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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는 스토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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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네스장
과거에 대한 부정적인 스토리는 미래를 위협한다.
과거는 의미이고, 스토리다.
그 스토리를 어떻게 구성하느냐가 미래의 나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퓨쳐 셀프, 벤자민 하디-



'나무 목'자의 하단에 점을 찍어 나무의 뿌리를 가리키는 '근본 본'자가 만들어졌다. 나무를 지탱하는 것이 뿌리이듯이 사물을 구성하는 가장 원초적인 바탕이라는 의미에서 '근본'을 뜻하게 되었다고 한다.


과거는 나의 근본이 된다.

10년이라는 시간은 뿌리가 꽤 깊어질 수 있는 시간이다.

10년 동안 하던 일에서 변화를 시도했을 때, 그 과정이 순조롭지 않았다.

실질적인 일로 보면 디자인과 브랜딩은 밀접하게 맡닿아 있고 그 경계를 나누는 것이 모호할 수 있음에도, 부서를 이동해서 직무를 변화시키는 것은 큰 화분의 분갈이하는 것 같이 무겁고 힘겨웠다.


어렵게 환경을 바꾸고 얼굴이 폈다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업무적으로, 조직 문화적으로도 만족하며 재밌게 일을 했다. 그렇게 1년도 채 되지 않아서, 나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부서가 바뀌게 되었다. 만족에서 시련이라는 표현으로 바꿔야 할 정도로 근무 환경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나는 누구인가? 여긴 어딘가?

괜찮다가도 일을 하다 보면 문득문득 현타가 온다.


이 상황을 부정적인 의미의 과거로 남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더 오래전으로, 뿌리의 시작점부터 돌아보기로 했다.

과거의 의미를 찾고 스토리를 미래와 연결시켜 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갈 길의 방향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돌아보게 된 일의 연대기,

대학 입학 시점을 원점으로 일의 뿌리로 두고 써 내려가며 의미를 찾는다.



1996

산업디자인학과 입학, 실내 및 제품디자인 전공

: 복수 전공 덕에 공간과 가구 모두에 연관되는 일을 지금까지도 하고 있다.


1999

대한민국 실내건축대전 입선, 대륙횡단 기차 인테리어 디자인

: 교통수단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았다. 제품디자인으로 접근되는 교통수단의 인테리어, 특히 대중교통은 아쉬운 부분이 많다. 훗날 크루즈선의 인테리어를 하겠다고 이직을 한 것과도 이어진다.


2001.9

CSM(Central Saint Martins, London), MA ID(Industrial Design) 대학원 입학

: 나는 디자이너이다라고 느끼게 해 준 학교, 학교 자체가 영감이었다.


2001.11 -2002.5

LG 화학 디자인 연구소 / 영국지역 모니터

현지 인테리어 동향 분석일을 하며 인테리어 자재 조사

: 조사하고 연구, 분석하는 것을 좋아했다.


2002.5

엄마가 하늘나라로 가셨다.

: 간신히 임종을 지킬 수 있었다. 엄마는 시인이셨다.


2002.6-8

212 Korea INC. VIUM팀 / 인턴사원

한국적 디자인 제품 개발, 창살의 구조를 차용한 와인랙 디자인

: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를 바탕한 디자인이 근본이 되었다.


2002.9

British Design Council, Home Office 주최 ‘Design against Crime’ Design Challenge Scheme 2002, ‘commended’상 수상

: 한국적 콘셉트로 풀어낸 방범용 블라인드 디자인으로 영국 공모전에서 수상을 하였다.


2003.6

CSM 졸업

디자인 철학과 방법론, Industrial Poetry 논문과 작품 / hANg_hANg

: 디자인 철학과 방법론에 대해 'Industrial Poetry'라는 제목의 논문을 쓰고 졸업 작품으로 'hANg_hANg'이라는 의자를 디자인을 하며 작가적인 접근의 디자인에 대해 공부했다. 사물이 가지고 있는 언어(심볼릭 한 형태)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디자인으로 시적인 영감을 줄 수 있는 실험적인 작품을 디자인했다.


2003.10

디자이너스 플래닛 2003 Art space M-post 살림 그룹전 / hANg_hANg

: 졸업작품으로 한국에 돌아와서 참여한 첫 번째 전시였다.


