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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녜스 Aug 20. 2021

적막한 황무지에서, 우리는 어떤 답을 찾았는가

영화 <Chasing the Moon>



 우리에게 달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매일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마주할 수 있는 것이 달이다. 왜 인류는 나고 자란 행성을 떠나 달에 발을 디디고자 했을까? 1960년대, 양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시작된 냉전 속에 미국은 왜 하필 달 착륙을 목표로 삼았으며, 달 착륙을 통해 그들이 얻고자 했던 답은 무엇일까. 어떻게 달에 가는 프로젝트가 미국이 처한 수많은 문제들을 제치고 국가적 우선순위에 자리 잡을 수 있었을까. 나아가 닐 암스트롱이 말한 것처럼, 정말 그가 내딛은 달에서의 한 발자국이 인류에게는 큰 도약이었을까? 영화 <Chasing the Moon>을 통해 앞의 질문들을 짚어보고자 한다.


 2019년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50주년을 기념하여 미국 PBS를 통해 방영된 <Chasing the Moon>은 3개의 에피소드로 구분되며 장장 6시간에 달하는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화이다. Robert Stone이 감독을 맡았으며, 아폴로 8호나 11호에 실제 탑승했던 우주비행사나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이들을 새롭게 인터뷰하여 내레이션을 대신한다. 감독은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역사적 사건을 인터뷰이들의 스토리텔링과 위트 있는 농담을 통해 긴장감 있게 그려내는 데 성공했다.


 영화는 냉전 시기 소련과 미국 사이 우주선 발사 및 달 탐사 분야의 치열한 경쟁을 담아낸다. 특히 영화는 일반 대중이 알기 어려웠던 사건들의 내막과 다양한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자세히 그려낸다. 나치에 가담했다가 독일을 떠나 미국으로 망명하여 어린 시절의 꿈을 이룬 폰 브라운의 스토리나, NASA 엔지니어들이 마주하는 기술적 난해함, 어마어마한 국가 예산 조달을 위한 홍보 및 선전의 존재,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관련 인물들의 속마음 등이 6시간이라는 긴 러닝타임을 알차게 구성하고 있다. 


 <Chasing the Moon>은 1960년대의 달 프로젝트가 그러했듯이 효과적인 스토리텔링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스토리텔링에 있어서는 1960년 대 실제 프로젝트의 관계자였던 이들의 인터뷰가 빛을 발한다. 그들은 ‘I’, ‘WE’ 등 1인칭 시점에서 과거를 회상한다. 이는 시청자로 하여금 그들 역시 50여 년 전 거대한 프로젝트의 일부가 된 듯한, 나아가 그 성공이 빚어낸 영향력의 일부가 된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게끔 해 준다. 실제 아폴로 11호 탑승자들의 인터뷰는 닐 암스트롱의 달 착륙 직후 첫 마디에 대한 배경과 당시 감정까지도 드러낸다. 전 소련 서기관의 아들이자 미국으로 망명한 Sergei Khrushchev의 인터뷰는 영화 전반에서 매우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데, 그는 미국이 달성한 업적에 대해 균형 잡힌 시선을 제시하고, 그 당시 소련의 입장을 새롭게 해석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영화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달 착륙 50주년을 기념하여 제작되었다면, 그 ‘착륙’이 담고 있는 가치와 스토리는 무엇이었을까. 스푸트니크의 성공 이후, 1961년 5월 25일 J. F. Kennedy는 1960년대가 끝나기 전까지 인류가 달에 갈 것임을 선언한다. Audra J. Wolfe는 『냉전의 과학』 6장을 통해 미국이 소련에 비해 후발 주자로 출발했으나, 우주 탐사 과정에서의 ‘개방성’과 ‘스토리텔링’을 통해 “자유민주주의에서도” 대규모의 노력을 요하는 기술적 성취와 문제 해결이 가능함을 보여주었고, 이를 통해 냉전 가운데 미국의 리더십을 소련의 그것과 차별화했다고 분석한다. 


