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30, 대한민국 고3들에게 하얀 촛대의 기원을!

by 하늘진주

D-30, 이제 올해 수능일까지 30일이 남았다. 벌써부터 신문에서는 수험생들의 시험 컨디션 조절법, 수험생들의 음식, 가족들이 유의할 사항에 대해 상세히 열려주고 있다. 수능일은 가족 중에 고3 수험생들이 없는 사람들마저도 그 큰일을 치를 수험생들을 생각하며 마음을 졸이며 응원하게 만든다. 물론 주위에서 아무리 마음을 헤아려 준다고 해도 고3 수험생들의 심정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저 본인들이 예전에 겪었던 그 긴장감을 생각하며 미루어 짐작해 볼 뿐이다.


수능일을 생각하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장면이 하나 있다. 해가 뜨지 않는 어둑어둑한 새벽녘, 까만 유리 탁자 위에 놓인 하얀 생쌀이 담긴 밥공기, 그 속에는 역시 하얀 초가 가냘프게 불꽃을 피워대며 흔들리고 있다. 친정어머니는 집안에 중요한 시험이 있을 때면 항상 하얀 밥공기에 흰 쌀을 가득 채운 후 기다란 하얀 초를 세워 불을 밝혔다. 아침부터 모든 일이 끝나는 저녁까지 그 불은 계속 꺼지지 않고 아슬아슬하게 켜져 있었다.


내 인생에서 맞았던 가장 첫 시험, 수능. 그날도 역시 ‘수능일 날씨의 징크스’처럼 11월답지 않게 무척 춥고 차가운 공기가 감돌던 아침이었다. 떨리고 긴장된 마음으로 현관문을 나서는데, 역시 그날도 어머니가 새벽부터 피워두신 하얀 촛불이 보였다. ‘저 촛불이 꺼지면 어떡하지?’라는 두려움으로 잠시 바라보다 수능장으로 향했다. 수능장이었던 학교의 교문은 수많은 인파가 둘러싸고 있었다. 무척 떠들썩한 풍경이었지만, 사실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수험장인 교실에 들어서고 수험번호를 기입하고 나니 온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그때 점심으로 먹었던 도시락의 흰쌀밥은 무척 차가웠고 목구멍 너머로 잘 넘어가지도 않았다. 분명 친정어머니가 수능을 볼 딸내미를 위해서 보온 도시락에 따끈한 쌀밥과 맛있는 반찬을 골라서 넣어주셨을 텐데, 참 신통한 일이었다.


집에 돌아오니 다행스럽게도 하얀 쌀 위에 하얀 촛대는 여전히 불을 밝히고 있었다. 그날 어머니는 시험을 보는 딸을 위해 하루 월차를 내셨다. 아침 일찍부터 어머니는 초에 불을 켜고 수능을 보고 올 딸을 기다리며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어머니는 큰일이 있을 때마다 그런 방식으로 속에 들끓는 불안을 잠재웠다. 가끔 켜 두신 초의 불이 꺼지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 무척 궁금했지만, 물어본 적은 없다. 막연히 촛불을 끄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초가 켜져 있는 날이면 조심히 그 옆을 지나쳤다. 오빠가 시험을 칠 때도, 내가 시험을 칠 때도, 동생들이 각각 수능장에 갈 때도 우리 집에는 항상 촛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엄마의 지극한 정성 때문인지, 촛불의 영험스러운 효과 때문인지 우리 형제들은 무사히 대학에 진학했고 성인이 되었다. 뭐 사실, 그런 어머니의 정성스러운 마음이 수능 성적에 큰 효과를 봤는지는 모르겠다. 각자 공부한 만큼 성적이 나왔고 성적에 맞춰 학교에 갔다. 아마도 고3 수험생 시절을 치열하게 보낸 사람은 성적이 잘 나왔고, 아닌 사람은 다시 돌아오지 못할 그 시간을 후회하며 만족스러운 현실을 만들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다. 이른바, 나와 같은 사람 말이다.


예전에 늦가을의 공원을 지나며 시간의 모래시계 병들이 달그락거리며 돌아다니는 상상을 한 적이 있다. 그때도 지금처럼 알록달록한 낙엽이 지고 스산한 바람이 여기저기 불던 시기였다. 같은 시간대, 같은 공간이지만 다양한 사람들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모습이 꼭 모래시계처럼 느껴졌다. 채워지고 비워지고, 때로는 노란 불빛에 환하게 모래들이 반짝였다가 우울한 찬바람에 침침한 회색빛 모래색으로 변했다.


수능은 십대 인생을 마무리하는 시험이자 성인이 되는 관문의 첫 시험이다. 분명히 이 수능이 너무도 중요한 시험임은 분명하지만, 그 한 번의 결과만으로 모든 인생의 일이 결정된다고 여기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수능 점수를 잘 받느냐에 따라서 앞으로 가질 기회의 양이 다르고 만나는 사람들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수능을 못 봤다고 해서 인생이 ‘폭삭’ 망하지는 않는다. 앞으로도 자기만의 인생의 모래를 채우고, 비우며 그렇게 살면 된다. 서로가 위로하고 격려하며 수능일을 잘 치렀으면 좋겠다. 대한민국 고3들, 힘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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