2004.2

인테리어 설계사 입사

: 사회생활의 시작, 첫 직장에서 문화적 충격을 심하게 받았었다. 여긴 어딘가? 나는 누구인가? 현타의 시작점이었다.


2004.4

Gallery ISWAS 개관 그룹전 / hANg_hANg

: 입사해서 바쁜 와중에도 전시에 참여했다.


2004.9

London Designer’s Block 그룹전, London (디자이너스 플래닛 후원) / hANg_hANg

: 나를 잘 봐주신 상사 덕분에 휴가를 쓰고 다녀올 수 있었다. 작품이 런던 데일리 뉴스 일면을 장식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이때의 경험은 20대의 찬란했던 순간 중 하나로 기억한다.


2004.11

Gallery ISWAS ‘WAGAMAMA’ 그룹전 / hANg_hANg 외 3점 출품

: 홍콩 친구 조이스와 수현이와 함께 했던 전시. 진지하기보다 장난처럼 세명의 우정을 다지는 데 의미를 두었던 전시였다. 새로운 작품을 디자인했는데, 아쉬운 점이 많았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그래도 꾸준히 하려고 했다는 것에 의미가 크다.


2005.11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 ‘THE CUBE’ 그룹전

: 홍콩친구 조이스와 둘이 함께했던 전시였다. 이때도 새로운 작품을 만들었는데, 더 절실하게 치열하게 준비해서 좋은 기회를 잘 살렸어야 했다.


2005.9-12

경원대학교(현 가천대학교) 디자인 문화정보 대학원 라이프 스타일 학과 출강

: 이 기회를 어떻게 얻게 되었는지조차 기억에 없다. 참 소중했던 기회였는데... 감사함도 모르고 소중함도 모른 채 나 잘난 맛에 내가 아는 선에서, 경험한 선에서 강의를 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참 즐겁게 열심히 참여해 줬던 학생들이 기억난다.


2006.9

London Designer’s Block 그룹전, London/ Mr. Comfy & Ms. Handy

: 2년 만에 다시 참여하게 되면서 신작 2개를 디자인했다. 스스로도 만족스러웠고, 호응이 좋았다.


1996-2006(10년) 동안
작가 디자이너로서의 뿌리를 내렸다.

그러나 작가로서의 삶에 전념하지 못하고, 회사 생활과 병행하며 취미처럼 아마추어의 태도로 작품활동을 했다. 그땐 그렇게라도 하다 보면 뭐라도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절실함, 치열함, 좋아하는 마음이 부족했고, 결국 안정적인 환경을 포기하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한다.

돌아보면 작품활동을 하면서 강의를 하는 주변의 프리랜서 디자이너들이나 작가님들과 같은 길을 갈 수도 있었을 텐데, 용기가 없었고 나에게 주어졌던 기회들에 대한 감사함이나 소중함이 부족했다.

회사에서는 특급 승진을 해서 팀장을 달았다.

길잡이가 되어주셨던 엄마가 떠나시고 허한 마음을 그저 바쁜 생활로 달랜 것 같기도 하다. 나아갈 방향을 설정하지 않은 채로... 발 닿는 데로... 철없던 20대였다.




2006.12

결혼


2007.2-4

ARCO, RESET 그룹전, Madrid/ Spain / Mr. Comfy

:임신 중이었기에, 작품만 보냈다.


2007.11

서준 출산


2007.12

SEOUL DESIGN WEEK 그룹전, 삼성동 COEX (국내 선도디자이너 초청)

:작품만 보냈다.


2008.10

Seoul Design Olympic: Design is Air 그룹전, 잠실 종합 운동장

:작품만 보냈다.


2008.3–12

동덕여자대학교 산업디자인과 가구디자인 수업 출강

: 팀장이었기에 회사에서 배려해 줘서 출강이 가능했다. 그런데 너무 힘들었다. 육아도 해야 했고, 회사일에 치여서 강의에 정성을 담지 못하는 것에 학생들에게 너무 미안했고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더 이어가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아쉬운 부분이다. 계속 이어서 할 수 있는 자리였는데 나 스스로 놓아버렸다.


2008.11

백석대학교 인테리어 디자인 학과 가구디자인 특강

: 이런 기회들이 어떻게 연결되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누군가 감사하게 연결해 주셨을 텐데 말이다.


