰고 살걸 뒤늦은 후회 보다, 오래도록 고장 나지 않게 빠르게 수리하는 편이 속편 하다. 지금부터라도 조금 더 아끼고 사랑하면서 나의 몸을 혹사시키지 않아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더 건강한 노년의 라이프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