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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Feb 21. 2024

2024년 입시제도의 끝자락에서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마음이 콩닥콩닥 뛰고 피가 바짝바짝 마른다. 큰애 녀석은 추가합격 전화가 예정된 며칠 전부터 매일 “될까요? 떨어졌을까요? 나까지 올까요?”라며 독백하기 시작한다. 가고 싶었던 과의 예비 번호를 받은 순간부터 시작된 변화이다.


 2023년 11월 수능에서 기대했던 성적을 받지 못한 아들은 피 말리는 고민과 눈치작전 끝에 가군, 나군, 다군에 각각 원서를 넣었다. 점점 피폐해지는 큰 애를 보며 수시 제도를 좀 더 활용하지 못했던 나의 어리석음을 무척이나 후회했다. 아들은 고1 학년 때부터 고3 학년 때까지 힘들게 학교 내신을 챙기는 동시에 전국 모의고사에서도 대부분 과목에서 1등급을 받았다. 그런 아들의 성적을 믿었기에 정시를 참 만만하게 여겼다. 큰 애가 원하는 과를 지원하기에는 학교 내신이 살짝 부족해도 정시에서 원서를 쓰기만 하면 무조건 ‘합격’하리라 믿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자기 꿈을 이루기 위해 수시에 매진할 때도 “우리 애는 정시로 원하는 학과에 갈 거예요”라고 조심스레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막상 고3 입시를 치르고 보니 ‘수시 카드’를 버리고 무조건 ‘정시 카드’에 몰방하는 전략은 정말이지 어리석었다. 이런 무모한 행동은 언제 탈지 모르는 불씨를 짊어지고 화약고로 뛰어드는 일이었다. 그런 전략이 생각대로 잘 이루어져 불길이 활활 잘 탄다면 다행이었다. 하지만, 더 좋은 불씨를 가진 누군가에게 잡히거나 아니면 아들이 가진 불씨가 닿기회조차 없어진다면 ‘말짱 도루묵’인 상황이었다. 한마디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입시제도에서 ‘정시 카드’만 고집해야 하는 경우는 수능 당일 ‘찍기 신’이 왕림할 수 있는 ‘아주 운 좋은 수험생’이거나 어떤 시험 난이도와 상황이 있어도 흔들리지 않을 ‘절대적으로 담대한 실력자’에게만 가능한 일이었다.


 안타깝게도 우리 큰애는 그 두 경우가 모두 허용되지 않았다. 작년 6월 입시제도가 수능 난이도 문제로 이리저리 뒤집힐 때부터 아들의 마음은 이리저리 바람에 이는 낙엽처럼 흔들렸다가 가까스로 본래의 수험생 초심을 다지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리고, 아들의 너무도 중요한 수능 날, 긴장감에, 혹은 다른 이유로 아들은 수학에서 기대했던 점수를 받지 못했다. 그 녀석의 학교에서 전해오는 행운의 전설도 아들을 비껴갔다. 수능 때 찍는 문제들이 다 맞아 모의고사 ‘3등급’만 받던 고등학교 선배가 ‘1등급’으로 S대의 원하는 학과를 골라 갔다는 이야기이다. 어휴, 수능 신이여, 이왕이면 우리 아들 녀석에게도 찍기 운을 나눠주시지.


 다행히 정시 나군에서 안정지향으로 한 대학의 일반학과에 원서를 넣어 최초 합격을 받은 상태였다. 문제는 아들의 변치 않은 메디컬 사랑이다. 안정을 지향하는 큰 애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일찌감치 ‘약대’로 진로를 정했다. 의대는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책임질 만한 깜냥’이 안된다며 바로 포기했고, 공대는 학교에서 ‘물리’를 선택과목으로 선택하지 않아 원서를 쓰기에는 좀 제약이 있었다. 그나마 생명과학에 관심이 많아 일찌감치 약대 쪽으로 진로를 틀어 열심히 공부했다. 하지만, 문제는 이 계열도 의대 못지않게 숨겨진 경쟁자들이 어마어마하다는 사실이다.