2008. 11

인테리어 설계사 퇴사

: 국내 5성급 호텔의 설계를 주로 했던 회사였다. 신라, 하얏트, 조선, 해비치 등등 호텔 프로젝트와 파생된 명품관, 고급 레지던스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일을 몸이 부서지도록 했었다. 연봉은 낮았고, 나와 가족을 돌볼 수 있는 시간과 여유가 없었다.


2009.1

STX 조선해양 입사

: 더 안정적인 대기업으로 이직. 크루즈선의 인테리어 기반기술 개발 국책과제 총괄 담당이 메인 업무였다. 대기업에서의 체계적인 관리, 연구 분석 보고서 작성을 하며 글 쓰는 것이 좋았다. 설계사에 비하면 천국 같은 일터였다. 출장은 많았지만 야근도 거의 없고 함께 일하는 동료들 모두 배울 점이 많은 친구들이었다.


2012.6-11

인덕대학교 실내건축디자인과 현장밀착형 직무기반 교육과정개발위원회 위원 활동,

가구디자인 커리큘럼 개발

: 설계사 다닐 때 후배의 소개로 참여하게 되었다.


2013. 11

STX 조선해양 퇴사 (권고사직)

: 권고사직의 의미조차 잘 모르던, 여전히 철없고 현실감각 없는 상태였다.


2014.2

프롬나드디자인연구원 활동 시작

: 영국 유학시절 함께 공부했던 언니의 추천으로 합류하게 되었다.


2014.5

호텔 롯데 입사, FF&E 담당

: 설계사 상사의 소개가 있었다. 그러고 보면 회사는 싫었지만 사람은 얻었던 곳이었다. 감사함을 제때 표현하지 못했던 게 부끄럽다.


2015

‘디자인 사람을 만나다’, 프롬나드 디자인 4 (한국학술정보) / 바다로의 디자인 항해 집필 / 2016년 우수 학술 도서 선정

: 여객선 설계를 하던 사람으로서 몇 년 동안 하던 일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글을 썼다.


2006-2016(10년) 동안
작가 디자이너이기보다 인테리어 분야에서 실무적인 커리어, 관리자로서의 커리어를 쌓았다.

국책과제를 하며 연구 보고서를 쓰고, 글 쓰는 디자이너로 공저를 쓰면서 쓰는 사람의 뿌리를 내렸다.

나를 잃었지만 또 다른 나를 발견하는 가족과 함께하는 안정적인 30대였다.




2017

시그니엘 서울 호텔 오픈

: 프로젝트를 끝내고 뼈마디까지 아팠다. 번아웃이 왔다. 너무 힘들었지만 경력상 최고의 프로젝트였다.


2019.1

코로나 팬데믹으로 호텔 산업 위기

: 회사의 경영 악화로 주 4일 근무가 시작되었다. 월급은 줄었지만 시간이 생겼다. 그 시간에 많은 것을 시도했다. 재테크, 글쓰기, 독서 모임 등 온라인 활동을 하며 자기 계발에 시간을 투자하기 시작했다.


2020.6

시그니엘 부산 호텔 오픈

: 시그니엘 서울과는 또 다른 어려움이 있었다. 새로운 재료를 사용한 제작 기술들을 시도할 수 있었던 경험이었다. 코로나 시기에 셧다운 되는 공장을 컨트롤해야 했던 어려움도 있었다.


2020.12

‘디자인 본질을 말하다’, 프롬나드 디자인 8 (한국학술정보) / 호텔의 마법 집필

: 시그니엘 서울 프로젝트의 경험을 사례로 담은 글을 썼다.


2020.12

브런치 작가 선정

:꾸준히 글쓰기 모임에 참여하고 글을 써서 브런치 작가에 도전했다.


2022.9

디니어 카트 체어 디자인

: 참여하던 커뮤니티에서 연결되어 가구 디자인 코칭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2022.10

서울 디자인 2022, 프롬나드디자인 연구원 단체전, DDP / Mr. Moderism

: 20년 전 디자인한 작품을 전시할 수 있었다. 신작은 없었지만 그동안 브랜딩, 글쓰기 공부를 하며 전시하는 과정과 작품의 스토리를 담은 콘텐츠를 꾸준히 발행해서 공감을 많이 받았다.


