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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Apr 12. 2024

점점 꼰대가 되고 있지만, 꼰대가 되기 싫은...

며칠째 큰 애와의 지난 대화가 떠올라 계속 기분이 나쁘다. 사실 아들과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수요일 22대 국회의원 투표를 끝마친 후, 나는 나대로 알찬 시간을 보냈고, 대학 새내기 아들은 학교 일정을 마친 후 친구와 술 한잔 하며 즐겁게 지냈다. 저녁 무렵 느지막이 들어온 그 녀석의 상기된 얼굴을 보며 문득 이번 선거에서 어떤 후보와 정당을 선택을 뽑았을지 무척 궁금했다. 큰 애는 선거일 이전, 미리 사전 투표를 마친 이후 본인의 선택에 대해서는 계속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아들, 사전 투표 때 누굴 뽑았어?”

 솔직히 이런 민감한 질문을 할 때는 우리 아들만은 엄마에게 솔직하게 투표 선택을 말해 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평소 우리의 모자 사이의 ‘친한’ 관계만 생각해도, ‘순순히’, ‘너무도 잘’, ‘자상하게’ 말해 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녀석의 반응은 너무도 달랐다.

 “어, 그걸 왜 궁금해 하세요? 비밀투표인 것 아시잖아요.”

 라며 매정하게 말하기를 거부했다. ‘어,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혹시 아들이 장난을 치나 싶어 다시 상냥하게 물었다.


 “알지. 그래도 이미 투표를 끝냈는데 말할 수는 있잖아.”

 “안 돼요! 비밀투표의 자유는 헌법에도 명시가 되어 있어요.”

 “이 녀석이! 그래도 ‘효(孝)’가 ‘충(忠)’보다 앞설 수 있잖아.”

 “당연히 안되죠. 조선 시대는 이미 예전에 끝났다고요.”


 그리고는 아들은 끝내 본인의 선택을 말하지 않았다. 사실, 그 녀석에게 이런 질문을 던질 때는 아주 약간의 호기심이었다. 요즘 젊은 20대, 그것도 첫 투표를 하는 어린 유권자들은 어떤 당과 후보를 선택할지 궁금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매정할 정도로 단호하게 거부하는 아들의 반응을 보니 왠지 모를 서운함이 갑자기 밀려왔다. 나름 아이들과 마음속의 말을 다 털어놓을 수 있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녀석은 나를 ‘정치 이야기를 입 밖에도 낼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꼰대’로 생각했단 말인가.


 저번 선거 당일, 초록색 사이트에 이런 기사가 하나 떴다. “2024년 4월 10일 선거일 오전 10시 50분쯤 군산시 삼학동의 한 투표소에서 50대 A 씨가 20대 딸의 투표지를 훼손”했다는 내용이었다. (출처: YTN 뉴스, 2024.04.10., 정윤주 기자) 아버지 A 씨는 기표 후 나온 딸 B 씨의 투표용지를 보고 "잘못 찍었다"라며 이를 찢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기사를 보며 ‘부모의 선택이 성인이 된 자녀의 자유의지를 막을 정도일까?’라는 생각에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나만은 ‘고지식하고 내 의견만 고집하는 그런 부모’가 아니라고 여기며 끈질기게, 더 열심히 아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끝내 대답하기를 거부하는 그 녀석의 반응을 보니 아들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은 마냥 허용적이고 편안한 엄마는 아닌 모양이다.


 물론 그 녀석은 반쯤은 장난으로 그렇게 말했을 수도 있다. 어쩌면 내심 우리와 큰 연결고리가 없는 정치 이야기로 가족 내의 ‘분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더 컸을 수도 있다. 평소 ‘가족 내의 평화주의자’를 자처하는 그 녀석인 만큼 골치 아프게 당파 싸움으로 부모와 설왕설래하기가 싫었을 것이다. 그래도 이렇게까지 딱 잘라서 거부 의사를 단호하게 밝힐만한 일이었을까?


 문득 아들과 같은 젊은 아이들이 부모 세대에게 느끼는 감정이 궁금하다. 40대와 50대를 지나고 있는 우리 자식들이 지켜보는 대부분의 부모 세대는 정치에 있어서는 너무도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었다. 아무리 다른 진실이나 정보를 말해도 도무지 이야기가 통하지 않았다. “너희가 뭘 알겠니? 그냥 우리말을 들어라.”라고 단호하게 선택을 강요하거나 “그래도 이 당을 찍어야 나라가 잘된다”라며 은근히 본인들의 의사를 밀어붙이곤 했다. 유달리 ‘빨간색, 파란색’과 같은 이념논쟁에 무척 민감하고 옛 추억에 대한 깊은 향수를 기진 세대였다.


 내 또래의 세대는 경제 최대 호황기라는 유복한 유년 시절을 보냈지만 동시에 한창 직장을 가질 시기에 ‘IMF 국가 부도’라는 우울한 나라 위기를 겪었다. 우리 윗세대처럼 전쟁, 민주화 투쟁을 겪지 못해 이념 문제만큼은 자유로운 편이지만, ‘돈, 안정된 직장’에는 민감했다. 항상 언제 어디서 상황이 바뀔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마음속에 깊이 품고 있었다. 그런 부모들을 우리 아이들은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큰 애의 반응을 보니 나 역시도, 내가 예전에 부모를 바라본 것처럼, 비슷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아 서글프다. 나는 부모 세대와 다르다고 했는데…. 같이 생각을 공유하고 자유롭게 의사를 나눌 수 있는 부모 자식 관계, 수평적인 관계는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결국 우리 관계 역시 무조건 “네”라고 대답해야 하는 예전의 수직 관계에서 못 벗어난다는 말인가? 그러고 보니 점점 늙어가는 시간이, 인생에서 버티는 순간들이 점점 우리의 부모 세대와 닮아간다. 서로 다르게 태어나서 결국 같은 틀로 녹아들어 가는 것처럼 말이다. 결국 ‘꼰대력’은 늙어가는 시간이, ‘나는 아닐 것’이라고 믿는 마음이, ‘이것이 맞을 것’이라는 생각이 만들고 있다.


 그래, 이 녀석아, 너도 늙어봐라. 너는 안 그럴 것 같지? 그건 모를 일이야. 나중에 너는 자식에게 어떻게 당하는지 지켜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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