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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Jul 09. 2024

열심히 하면 된다는 큰 애의 말, 진실이었다.

한자어 ‘열심(熱心)’은 뜨거움을 뜻하는 ‘열’(熱) 과 마음을 의미하는 ‘심’(心)이 합쳐진 단어이다. 수많은 땀과 노력이 필요한 대장간의 작업과 빗대어 표현하면, 원하는 연장을 만들기 위한 ‘불’은 ‘열’(熱)과 비슷한 성질이요, 바람을 솔솔 불어넣는 ‘풀무질’은 ‘마음’(心)이 아닐까 싶다. 딱딱한 형질의 쇠를 녹여 변형시키기 위해서는 기준점 이상의 뜨거운 불이 필요하고, 이 화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풀무질이 필요하다. 이처럼 뜨거운 마음 ‘熱心’은 무언가를 변화시킬 수 있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렇기에, ‘열심히 하면 된다’라는 말은 무언가를 이루고 싶은 사람들이 종종 속으로 읊조리거나 희망을 품고 싶을 때 쓰는 문장이기도 하다. 세상일이 그렇듯 마음먹은 데로만 이루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안타깝게도, ‘열심히 하면 된다’라는 말이 무조건 통용되는 진실이라고 믿는 사람은 그다지 없다. ‘열심히’라고 굳건하게 마음먹다가도, 매번 ‘역시 안돼’라는 결과 앞에 쉽사리 무너지고 마는 것이 사람의 심리이다.


 나 역시도 ‘열심히’라는 말에 의문을 품는 사람 중의 하나였다. 노력했지만, 결과는 원하는 데로 나오지 않았고, 결국 ‘열심히 해 봤자 소용없다’라는 체념이 되풀이되는 상황만 연출되었다. 아이들에게도 겉으로는 ‘열심히’ 공부하라고 잔소리 해댔지만, 노력하는 과정보다는 구체적인 성적으로 보이는 결과를 더 원했다. 결국 대학 입시에서 더 필요한 것은 ‘과정’보다는 ‘결과’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올해는 이상하게도 ‘열심히’라는 말의 마법을 믿고 싶어졌다. 요즘 들어 결과가 어떻든, 과정만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큰 애가 동생의 공부를 관리하면서 시작된 변화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고등학교 2학년인 우리 둘째는 학교에서 공부를 잘하는 편이 아니다. 항상 꼼꼼하게 성적을 챙기는 형에 비해, 그 녀석은 매번 아는 문제를 ‘항상 실수로’ 틀렸고(본인의 주장), 어려운 문제 역시 ‘당연히 틀렸다. 그래서 아들의 학교 성적은 항상 중간 언저리에서 왔다 갔다 했다. 대한민국 대부분 수도권 엄마가 떠올리는 불안처럼, 그런 둘째를 볼 때마다 ‘날고 기는 성적의 아이들도 많은데 저런 점수를 받아서 ‘인서울 대학’이 가능할지 걱정이 많았다.


 이상하게도 둘째는 일주일 대부분을 국·영·수 학원에 붙잡혀 있는데도 성적이 도통 오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 녀석은 학교생활을 열심히 하며 생활기록부를 착실히 채울 정도로 열정적이지도 않았다. 공부 의욕도 없는 데다 집에 오면 계속 핸드폰을 붙잡고 있으니 매번 아들 녀석을 볼 때면 고구마 수천 개를 삼킨 것처럼 답답하기만 했다.


 “지금 공부 안 하면 어떻게 할래?”

 “.......”

 “대학 안 가면 혼자 먹고살 수 있도록 기술이라도 배울래?”

 “.......”

 “엄마 아빠도 언제까지나 일할 수는 없는데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니?”

 “.......”


 둘째를 보면 미래를 향한 걱정과 불안으로 매번 잔소리를 퍼부었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무거운 침묵뿐이었다. 게다가 그 녀석이 고2가 되고 나니 이제 이런 말들도 먹히지 않았다. 서로 가시가 돋친 마음의 생채기만 주고받았고 감정의 골만 커질 뿐이었다.