2023.1-6

앤드엔 클럽 학습(욕망, 비즈니스모델, 기획자의 글쓰기)

: 일생에 이런 공부를 할 수 있었음에 감사한다. 인문학을 기반으로 학습할 수 있었기에, 사람에 대해 더 이해하고 삶을 더 잘 꾸려갈 수 있게 되었다. 공부의 의미와 재미를 알게 되어 평생 학습 하는 어른이 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2023.11

오래 클럽 오래 데이 미니 세미나

: 지행용훈평을 배우고 '훈'을 실행해 본 소중한 경험이다.


부서 이동 결심하고 직무 이동 신청

: 고여있는 상황을 깨닫고 일의 영역을 확장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기로 했다.


2024.1

타임블록크루 미니 세미나

: 2020년부터 함께하던 커뮤니티 신년회에서 미니 강연을 했다. 스스로 하겠다고 손들었던, 도전하는 내가, 변화된 나를 만났다.


2024.2

브런치 커리어분야 크리에이터 선정

: 10년 동안 해왔던 일(호텔 가구 디자인)에 대해 꾸준히 글을 썼더니 브런치에서 크리에이터로 선정되었다.


2024.4.1

롯데호텔 브랜드팀 발령

: 10년을 호텔일을 하면서 몰랐던 부분이 많았던 것을 깨달았다. 브랜드 콘텐츠 담당이어서 글쓰기도 직접 하고 브랜드별 경험 콘텐츠를 만들고, 기준을 세우는 작업들이 너무 재미있었다. 신규 호텔의 브랜드를 제안하며 콘셉트를 쓰고 제안하는 콘셉트 라이팅 업무, 조사, 분석해서 개념을 정립하고 기획하는 브랜드 스탠더드 수립 업무도 잘 맞았다. 특히 웰니스에 대해 담당하면서 호텔의 웰니스에 대해 딥다이브 했던 시간이 의미 있었다.


2024.4.3

동덕여자대학교 실내디자인학과 진로 특강

: 후배들에게 진심을 담아 이야기를 해줄 수 있어서 뜻깊었다. 강의를 계속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2024.11

롯데호텔 서울 시설안전관리팀 발령

: 그동안의 자기계발했던 의미를 한순간에 물거품이 된 듯 한 상황에 직면했다. 접점이 없이 무인도에 떨어진 느낌이다. 이렇게 쓰다 보니 더 그러하다.


2023.7-2024.12

컨티뉴어스 클럽 학습(두런두런 독서클럽, 영감클럽, 김도영의 브랜드 라이팅, 채자영의 문장 수집, 원지수의 브랜드 내러티브)

: 1년 6개월간 함께 지속해 온 공부에서 남는 것은 사람이었다. 미래를 그려볼 힘을 얻게 해주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다.


2017-2024(8년) 동안
다양한 분야를 학습했다. 사람, 글쓰기, 브랜딩, 재테크 등을 학습하면서 그릇을 키웠다.

디자인뿐만 아니라 브랜딩을 할 수 있는, 강의도 하고 코칭도 하는, 글 쓰는 디자이너로 뿌리내렸다.

이 뿌리와 전혀 상관없는 '방재담당'에서의 경험은, 현재로서는 그 의미를 알지 못한다.
단지 그럼에도 감사하고 현실에 충실하려 노력할 뿐이다.




28년 동안의 일의 연대기에서 근본을 돌아보고 나의 키워드를 찾았다.



본질 : 창작

가치 : 우아한 활력

상징 : 스토리 디자인


변하지 않는 본질은 '창작' 활동이다.

작품 활동이던 회사에서의 일(인테리어 프로젝트, 보고서, 가구 등)이던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이 좋다.


창작활동을 하면서 나만이 차별화될 수 있는 가치는 '우아한 활력'이라고 정의했다. 군더더기 없이 심플하지만 따뜻함이 있는 우아함 속에서 활력이 있는 것을 의미한다. 활력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데에서 얻고 나눈다. 글을 쓰고 소통하던, 전시를 해서 소통하던, 강의를 하던, 코칭을 하던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에서 오는 활력을 가치로 둔다.


고립된 창작이 아닌 소통을 통한 창작 활동을 하는 데 있어서 표현되는 상징 키워드는 '스토리 디자인'이다. 창작물에 스토리를 부여함으로써 나라는 브랜드를 알리고자 한다.


현재를 이끄는 것은 미래다.
더 원대한 미래와 연결하라.
중요한 문제는 절대 시급하지 않다.
-벤저민 하디-


미래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
무슨 일에 전념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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