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을 나누는 새로운 상상
가끔은, 내가 쓴 글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모를 때가 있다.
브런치에 올린 짧은 단상이 누군가의 SNS에 떠돌고, 기억 속에 붙잡아둔 문장이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다시 쓰이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묘한 허전함이 밀려온다.
“이건 내 글이 맞을까? 내가 지켜야 할까, 아니면 나누어야 할까?”
나는 전업 작가도, 출판 계약을 맺은 저자도 아니다.
그저 일상을 기록하고, 책에서 받은 울림을 나누며, 때때로 누군가의 하루에 스며들기를 바랄 뿐이다. 하지만 그런 글조차도 하나의 ‘창작물’이며, 법적으로는 ‘저작물’로 분류된다. 바로 그 지점에서, 글쓰기와 권리, 그리고 민주주의의 가능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고등학교 1학년인 딸이 있다.
시험 기간이면 늘 아이패드를 열어두고 음악을 들으며 공부하는데, 어느 날은 “엄마 이 노래 좋아”라며 들려준 게 테일러 스위프트의 <All Too Well (Taylor’s Version)>이었다.
“테일러스 버전? 그게 뭐야?” 묻자 딸은 이렇게 답했다.
“자기 노래인데, 옛날 회사에서 권리를 뺏겼대. 그래서 자기가 다시 녹음한 거래.”
이야기를 찾아보니 놀라울 정도로 복잡했다.
스위프트는 데뷔 초 계약한 음반사에 앨범 6장의 마스터 권리를 넘겼고, 이후 그 권리는 아티스트의 동의 없이 다른 자본가에게 매각됐다. “내 목소리가, 내 음악이, 내 것이 아니다”는 분노는 결국 재녹음 프로젝트로 이어졌다. Taylor’s Version은 단지 음악이 아니라, ‘내 권리를 되찾기 위한 창작자의 선언’이었다.
그때 문득 생각했다.
딸의 플레이리스트 속 한 곡이, 세계적인 뮤지션의 분투와 회복의 결과였다면,
나의 글은 어떻게, 누구에 의해 흘러가고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저작권은 창작자의 권리”라고 믿는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 권리가 실제로 누구에게 돌아가는지를 살펴보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저작권은 거래 가능한 권리, 즉 자산이다. 창작자는 그 권리를 유통사나 출판사, 소속사에 양도하거나 라이선스를 부여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수익은 그 ‘조직’이 가져간다.
대형 기획사 소속 가수의 곡과 무명의 창작자가 만든 자작곡이 같은 음원 플랫폼에 있어도, 그 수익 구조는 하늘과 땅 차이다. 플랫폼과 유통사가 대부분의 이익을 가져가고, 창작자는 계약서에 따라 일정 비율만을 받는다. 스위프트의 사례는 이 구조의 모순을 정확히 보여준다. 창작자는 작품을 만들지만, 권리는 쉽게 타인의 손에 들어간다.
놀랍게도 저작권은 처음부터 창작자를 위한 제도는 아니었다.
그 기원은 18세기 영국, 인쇄업자들이 자신들의 복제권을 독점하기 위해 만든 법률에 있다. 이후 산업화와 함께 창작물은 상품이 되었고, 저작권은 ‘창작의 증거’가 아니라 ‘거래되는 권리’로 자리 잡았다.
『우리는 저작권 없이 살 수 있을까』에서 박경신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저작권이 강해질수록 창작자의 이익은 오히려 줄어들 수 있다.
저작권은 창작자보다 자본이 더 잘 활용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결국 창작자가 가진 권리는, 그 권리를 다루는 법적·경제적 구조 안에서 제한되기 쉽다.
그리고 그 틈에서, 분쟁과 독점, 불공정 계약이 끊임없이 자라난다.
나는 혼자 글을 쓰지만, 그 글은 혼자 존재하지 않는다.
누군가 읽고, 공감하고, 공유될 때, 그 문장은 공동의 감정 속에 살아 숨 쉰다.
그렇다면 그 권리 역시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함께 지켜야 할 몫이 아닐까?
이런 생각은 자연스럽게 ‘협동조합’이라는 오래된 방식을 떠올리게 했다.
스페인 바스크 지방에서 시작된 몬드라곤 협동조합은, 노동자들이 스스로의 삶을 지키기 위해 만든 경제 실험이다. 기업의 주인은 노동자고, 이익은 다시 공동체로 돌아간다. 그 안에서는 생산성과 소유보다 존엄, 연대, 지속가능성이 우선된다.
그렇다면 저작권도 이런 방식으로 다룰 수는 없을까. 저작권 협동조합은 창작자들이 주체가 되어 저작권 등록을 공동으로 하고, 수익 배분과 사용 내역을 투명하게 관리하며, 불법 사용 대응과 마케팅을 협력적으로 운영하는 공동체 기반의 권리 모델이다. 독일의 음악 스트리밍 플랫폼 ‘Resonate’는 이를 실제로 실험 중이다. 이용자와 창작자가 함께 조합원이 되어 플랫폼을 운영하고, 콘텐츠 사용량에 따라 공정한 보상을 받는 구조다. 여기서는 ‘얼마나 팔렸는가’보다 ‘얼마나 공감되었는가’가 더 중요한 가치가 된다.
테일러 스위프트가 권리를 되찾기 위해 다시 부른 노래처럼,
우리의 글과 음악, 사진과 아이디어도 다시 쓰고, 다시 나누고, 다시 지킬 수 있는 권리가 있다.
거대한 자본 구조가 틈을 두려워할 때, 협동조합은 바로 그 틈에서 새로운 방식을 상상하게 만든다.
창작이 권리가 되고, 권리가 연대가 되는 길.
그 시작이 협동조합이라면, 그것은 결코 낡은 방식이 아니다.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작고도 단단한 상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