 미국 정부는 지구 궤도 비행과 달 착륙 등의 유인 우주선 프로젝트를 통해 그들이 마주한 가장 큰 문제의 답을 구하고자 했다. 바로 소련과의 패권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고, 제3세계 국가들로 하여금 자신을 우러러 보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소련이 그러했듯 비밀 유지에만 집중하는 대신, 과학기술이 새롭게 보여줄 수 있는 세계를 널리 홍보함으로써, 그리고 그 세계를 실제로 사람들의 앞에 가져옴으로써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얻었다. 미국 정부는 대외적으로 구한 ‘답’은 평화와 개방성, 다양한 인종의 포용과 인류의 통합을 도모하는 ‘이미지’였다. 1969년 7월 20일, 6억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아폴로 11호의 발사와 우주 비행 과정을 실시간으로 지켜보았고, 많은 이들이 한마음으로 세 우주 비행사를 응원했다는 사실은 미국 정부가 대외적인 답을 구하는 데 성공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 열광은 아폴로 11호의 성공이 오래 지나지 않아 증발하기 시작했다. 인류는 더 이상 달 착륙과 달 탐사에 열광하지 않았고, 예산과 관련 일자리는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미국은 잠시 동안의 연대를 위해 정말 우주 프로젝트에 그 많은 돈을 투자해야만 했을까? 1969년 인간의 달 착륙은 냉전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미국의 어마어마한 경쟁심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그렇다면 미 정부와 케네디를 제외한 다른 이들이 달 프로젝트를 통해 구하고자 한 답은 무엇이었을까. 폰 브라운을 포함한 과학자들은, 우주비행사들은, 관제소 엔지니어들은, 각각 어떤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했고, 또 아폴로 프로젝트의 성공을 통해 어떤 답을 구했을까? 과학자들은 어쩌면 개인적인 호기심을 해소하고자 했을지도 모른다. 혹은 조금 더 대의적인 차원에서 지식의 축적을 원했을 것이다. 군 소속 시험 비행사였던 우주비행사들은 용맹함과 국가에 대한 헌신을 달성하고자 했을 테다.


 이 영화는 우주비행사의 부인들, 첫 흑인 예비 우주비행사였던 Ed Dwight, NASA 관제소의 첫 여성 엔지니어 Poppy Northcutt 등의 이야기를 담음으로써 당시 인종 간, 젠더 간에 존재했던 넘기 어려운 크레바스들을 조명하고, 그들 각각이 해결하고자 했던 문제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좇았던 답이 무엇인지도 보여주고자 한다. 10여 년 간의 우주 탐사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동안, 매 비행마다 가슴 졸여 하는 배우자들이 있었다. 특히 <Chasing the Moon>에서 집중 조명한, 아폴로 8호에 탑승했던 Frank Borman의 아내 Susan Borman의 모습이 기억날지 모르겠다. 흐려진 초점으로 손을 떨며 텔레비전 화면을 바라보고, 아들의 위로를 받던 그가 원한 건 인간의 달 착륙이 아닌, 오직 남편의 안위였을 것이다. 한눈 팔지 못하는 관제소 엔지니어들의 경우, “관제소의 모두가 모니터링하는 특정치가 있었는데, 두려움의 낌새가 느껴졌다”. 그러나 그들이 구한 답은 뭘까? 모니터링하는 수치를 유지하는 것, 제대로 작동하게 하는 것이었을 테다. 너무나 단순했을지 모르지만, 그들이 그러한 오차 없는 정답을 구하는 데 온 정신을 집중하지 않았다면 1969년의 달 착륙은 없었을 것이다. 나아가 첫 흑인 시험 비행사였던 Ed Dwight은 실제 비행에 참여할 우주 비행사 선발에서 제외되면서 흑인이라는 정체성과 함께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서 고민했고, Poppy Northcutt 역시 더 많은 여성들이 엔지니어를 포함한, 지금까지 여성들이 배제되어온 직업을 가질 수 있음을 인식하게 만들고자 여러 인터뷰에 응하고, 누구보다도 열심히 근무했다. 


