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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Nov 03. 2024

우리의 블로그 작가는 이랬으면 좋겠다.

 네이버의 블로그(Blod)와 카카오의 브런치(Brunch)는 대한민국 대표 글쓰기 플랫폼이다. 블로그는 첫 진입 조건이 낮아 누구나 글을 쓸 수 있고, 브런치는 어느 정도 글쓰기 실력을 갖춘 사람들에게 작가라는 칭호를 붙여준다는 점만 다를 뿐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Blog’가 이루어진 합성어, ‘웹 (Web)와 로그(Log)’의 의미에서 알 수 있듯이 종이가 아니라 웹에서 쓰는 글이라는 점은 같다. 블로그든 아니면 브런치든 대한민국에서 글을 쓰고 싶은 평범한 사람들의 소망이 이루어진 사이트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지난 2024년 11월 2일, 온라인에서 블로그 작가협회(BLG) 발족식이 있었다. 이 협회는 네이버 블로그를 통해 문학 활동과 작가 활동을 추구하는 이들의 모임으로, 네이버 블로그 운영, 개인 저서 출간, 공저 출간, 공모전 수상 또는 등단 등의 요건 중 두 가지 이상을 충족해야 가입이 가능하다. 각종 신춘문예와 같은 전통적인 등단제도와 공모전을 벗어나 대한민국 최초로 온라인 글쓰기 플랫폼 중심으로 이루어진 글을 쓰는 작가들의 연대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브런치 역시 글을 쓰는 사람들을 위한 플랫폼이지만, 몇몇 잘 나가는 작가들만을 위주로 키우기에 작가들의 연대보다는 개인의 능력을 중시하는 ‘각개전투’ 공간의 성격이 강하다.


 온라인 발족식의 하이라이트는 김삼환 시인(블로그 작가협회 고문)의 ‘작가 의식’에 관한 강연이었다. 30년 동안 대한민국 문단에서 끈질기게 작품활동을 한 그는 새내기 작가들에게 ‘작가’와 ‘작가 의식’, 그리고 ‘글쓰기’의 의미에 관한 많은 화두를 던졌다. 특히 작가라는 명칭은 잔잔한 호수에 던진 돌처럼, 발족식에 참여한 사람들의 마음을 계속 울렁거리게 했다. 이 호칭은 오랜 시간 ‘공모전’, ‘등단’이라는 문학계 간택에 의해서만 주어진 황금빛 이름이기에, 평범한 ‘쓰는 사람’들이 ‘감히’ 작가라는 호칭을 쓰기는 쉽지 않다. 실제로 온라인 발족식에 참가한 많은 작가는 이미 여러 책을 편찬한 이력들이 있었지만, 작가라는 호칭을 여전히 부담스러워했다. 그래서 블로그 작가협회에서도 첫 강의의 주제를 김삼환 시인의 작가 의식으로 잡았는지도 모르겠다.


 시인은 강연 중에서 글 쓰는 이들에게 필요한 자세로 ‘연민과 공감’이라는 말을 꼽았다. 눈에 보이는 모든 일에 연민과 공감을 하라는 말이다. 세상에는 여러 목적으로 글 쓰는 이들은 넘쳐난다. 내면의 성찰을 위해 글을 쓸 수 있고, 혹은 무언가를 홍보하거나 지식을 알리기 위해 글을 쓸 수 있다. 여러 욕망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온전히 작가라는 타이틀을 달 수 있는 사람들은 세상의 많은 일에 관심을 가지며 본인이 쓰는 단어 하나, 문장 하나로 사람들의 감정을 움직이는 이들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작가들은 돈을 벌기 위한 개인 욕심만으로 글을 쓰지 않는다. 그들이 쓰는 활자들은 독자들의 마음속에 날아가 웃음과 행복으로 촉촉이 적시는 감정과 생각의 빗물이다. 이렇게 활기찬 비바람이 날아가 세상 곳곳을 아름다운 연민과 공감으로 채울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좀 더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그래서 작가들은 다른 일에는 소극적이고 자신이 없어도 글을 쓸 때만큼은 용감하고 자유로워야 한다.