 아들은 정시 원서를 준비하며 쓰기만 하면 합격할 수 있을 것 같은 가군과 다군의 쟁쟁한 대학의 일반학과를 과감히 포기했다. 그리고 원래 목표했던 대학보다 낮춰서 가군과 다군의 약대에 원서를 집어넣었다. 문제는 그런 전략을 지닌 수험생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덕분에 아들은 매일매일을 피 말리는 심정으로 입시 현황판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엄마, 전화 올까요? 말까요? 내 앞에서 문 닫히면 어쩌죠?”라는 말하면서 말이다.


 그런 아들을 보면서 함께 덜덜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다가도 고민에 휩싸였다. 솔직히 아들이 정시 원서를 쓸 때 불만이 많았다. 소위 옛날 사람인 나는 안정적인 약대도 좋지만, 그보다는 화려한 대학 간판에 먼저 눈길이 쏠렸다. 그래서 아들이 이제는 ‘약대’에 대한 미련을 접고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명문대에 입학하기만을 바랐다. 그동안 큰 애가 공부에 투자했던 처절한 노력과 시간을 생각하면 그 정도는 보상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항상 나 역시도 명문대생의 엄마로 주위 사람들에게 자랑하며 지내고 싶었다. 하지만 아들은 단호했다. 화려한 대학 간판보다는 원하는 학과가 있는 대학에서 공부하기를 원했다. 그것이 바로 이미 합격한 좋은 대학이 있는 데도 이토록 가슴 떨리게 추가합격 전화를 기다리고 있는 이유였다.


 이제 좀 있으면 모든 입시 일정이 마무리된다. 더 이상 지원했던 약대에서 추가합격 전화가 오지 않는다면 이제는 포기하고 아들은 최초 합격한 대학의 일반학과에서 다른 삶을 시작해야 한다. 아들은 매일 초조해하며 진학사의 입시 현황판만 바라본다. 만일 그 녀석 앞에서 원했던 약대의 문이 닫히면 어쩌지? 그러면 난 아들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 할까?




 '인간만사 새옹지마'라는 말이 너무 실감이 나는 며칠이었다. 이 글귀는 '인간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새옹지마이니 눈앞에 벌어지는 결과만을 가지고 너무 연연하지 말아라.’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동안 추가합격 전화를 받지 못해 눈물을 글썽이던 아들을 바라보며 무척 속이 상했다. 이미 최초 합격한 다른 A 대학이 있었지만, 가고 싶은 과가 아니었기에 아들은 너무 침울한 상태였다. 그 녀석은 좀비처럼 마지못해 수강 신청 과목을 A 대학 장바구니에 집어넣고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기다리던 학교에서 전화가 왔고, 아들은 엄청나게 반색하며 "무조건 대학 등록한다"라고 외쳤다.


 그런 아들을 보니 참 기분이 묘했다. 솔직히 그동안 시무룩한 아들 때문에 속상하긴 해도 내심 최초 합격한 학교에 포기하고 다니길 원했다. 그 녀석이 최초 합격한 학교는 누구나 알아주는 소위 명문 대학이었다. 비록 아들이 공부하고 싶은 과가 아닌 것은 알아도, '명문대에 아들을 보낸 엄마'라는 타이틀을 달고 싶은 욕심을 포기하기가 참 어려웠다.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다고 했던가, 추가합격 전화를 받고서야 비로소 환해진 아들의 얼굴을 보며 애써 내 욕심을 밀어 넣었다.


 아무튼 참 정신없고 신기한 입시 끝자락이었다. 이번 일을 겪으며 두 가지는 확실히 배웠다. 첫째, 눈앞의 일 때문에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는 것, 둘째, 엄마 욕심보다는 아들의 선택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 이제는 발 뻗고 편하게 잘 수 있겠다.



“행복의 한쪽 문이 닫힐 때 다른 한쪽 문은 열린다. 하지만 우리는 그 닫힌 문만 오래 바라보느라 우리에게 열린 다른 문을 못 보곤 한다."

헬렌 켈러의 말이 떠오르는 나날이다.



이제는 큰 애의 고3 스토리는 마무리합니다.

내년에 공부 싫어하는 둘째의 고3 이야기로 다시 찾아올게요.


그동안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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