 혹자는 새로운 지식을 발견하는 것은 곧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내는 것이라고 한다. 달에 도착함으로써 창조된 세계, 혹은 지식은 무엇일까? 어쩌면 그 고요하고 적막한 황무지에서 창조된 세계는 아름다운 지구에서 한 마음 한 뜻으로 기뻐하는 인류가 살고 있는 세계가 아니었을까? “우리는 모든 인류를 대신해 평화적으로 왔다. 전 세계에 잠시나마 공동체의식이 형성되었다”는 영화 속 멘트나,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다”라는 암스트롱의 말처럼 말이다. 그러나 결국 달에는 성조기가 꽂혔다. 달 착륙을 통해 하나가 된 것은 미국일까, 아니면 정말 전 세계일까. 왜 우리가 달에 가야 했는지, 전 인류적 차원에서 통일된 하나의 답이 정말 존재할 수 있을까? 고작 몇 달러가 없어서 하루 한 끼조차 제대로 먹지 못하는 이들을 뒤로 한 채 달에 가야만 했던 이유가 무엇일까. 가난에 굶주린 이들이 달 착륙을 통해 얻은 답은 무엇일까.


 우리는 인류를 연결 짓는 지식을 위해 얼마나 많은 돈을 투자해야 할까?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우리가 어디에서 살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지식 탐구의 가치는 무엇일까? 또한, 현재와 미래 사이에 무엇을 우선시해야 할까? 우리의 기원을 찾는 데 힘써야 할까, 현재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을 구원하는 데 더욱 힘써야 할까? 우리는 누구의 삶의 답을 찾아주는 데 국가의 돈을 가장 많은 비율로 투자해야 하는 것일까. 


 영화의 일부분은 케네디의 열정과 그의 암살, 그리고 그의 연설을 반복해서 조명함으로써 당시의 거대 프로젝트를 지식을 향한 순수한 열정의 산물로 정당화하려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은 아폴로 11호 발사 전날, 발사 장소인 Cape Kennedy를 찾아온 Ralph Abernathy와 빈곤 퇴치 운동가들을 NASA 관리자가 직접 대면하는 모습을 조명하는 등, 달 탐사 프로젝트와 관련하여 꾸준히 제기되어온 문제 또한 완전히 배제하고 있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도 아폴로 프로그램을 포함한 일련의 우주 탐사 프로그램이 국가적 차원에서 잘못된 선택이었음을 주장하는 이들의 인터뷰를 추가했다면 영화가 더욱 균형 있게 느껴지지 않았을까, 하는 궁금증이 남는다.


 적막한 달에서 바라본, 아무것도 없는 우주 속에 떠 있는 지구가 너무나 아름다웠던 earthrise 장면이 보여주고자 한 것은, 미국이 뒤로 한 많은 빈곤층, 인종 차별, 성차별 이슈들이지 않았을까. 물론 닐 암스트롱의 첫 한 걸음은 실로 인류의 위대한 도약이었을지도 모른다. 과학자들, 엔지니어들의 인내, 정부의 추진력, 우주비행사들의 용기와 희생에 박수를 보내야 마땅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달에서 바라본 푸르른 지구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문제가 늘 존재함을, 그리고 그러한 문제에 대해 답을 찾기 위해서 모두가 합심해야 함을 일깨워준다. 


 달을 좇음으로써 당시 사람들은 어떠한 답을 좇았을까. <Chasing the Moon>은 과학기술에 대한 국가적 투자와 과학자들의 열정, 사람들의 호기심이 앞으로 어떠한 답을 구해야 할지, 그리고 서로 다른 질문을 어떻게 조율할 것인지, 그 방향성을 고민하도록 한다. 순수한 과학의 영역은 없다. 과학기술과 사회는 분리되어 존재할 수 없고, 과학기술이 좇는 답 역시 사회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Chasing the Moon>은 이러한 메시지를, 인간의 달 착륙 50여 년이 지난 현재 더 급격하고 불확실한 변화들을 마주한 인간에게 건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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