  사실 나는 실명으로 ‘작가’라고 불리기보다는 소극적으로 가면 뒤에 숨어서 ‘쓰는 인간’이 되고 싶은 사람이다. SNS상에서 나 자신을 드러내고 ‘나만 봐주세요’라고 요구하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화려한 모습을 보며 손뼉을 치고 감탄만 하길 원하는 부끄럼이 많은 이가 바로 나다. 어쩌면 자기 PR이 곧 돈이 되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맞지 않은 인물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나라도 이번 강연을 들으며 ‘작가 의식’에 대해 많은 생각에 잠겼다. 처음에는 개인적으로 글 쓰고 싶은 욕망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온라인 플랫폼에 발을 디뎠지만, 지금은 나만 생각하던 과거의 글쓰기에서 벗어나 조금은 책임감을 지니고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든다.


 이번 강연을 들으며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가 떠올랐다. 그녀는 2022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실질적인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글을 서술하지만, 그대로 기록하기보다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서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격자무늬로 얼기설기 엮어내는 독특한 서술 방식을 고수하는 작가이다. 에르노는 매 순간을 ‘지우고 다시 쓰는 감각’으로 기록하길 원했다. 그래서 에르노는 ‘글쓰기’를 특별하게 여겼고 남다른 작가 의식을 지니고 있었다. 그녀는 딱딱하게 권위주의에 가득 찬 ‘작가’나 ‘작품’이라는 말에 본인의 생각을 가두기보다는 ‘글쓰기’를 생생하게 살아있는 물체이요, 끊임없이 그녀의 작업을 활동시키는 열쇠로 다루며 매 순간 노력했다.


 먼저 내가 ‘작품’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적이 없다는 사실에 주목해 주세요. 나와 관련해서, 그것은 내가 생각하는 단어도, 내가 쓰는 단어도 아닙니다. 그것은 ‘작가’라는 단어와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에게나 통용될 단어이지요. 그것은 모든 것이 종료되었을 때, 사망자 약력에나 나올, 어쨌든 문학 교재에나 등장할 법한 말입니다. 닫힌 단어라고나 할까요. 나는 ‘글쓰기’ ‘책 쓰기’ 같은 단어들을 선호합니다. 진행 중인 활동을 환기시키기 때문이죠.(p.20) <칼 같은 글쓰기>


 아니 에르노의 일련의 노력과 작품 세계를 생각하면, 우리 역시도 작가라는 이름으로 평온하게 안주하기보다는 그 속에 담긴 작가라는 마음가짐, 태도, 생각들을 고취하기 위해 계속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김삼환 시인은 온라인 발족식에서 깊은 성찰의 질문을 먼저 던졌는지도 모른다. 이 순간은 자축만 하는 자리가 아니라 용기 내어 작가가 지니는 이름의 무게를 견디며 본인들만의 작가 의식으로 좀 더 나은 글쓰기 여정을 시작하는 출발점이라고 말이다.


 글을 쓰고 싶은 사람들이 넘쳐나는 요즘이다. 그런 환경에서 어떤 쓰는 인간, 작가가 되어야 할까? 고민을 거듭하다 홀로 이렇게 정의를 내려본다. 적어도 작가는 숨어서 본인만을 위한 글을 쓰는 태도에서 벗어나 다른 이들에게 글을 내보일 수 있는 용기가 있는 사람이다. 아무리 수줍음이 많고 신비주의를 고수하는 사람이라도 글을 쓸 때만큼은 소심하게나마 세상 앞에 생각을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이렇게 끄적이는 글들로 세상을 연민과 공감 그리고 여러 가지 감정으로 채워지는 공간으로 바꿀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행복하지 않을까. 그런 소망으로 계속해서 글을 쓰는 목적을 마음속에 깊이 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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