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여름, 협동조합 해외연수로 찾은 이탈리아.
그때 나는 ‘패션의 도시’ 밀라노가 나에게 어떤 인상을 남길지 몰랐다.
두오모 성당의 웅장함,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갤러리의 화려한 쇼윈도, 골목마다 풍겨오는 에스프레소 향… 모든 것이 영화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이 도시의 진짜 매력은, 그 화려함 이면에서 지속가능한 삶을 ‘일상’으로 살아내는 사람들에게 있었다.
우리가 향한 곳은 밀라노 중심에서 조금 벗어난 조용한 거리,
노란 간판이 걸린 건물 ― 레가암비엔테(Legambiente).
‘환경연맹’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처럼, 이곳은 이탈리아 전역에 걸쳐 환경운동과 시민참여를 이끄는 대표적인 단체였다.
입구에 들어서자 눈에 띈 것은 화분과 재활용 박스, 그리고 벽에 걸린 다채로운 포스터들이었다.
한쪽에는 “Buon cibo, buone scelte”(좋은 음식, 좋은 선택) 이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패션과 예술, 그리고 낭만의 도시라 불리는 밀라노가 이렇게 ‘환경’과 ‘지속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우리는 단체의 활동가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천천히, 그러나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환경은 특별한 행동이 아니라 일상의 선택이에요.
우리가 먹고, 입고, 이동하는 모든 것이 환경을 바꾸죠.”
레가암비엔테가 진행하는 여러 프로젝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Good Food Bag이었다.
지역 슈퍼마켓 COOP과 함께 유통기한이 임박한 식품을 버리지 않고, 필요한 사람에게 다시 연결하는 활동이다.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면서 동시에 사회적 약자를 돕는 ‘순환의 구조’.
이탈리아 사람들의 ‘생활 속 협동’이 얼마나 자연스러운지 실감할 수 있었다.
그들이 들려준 이야기는 단순한 캠페인이 아니라,
“먹을 만큼만 사고, 남기지 않고, 함께 나누는 문화” 그 자체였다.
“우리는 버림 대신 나눔을 선택합니다.”
― 레가암비엔테 활동가의 말
그 말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진짜 ‘생활 철학’이었다.
잠시 쉬는 시간, 활동가들이 준비해준 티타임! 에스프레소.
짙고 쌉싸름한 향이 코끝을 스쳤다.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이 커피도 공정무역이에요.
멀리 라틴아메리카 농부들이 재배한 콩이 이탈리아의 아침을 만듭니다.”
그 말에 잠시 숨이 멎었다.
그들에게 커피 한 잔도 단순한 기호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세계를 잇는 다리였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멋’이란 단어의 진짜 의미를 다시 생각했다.
겉으로 보이는 세련됨이 아니라, 내면의 가치와 철학이 만들어내는 품격.
이탈리아의 패션이 허영이 아닌 문화로 자리 잡은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레가암비엔테의 사무실에는 화려한 인테리어나 새것의 냄새가 없었다.
오래된 나무 테이블, 손때 묻은 노트북, 벽에 붙은 손글씨 메모들.
하지만 그 공간은 이상하리만큼 따뜻했다.
그들의 일상은 ‘캠페인’이 아니라 ‘삶’이었다.
플라스틱을 줄이고,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며, 지역 주민들과 함께 쓰레기를 분류하고, 아이들에게 생태 교육을 하는 것.
그 하나하나가 ‘환경운동’이 아니라 삶의 습관이었다.
떠나오는 길, 나는 그들이 건네준 매거진을 가방에서 꺼내 읽었다.
표지에는 파란 바다와 함께 이렇게 적혀 있었다.
Un mare di energia
― 에너지의 바다
그 문장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작은 실천들이 모여 바다처럼 거대한 에너지가 된다는 뜻.
그들의 일상 속엔 ‘지속가능한 세상’이 이미 구현되어 있었다.
화려한 쇼윈도와 명품 브랜드의 도시 밀라노.
그 안에 이렇게 단단하고 진지한 시민들의 움직임이 있다는 사실이 새삼 감동으로 다가왔다.
한국으로 돌아와 가방 속에서 레가암비엔테의 천 가방을 꺼냈다.
노란색 천 위에 새겨진 로고 ― 날개를 활짝 편 새 한 마리.
그 새는 이제 나에게 ‘희망’의 상징이 되었다.
이탈리아에서 느낀 것은 단순한 부러움이 아니라,
“지속가능함은 멀리 있지 않다”는 깨달음이었다.
그들은 그것을 화려한 구호가 아니라, 조용한 습관으로 실천하고 있었다.
삶의 습관이 만든 조용한 혁명이었다.
나는 오늘도 커피를 내리며 그날의 향기를 떠올린다.
에스프레소의 진한 쓴맛처럼,
지속가능한 삶도 처음엔 낯설지만 곧 깊은 맛으로 스며든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백조가 되고 싶은 미운 오리 새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꿈이 바로 변화를 만든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일은 단 하나.
다시 백조의 환한 날갯짓으로 세상을 바꾸는 일.
패션의 도시에서 발견한 가장 아름다운 패션, ‘지속가능한 삶’.
그것이 내가 밀라노에서 배운, 진짜 ‘스타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