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권성우는 ‘AI가 도달할 문학적 글쓰기’라는 제목의 한겨레 신문 칼럼에서 작가 고유의 능력이라 일컬어지는 창의적 문체의 특징까지 모방할 수 있는 AI 기술력에 대해 놀라움을 표한 바 있다. 그는 “끝끝내 인공지능이 도달하지 못하는 문학적 글쓰기의 고유한 영역은 무엇일까?”라고 한탄하며 “무서운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라는 말로 칼럼을 마무리했다. 방대한 데이터를 조합하여 인간의 지성을 위협하는 생성형 인공지능을 바라보는 인간의 태도는 두 갈래다. ‘사용하느냐’ 아니면 ‘무시하느냐.’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으면 이제는 새로운 방법을 강구하고 받아들여야 할 때이다. 개인과 사회, 기술과 리터러시가 엮이는 방식을 연구하는 응용언어학자 김성우는 사회 인문서 <인공지능 나의 읽기-쓰기를 어떻게 바꿀까?>(도서 출판 유유, 2024)를 통해 ‘인공지능에 압도당하거나 의존하지 않고 새로운 읽기-쓰기’로 나아가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을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은 총 6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반부에 인공지능으로 생길 수 있는 여러 가지 불안들과 문제점이 담겨 있다면 후반부에는 저자가 생각하는 인공지능과 관계 맺기 방법이 제시된다. 그는 다양한 사례를 들어 AI가 인간의 읽기, 쓰기를 완벽하게 대처하기는 어렵다고 전한다. 그 내용은 2장 ‘인간의 읽기-쓰기, 인공지능의 읽기-쓰기’에서 오랜 시간 형성된 ‘인간의 읽기 쓰기’와 거대 언어모델 구축 과정에서 익힌 ‘인공지능이 수행하는 읽기와 쓰기’의 다른 점이 비교 분석되어 자세히 설명된다. 3장과 4장에서는 인공지능 확산 등과 함께 도래할 윤리적인 문제와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에 대한 잠재적 폐해에 관한 내용이 이어진다. 인공지능에 관한 모든 탐색이 끝나면 5장과 6장에서 기술과 인간의 관계를 여러모로 살펴보고 인공지능과 함께 할 미래와 협업에 필요한 구체적인 7가지 실천 사항이 제시되고 있다.
인공지능의 기술력이 인간의 능력을 능가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팽배한 지금, ‘인공지능의 쓰기’와 ‘인간의 쓰기’의 대결구조는 남다른 관심사이다. 저자는 생성형 AI의 언어 습득 방법과 인간이 언어를 배우고 글을 쓰는 사고체계 자체가 다르기에 인공지능의 쓰기와 인간의 쓰기는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책에 따르면, 인공지능이 전 세계에 펼쳐진 텍스트의 결과를 중심으로 글쓰기라는 결과물을 도출한다면, 인간은 사람들과 교류하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언어를 배우고 사유하는 존재라고 전한다. 기계적인 작업으로 내놓는 AI의 결과물보다는 천천히 쌓아가는 과정의 미학이 담긴 인간의 글쓰기가 더 깊이가 있고 가치가 있다는 주장이다. 신속하고 훌륭한 산출물을 우선시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이 견해가 얼마나 먹힐지는 미지수다. 이런 논란을 의식한 듯 저자는 과정이야 어떻든 결과물을 우선시하는 사회를 꼬집는다.
생성형 인공지능을 과제 수행에 동원하고 마치 자신이 쓴 것인 양 제출하는 학습자들을 옹호할 수 없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속도와 효율성을 추구하는 것이 합리적이라 믿는 습속을 빚어내는 건 기성세대가 만든 사회적·제도적·구조적 압력입니다. 학생 개개인의 잘못으로만 볼 수 없다는 이야기죠. 그렇게 해도 ‘걸리지만 않으면’ 이익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은 분명 문화적으로 형성된 것입니다.(p.447)
저자가 생각할 때 인공지능과 인간’의 대결구조를 가속하고 이후 표절 시비를 빈번하게 만드는 것은 “결과물에 대한 집착”(p.450)이고 신속함과 효율성을 추구하는 사회 분위기이다. 이 속에는 다른 사람들과 경쟁해서 우위를 차지하고 싶은 인간의 욕망도 분명 숨어 있다. 느리게 사고하고 고민 끝에 결과물을 내놓기보다는 빨리 최종 산출물만을 원하는 현재 상황은 윤리성과 경쟁심만 활성화할 뿐이다. 그러므로 저자는 앞으로는 읽고 쓰는 일을 “그 자체로 의미를 지는 것이 아니라 관계와 실천 속에서 의미를 획득하는 것(p.435)”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또한 그는 인간지능을 ‘새로운 생산성 도구’에 대한 논의를 넘어서 ‘공존의 대상이자 새로운 사회 구성원’으로서 인공지능을 사유”(p.167)하는 일로 이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인공지능을 기계가 아니라 새로운 개체로 인식하고 공존할 수 있는 대상으로 보자는 저자의 주장이다.
<인공지능은 나의 읽기-쓰기를 어떻게 바꿀까)는 ‘인공지능의 읽고 쓰기’와 ‘인간의 읽고 쓰기’를 서로 비교 분석하여 새로운 문해력의 미래를 그려냈다는 점에서 인공지능 시대 읽기-쓰기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 책은 인간들이 가질 수 있는 인공지능의 능력에 관한 막연한 불안감의 향연이 아니라 인간의 읽고 쓰기를 비교 분석하여 구체적인 방안을 전하고 있다. 또한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의 과도한 믿음, 인공지능의 결과물이 도출할 수 있는 표절 시비 그리고 인공지능을 과용하는 사람들의 마인드까지 알 수 있어 읽을 가치가 크다. 하지만 여러 가지 기술 용어와 ‘에토스’와 같은 용어 등 다양한 지식이 담겨 있어 가독성은 뛰어나지 않은 편이다. 게다가 인공지능에 관한 내용들이 각 장마다 엄청난 밀도감으로 담겨 있는 탓에 일부 독자들에게는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다. 최소한 고등학생 이상의 어느 정도 문해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읽어야 소화할 수 있을 듯하다. 인공지능 시대, AI를 이해하고 공존하는 법을 탐구하고 싶은 독자들에게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