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 이어 프랑스도 15살 미만 SNS 금지를 추진하고 있다는 신문기사를 읽었다. 2026년 1월 1일 자 한겨레 기사는 소셜미디어에서 청소년이 선정적인 콘텐츠나 사이버 괴롭힘에 노출된다는 문제 제기가 수년간 이어져 왔고, 이를 이유로 디지털 경제 신뢰법 개정안이 논의되고 있다고 전했다. 프랑스 정부의 이런 방안을 접한 대부분 부모는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자녀들을 향한 디지털 피해가 나날이 커지는 현실에서 이렇게라도 규제할 방안이 나와 다행이라는 반응이었다.
현재 프랑스, 독일, 호주, 덴마크, 말레이시아 등 국제사회는 청소년의 SNS 규제로 방향을 잡은 듯싶다. 그만큼 정부가 이로 인한 청소년들의 피해가 크다고 판단한 탓이다. 청소년들의 소셜미디어 사용을 통제하는 정부의 정책은 부모의 불안을 밑거름 삼아 일사천리로 처리되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이런 규제가 진정한 해결점이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 든다. 국가 정책은 사안을 바라보는 감정이 아니라 문제를 꿰뚫는 구조를 다뤄야 하지만, 지금의 정책 제안은 ‘무조건 보호’라는 한 가지 사안에 몰입하여 진행되는 듯하다. 단순히 SNS 세계를 어린 자녀로부터 지켜야 할 ‘해로운 악’으로 규정하고 무조건 통제하는 것이 진정한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어릴 때부터 디지털 문명을 접한 아이들에게 SNS 세계는 또래와 친목을 다지는 공간이자 자기 정체성을 표현하는 출구다. 그곳은 단순한 오락 플랫폼이 아니라, 오늘날 청소년들이 자기 본질을 시험하고 다듬으며 타인과 관계를 맺는 하나의 사회이기도 하다. 이미 그들의 사회적 관계 대부분이 온라인에 구축된 상황에서 ‘이곳은 위험하니 들어가지도 말라’는 일방적 통제는 보호가 아니라 고립에 가까운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크다.
SNS로 인한 청소년의 피해 사례는 분명 존재하지만, 그 원인을 소셜미디어 하나로 환원하는 것 또한 위험하다. 경쟁적인 학교 환경과 불안정한 미래, 고립된 일상 같은 사회적 요인 역시 디지털 위기의 배경과 깊이 얽혀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기기를 단편적인 ‘악’으로 규제하고 통제하는 정책은 ‘장님이 코끼리 귀를 만지고 모든 것을 다 안다’라고 주장하는 방법과 같다.
게다가 청소년을 마냥 ‘보호해야 할 여린 대상’으로 규정하고 티끌 하나 없는 멸균 세상으로 키우는 방식 또한 위험하다. 모든 위험에서 아이들을 보호하기란 불가능하다. 오히려 어려운 상황에서 스스로 판단하는 방법을 키워주는 것이 먼저다. 따라서 이 사안은 ‘어떻게 막을 것인가’보다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라는 질문, 곧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의 강화로 접근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다.
최근의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은 청소년을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디지털 시민으로 바라보려는 흐름을 보인다. 개인정보 보호와 온라인 안전, 사이버 괴롭힘 대응은 이미 기본 교과처럼 다뤄지고 있고, 허위 정보 판별과 미디어 비판적 읽기는 주요 교육 내용으로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이 교육이 실제 청소년들의 SNS 경험을 충분히 담아내고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좋아요’와 팔로워 수가 자존감이 되는 현실은 단순히 ‘조심하라’는 말로 해결되지 않는다. SNS 문화가 활성화된 지금, 이 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더 다양한 예시로 접하는 구체적인 교육과 세부적인 상황에서 대응할 수 있는 전문적인 교육이다. 진짜 교육은 위험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위험 속에서 선택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데서 시작된다.
이미 디지털 물결의 세계는 거세게 진행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일방적인 통제는 시대착오적인 방안일 뿐이다. 따라서 청소년을 SNS 위험으로부터 지키는 가장 지속 가능한 방식은 무조건적인 격리가 아니라,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디지털 시민으로 키우는 일임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