 결국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큰 결단을 내렸다. 아무리 다녀도 국어성적을 도통 올리지 못하는 학원을 먼저 끊었고, 둘째의 여유 시간을 조금씩 확보하기 시작했다. 그 녀석도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니 쾌재를 부르는 눈치였다. 그러고는 막 수능 입시를 끝낸 대학 신입생 큰 애에게 국어 과외를 부탁했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그냥 수업을 안 해도 되니 동생에게 지금 공부해야만 하는 이유만 알려 달라’고 말이다. 더는 둘째와 감정 소모를 할 만한 마음의 여유가 남아 있지도 않았다.

 

 엄마의 간곡한 요청을 받은 큰 애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단 두 가지만 약속해 달라고 했다.


 첫째, 앞으로 절대로 동생에게 성적 때문에 감정을 섞어 잔소리하거나 혼 내지 말 것,

 둘째, 동생을 볼 때마다 “잘할 수 있다”라고 매일 말하고 믿어줄 것


그 외 나머지는 본인이 알아서 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올해 2월부터 큰 애는 동생을 위해 국어 과외와 전반적인 공부 멘토링을 시작했다. 첫째가 동생을  혼내는 경우는 한 가지, 정해진 숙제를 안 했을 때뿐이었다. 그 외에는 '네가 열심히 하면 성적은 얼마든지 올릴 수 있다'며 매번 동생의 용기를 북돋워 주었다.


 '열심히 하면 성적이 오른다.'

 이는 누구나 아는 진리지만, 믿기 힘든 진실이기도 하다. 그전까지 책상에 멍하게 앉아만 있었던 둘째를 보고 있자면, '열심히 하라'고 다독이기보다는 '유명한 일타 강사'가 더 필요할 것 같았고, '족집게 정답 풀이'가 더 중요한 것 같았다. 그런 생각 탓인지 큰 애의 모습과 말은 좀 허황된 뜬구름 잡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둘째는 형의 조언을 받아 조금씩 바뀌었다. 몇 개월 동안 형의 쓴소리, 달래는 말들을 때로는 울면서, 가끔은 짜증을 내며 주워 삼키던 아들이 시간 지날수록 공부량을 늘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올해 2학년 첫 중간고사를 기점으로 조금씩 성적이 올랐다. 그전에는 아무리 공부해도 점수가 안 나왔던 사회 과목에서 생전 처음 100점을 받는가 하면, 매월 치르는 모의고사에서도 조금씩 등급이 올랐다. 게다가 이번 기말고사를 준비할 때는 '공부를 열심히 했지만, 선생님들이 어떻게 출제할지 몰라 조금은 걱정이 된다'라는 말까지 했다. 예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노력은커녕, 시험성적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던 녀석이 말이다.


  2학년 1학기 모든 시험 마친 요즘, 둘째는 처음으로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직 1학기 성적이 어떻게 나올지는 알 수 없지만, 밝은 둘째의 표정을 보니 내 마음도 덩달아 편해졌다. 몇 개월 전만 해도 불안과 걱정으로 마음이 어두침침하기만 했지만, 이제는 공부할 때마다 조금씩 진지한 표정을 짓는 둘째를 보니 안심이 된다. 앞으로 나올 결과와 상관없이 말이다. 결국 큰 애 말이 옳았다. 열심히 하면 성적은 언제든 올릴 수 있었다. 다만 ‘열심히’라는 말의 마법을 이루기 위해서는 부모가 믿어주고 기다려 주는 조건이 필요했을 뿐이다. 그 단순한 진실을 몰라 매번 아웅다웅 서로 마음고생만 했다. 부디 둘째의 마음속에 ‘열심히’라는 비법이 콕 박혀, 아들이 앞으로 남은 고등학교 수험기간을 잘 이겨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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