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에서 글을 쓴 지 거의 4년 남짓한 시간이 흘렀다. 2021년 11월부터 2025년 7월까지 미발행한 작품까지 합치면 총 450편이 넘는 글을 써온 셈이다. 처음에는 그저 꾸준히 쓰고 싶은 마음에 시작했고, 두 번째는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내 하루의 기록을 읽고 호응해 준다는 기쁨 때문에 썼다. 그렇게 몇 년 동안 매일 한 편씩 즐겁게 휘갈기던 글쓰기 재미는 나도 모르게 쌓인 ‘작가’라는 단어 속에 점점 무거워지는 무게추를 달고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다.
좋은 작가가 되어서 내 이름이 콕 박힌 책 한 권을 갖고 싶은 오랜 기간 마음속에 품고 온 꿈이었다. 무협지에서 평범한 사람이 엄청난 기연을 얻어 절대 고수에 이른 엄청난 무인이 된 것처럼, 어쩌다 얻은 ‘글쓰기’라는 재주는 매일 반복되는 지루한 생활의 일터에서 도망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행복한 취미에 이어서 인세로 먹고살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이런 마음이 든 순간, 오로지 나를 위한 글쓰기로 시작했던 순수한 즐거움이 ‘이름 있는 작가의 이름’과 ‘책 출판’에 집착하는 강박증으로 바뀌는 것은 금방이었다.
누구나 꾸준히 글을 쓰다 보면 운명처럼 같은 방향을 걸어가는 가진 문우들, 선생님들을 만날 기회가 많다. 같이 작품을 읽고 글을 쓰다 보면 책 한 권은 금방 낼 수 있다. 다시 말해, 계속 글을 쓰기만 한다면 모두 작가가 될 수 있는 편리한 세상이다. 빅토르 위고, 어니스트 헤밍웨이 등과 같은 예전 작가들은 프랑스 혁명과 스페인 내전을 통해 얻은 경험으로 골방에 틀어박혀 굵직한 작품들을 창조해 내는 아웃사이더였다면, 요즘 작가들은 뛰어난 문체와 번득이는 아이디어로 작품을 쓰고 책을 낸 후에도 대중들과 교감해야 하는 인플루언서에 더 가까운 모습이다. 문제는 나의 성향 자체가 이런 작가의 모습과 너무도 멀다는 것에 있다.
얼마 전 문우들과 한 출판사를 끼고 공저를 내고 나니 나의 이런 문제점이 더 두드러졌다. 예전에 전자출판으로 공저를 냈을 때는 작품을 한 권 완성했다는 자축만 들면 되지만, 출판사를 끼고 책을 내면 홍보에 좀 더 힘을 기울여야 한다. 작품에 여러 명의 투자가 걸려 있고 많은 돈이 오가는 자본주의 현장이다 보니 당연한 원리다. 그러니 아무리 남들의 눈에 띄기 싫어하는 나라도 잘 쓰지도 않는 SNS 주소를 공유해야 했고, 책 한 권이라도 팔기 위해 계속 발품을 팔아야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무명작가들의 손에 들어오는 인세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만큼 출판계의 시장은 치열하고 냉혹했다. 그러다 보니 또다시 회의감이 들었다. 일터에서 도망칠 수 있는 생활비조차 벌 수 없는 글쓰기라면 계속할 이유가 있을까? 또다시 ‘왜 글을 쓰는가?’에 관한 일차적인 고민의 반복이었다.
지금까지 플랫폼에 글을 쓰면서 ‘나는 왜 쓰는가?’에 관한 고민은 수시로 일어났다. 조지 오웰의 책을 읽을 때면 ‘사회의 부조리를 비판하기 위해 쓴다’라는 거창한 목표를 세워 ‘사회의 평론가’ 흉내를 내 보기도 했고, ‘작가’라는 화려한 이름에 사로잡혀 있을 때는 ‘순수한 문학을 창조하기 위해 쓴다’라는 꿈에 부풀어 있기도 했다. 하지만 평범한 ‘쓰는 인간’이 위대한 ‘작가’를 흉내 내기에는 부족한 탓인지, 글쓰기의 목표는 수시로 바뀌었다. 글을 쓸 수 없는 상황에 따라, 그리고 손에 쥐는 작은 인세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기만 했다. 그래, 인정한다. 난 ‘작가’의 이름에 취해 순식간에 초특급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고 싶은 올챙이였다.
내 이름이 박힌 책을 내고 싶지만, SNS 홍보는 절대로 못 하고(애당초 유명해지는 것 자체가 무섭다.) 그렇다고 남에게 소개할 만한 특별하고 독특한 인생사도 없다. 뚜렷하게 이런 책을 꼭 써야 하는 특정한 목적은 없지만, 그래도 글을 쓰는 기분은 간직하고 싶다. 천재적인 글솜씨로 세상을 놀라게 하겠다는 허영심이 이미 예전에 버렸다. 그랬다면 지금, 이 순간까지 세상의 모든 갑에게 고개를 조아리며 살고 있진 않겠지. 화려한 표지가 있는 책을 눈에 보이게 꽂아 두고서 ‘또 다른 작품 구상 중이에요.’라고 적당히 내숭을 떨며 이야기하고 있을 것이다.
‘작가’라는 이름에 취해서 글을 써온 4년 동안 참 많은 감정을 겪었다. 뛰어난 성과를 보이는 문우들에 관한 질투심, 빠른 결과를 내지 못하는 나에 대한 조바심, 막연히 글을 쓰고 있다는 허영심 등 그동안 겪었던 오색찬란한 감정들이었다. 수많은 시간 속에서 조금씩 깎여 나간 감정의 찌꺼기 속에서 ‘그냥 쓰지, 뭐.’라는 가벼움만 남았다. 온갖 재앙 속에서 알짜배기 희망만 붙든 판도라에 비하여 싱겁기에 그지없지만, ‘작가’, ‘책 출판’이라는 무거움을 덜어내고 나니 이런 기분도 나쁘지 않을 듯싶다. 이렇게 매일 하루의 기록을 낚시질하다 보면, 어쩌다 걸리는 월척들이 기쁜 마음으로 내 책장을 장식하지 않을까? 그런 마음으로 오늘의 글쓰기에 걸린 낚싯대의 추를 살포시 던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