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를 둘러싼 입씨름 앞에서, 쓰는 인간으로 남는 일

by 하늘진주

과거 워드프로세서가 우리 일상에 처음 들어왔을 때가 문득 떠오른다. 대학 리포트를 모두 수기로 작성하던 시절, 컴퓨터로 수십 장을 타이핑해 제출할 수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혁신이었다. 손글씨에 자신 없는 학생들뿐 아니라, 악필 리포트를 해독하느라 애를 먹던 교수들에게도 반가운 변화였을 것이다. 그렇게 워드프로세서가 대학가로 조금씩 스며들 무렵, 교수들은 “앞으로 리포트를 워드로 제출하면 가산점을 주겠다.”고 깜짝 선언을 했다. 꽤 솔깃한 제안이었다. 그날 이후 컴퓨터실은 리포트를 ‘워드로’ 작성하려는 학생들로 금세 북적거렸다. 노트북과 스마트폰, 탭을 자유자재로 이용하는 요즘 학생들이 보면 웃음이 날 풍경이겠지만, 분명 그런 시절이 있었다. 물론 모두가 그 변화를 반긴 것은 아니었다.


생각을 지우고 다듬느라 너덜너덜해진 원고지 뭉치를 늘 책상 위에 두고 작가의 꿈을 키웠던 나에게, 당시 워드프로세서로 글을 쓴다는 일은 편리하면서도 무척 혼란스러운 일이었다. 나는 늘 초고를 하얀 백지에 먼저 쓰고, 여러 번 고친 뒤에야 원고지에 옮겨 적곤 했다. 처음부터 200자 원고지에 글을 쓰면 퇴고할 때마다 내용이 바뀌어, 수십 장을 다시 써야 하는 일이 다반사였기 때문이다. 책상 위에는 늘 너덜너덜한 원고지 더미와 똥글똥글한 지우개 똥이 쌓여 있었다. 글을 쓰는 일은 그렇게 창조의 고통을 동반하는 일이었다. 그런 나에게 워드로 글을 쓰고 쉽게 수정할 수 있다는 현실은 분명 고마운 변화였다. 그러나 동시에 어색했다. 손가락의 고통 없이 술술 써 내려간 문장들이 어쩐지 한없이 가볍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생각의 속도를 손글씨가 따라가지 못하는 순간들조차, 그때의 나는 좋은 글을 완성하기 위한 재료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물론 지금의 나는 그런 고집보다는 기술의 편리함에 기대어 글쓰기를 즐기고 있지만 말이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내 안의 쇄국 정책은 매번 요동을 친다. 새로운 기술과 문물이 삶의 형태를 크게 바꾼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것을 받아들여야 할지 배척해야 할지 마음은 쉽게 정해지지 않는다. 조선 시대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을 둘러싼 논쟁이 여전히 생생하게 느껴지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 치열한 입씨름은 21세기를 사는 지금도 내 마음속에서 반복되고 있다. 워드프로세서로 글을 쓰는 방식은 분명 사고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그러나 그와 함께, 원고지에 꾹꾹 눌러쓰며 단어 하나, 문장 하나에 고심하던 시절의 나는 사라졌다. 그렇다고 집게손가락과 엄지손가락에 힘을 주어 연필을 쥐던 그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지금은 파일의 저장과 삭제만으로 언제든 글쓰기를 시작할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한 문장, 한 단어만 어긋나도 수십 장, 수백 장의 원고지를 다시 써야 했다. 쉽게 갈 수 있는 길 앞에서 다시 고행의 길로 돌아가기는, 아무래도 쉽지 않다.


오늘날 많은 창작가가 AI를 두고 입씨름을 벌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AI를 활용하면 창작의 범위는 분명 넓어진다. 그러나 동시에, 인공지능이 건네는 ‘매혹적인 유혹’ 앞에서 창작의 주체를 너무 쉽게 넘겨주게 되지는 않을지에 대한 불안도 함께 커진다. 오랜 시간 축적된 인간의 노력과 사유의 결과물이, 몇 개의 프롬프트와 몇 분의 시간으로 완성된 ‘AI 결과물’로 대체될 수 있다는 현실은 솔직히 공포스럽다. 이런 상황 앞에서 사람들의 반응은 극명하게 갈린다. 어떤 이는 이를 ‘혁신’이라 부르고, 또 다른 이는 ‘비극’이라며 절망한다. 글쓰기에 늘 한계를 느껴왔던 이들에게 AI 기반의 프롬프트 글쓰기는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주는 도구가 될 수 있다. 반면, 오랜 훈련과 반복을 통해서만 좋은 글이 완성된다고 믿어온 우직한 작가 지망생들에게 이 현실은 마치 ‘기울어진 운동장’처럼 느껴진다. 그래서일까. 오늘날 우리는 200여 년 전의 러다이트 운동을 다시 불러내며, 또 한 번의 치열한 줄다리기 앞에 서 있다. 과거 영국의 러다이트 운동이 기계화로 인한 일자리 상실과 물리적 노동의 가치를 지키려는 움직임이었다면, 오늘날의 ‘신 러다이트 운동’은 기계가 인간의 사고와 판단, 나아가 윤리와 창조의 영역까지 대체할지 모른다는 불안에서 출발한다. 이 논쟁은 아직 승패를 알 수 없는, 팽팽한 현재진행형이다.


이런 창작 현실 앞에서 ‘무조건 AI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 거나 ‘양심을 지켜야 한다’는 단정적인 말만을 던지고 싶지는 않다. 그러기에는 이미 너무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과거 워드프로세서를 받아들이며 또 다른 글쓰기의 삶을 시작했던 것처럼, AI와 함께하는 현실 역시 새로운 관점을 받아들이는 하나의 문 앞에 서 있는 일처럼 느껴진다. 중요한 것은 글쓰기의 초심을 잃지 않고, 창작의 주체성을 스스로에게 남겨 두는 일이다. 몇 날 며칠을 고심해 써낸 내 글이 몇 개의 주제어와 프롬프트로 완성된 누군가의 글보다 부족해 보이더라도 흔들리지 않을 뚝심이다. 처음 글쓰기를 시작할 때, 누군가의 마음을 위로하고 내 마음의 결을 다듬는 ‘쓰는 인간’이 되고 싶었던 이유를 잊지 않는 것처럼, 자신의 글쓰기 목표를 찾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고민 끝에 고른 문장 하나, 망설이며 붙잡은 단어 하나가 민들레 홀씨처럼 누군가의 생각 끄트머리에 조용히 내려앉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고 아름답지 않을까. 결국 AI를 둘러싼 쇄국과 개방, 새로운 러다이트 운동의 갈림길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고 선택하는 인간의 사고에 달려 있다. 무작정 받아들이지도, 무작정 거부하지도 않은 채, 기술 사용의 주체가 누구인지 고민하는 일. 지금은 바로 그 질문을 던져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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