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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네스장 Mar 05. 2024

붉게 물든 노을처럼

Episode of chairs 1

호텔 인테리어 가구 담당 10년 차, 
침대 프레임부터 쿠션까지, 호텔 가구를 디자인하고 제작하는 과정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유합니다.
이를 통해 가구 보는 시야를 함께 넓히기를 바라요.


늦은 밤 업무용 카톡방에 알림이 울렸다.

톡방에는 가구가 아닌 이상한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엥? 야밤에 장난치나?‘하며 내용을 읽고 경악을 했다.


새로 제작된 중식당 의자 100개가 입고된 날이었다. 

포장 비닐을 벗고 세팅을 기다리고 있는 의자를 보며 내 눈을 의심했다. 

형광빛이 돌 정도로 붉은 벨벳 원단으로 쌓인 의자, 빛이 들어오는 창가에서 보면 색상이 더 강렬했다. 

지배인님들은 “이게 맞아요?”하며 디자인의도를 물었다.


”음… 사양서의 이미지와 색이 너무 다르네요, 확인해 보겠습니다! “라고 시간을 벌어놓고, 

중식당이어서 붉은색으로 포인트를 주고자 했던 것 같다고 상황을 넘겨보려 했지만, 

지배인님들의 눈초리는 매서웠다.


그렇게 모두를 놀라게 한 의자를 세팅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퇴근을 했었는데, 

또 한 번 놀라게 하는 연락이 온 것이다. 

톡방에는 가구가 아닌  흰색 면바지가 붉게 물들어 얼룩져 있는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새 의자에 앉아 저녁 식사를 하고 가셨던 고객님의 바지에 이염이 된 상황이었다. 

마른 수건으로 좌판을 닦아도 묻어난다고 하며 붉게 물든 수건의 사진은 덤이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세상에 이런 일이?”

호텔 가구 경력 10년 동안 처음 겪는 일이었다. 

원인을 찾고, 조치 방법을 찾아야 했다.

우선 새 의자 대신 빼냈던 기존의자를 다시 넣어두기로 하고, 원단 공급사에 다음날 아침 일찍 현장 미팅을 요청했다.


고객님께 손해배상도 배상이었지만, 의자를 반품하고 싶다고 할 정도로 문제가 심각했다. 

이염의 원인을 찾고 귀책사유를 따져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조치하는 데에는 무조건 비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가구 파트너사는 지정된 원단을 구매해서 썼을 뿐이라고 하고,

원단 수입사에서는 해외 본사와 확인 후에야 답을 줄 수 있다고 한다. 

답변을 기다리는 동안 마음은 타들어가고 걱정은 태산이 된다.  

내가 지정한 원단이 아니기에 억울하다며, 어른답지 못한 생각이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그러나 담당인 나의 책임인 일이었고, 내가 해결해야 하는 일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사양서에 지정된 원안 그대로 수입된 것은 맞았다. 

그런데 가구용 원단이 아닌, 쿠션이나 커튼용 원단을 가구용으로 잘못 판매를 했다는 것이다. 

아니, 그렇다고 이렇게 이염이 된다고요? 

붉은색 염료는 이염이 쉽고, 특히나 이렇게 강렬한 레드는 그럴 수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 

결국 원단을 판매했던 회사에서 천갈이를 진행할 수 있도록 새로운 원단을 공급하고, 이 작업을 수행하기 위한 인건비 및 물류비 등의 모든 비용을 부담하기로 했다. 그렇게 결론을 내기까지의 과정도 힘들었지만, 결론이 난 후에도 마음은 천근만근 더 무거워졌다. 비용부담이 만만치 않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업장에서는 레드 컬러 대신 다른 색상으로 변경하기를 요구하셨고, 새로운 원단을 선정하기 위해 여러 개의 샘플을 진행한 후에야 총지배인님까지 승인을 받고 진행할 수 있었다. 


패브릭 정보 / 사양 사례


이런 일을 겪은 이후로 동료들과 결정된 원단 샘플 보관 방법을 협의했다. 원단 스와치 파일링을 철저히 하고, 무엇보다 원단 사양을 확실히 체크하는 것이 중요함을 나눴다. 패브릭 브랜드의 제품에는 원단의 용도가 별도로 표기되어 있다. 가구용(upholstery), 커튼용(drapery), 쿠션용(cushions) 등 아이콘으로 표시된 용도를 꼭 확인할 수 있다. 패턴과 색상이 마음에 들더라도 용도가 맞지 않으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Heavy Use 용도인 소파나 의자의 원단은 마틴데일(matrindale)과 같은 마모 강도(abration strength) 테스트의 수치를 확인하여 높은 값의 원단을 이왕이면 선택하는 것이 좋다. 


30,000 마틴데일이라면 소파류에 써도 괜찮다고는 하지만, 직조 자체가 성글다면 의심하고, 손톱으로 뜯듯이 튕겨보는 것이 간단하게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 가구가 호텔 공간에 놓여 쓰일 수 있게 되기까지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연재 중입니다.

* 해당 글에 들어간 모든 사진은 직접 촬영한 것으로 저작권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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