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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그네스 May 18. 2023

이게 대체 왜 한국에서 가장 인기 없는 언어야?




   제목은 거창하게 한국에서 가장 인기가 없는 언어라고 했지만, 사실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와 같이 사용자 수가 1억 명이 넘는 유럽어 중에서만 해당하는 것이긴 하다. 위에 있는 사진에서도 추측할 수 있겠지만 정체는 바로 러시아어이다. 오늘은 지난 포스팅에서 예고한 대로 러시아어와 그 뿌리가 되는 슬라브어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다.


   러시아어는 왜 한국에서 인기가 없을까? 그 이유는 살짝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우리가 모국어로 사용하는 한국어는 한글이라는 글자를 기반으로 하고, 가장 익숙한 외국어인 영어는 라틴 알파벳을 기반으로 한다. 그런데 러시아어는? 한글도 라틴 알파벳도 심지어 한자도 아닌 키릴 문자가 기반이 된다. 이 점이 한국인에게는 첫 번째 관문이 된다. (앞서 이야기한 독일어, 프랑스어 그리고 스페인어와 같은 유럽어의 경우는 소리가 약간 다를 수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모두 라틴 알파벳을 사용하고 있다.) 위에 첨부한 사진에서 볼 수 있다시피 키릴 문자에도 영어와 비슷한 문자가 몇 개 있긴 하지만 다소 외계어(?)처럼 느껴질 수 있는 것들도 많기 때문에 익숙해지기가 쉽지 않다. 심지어 영어와 생김새가 비슷한 문자이더라도 아예 다른 소리가 나는 경우도 빈번하다. 예를 들어 영어에서 H는 'ㅎ' 소리가 나지만 러시아어에서 H는 'ㄴ' 소리가 난다. 언어의 시발점이 되는 '문자'부터 진입장벽이 이토록 높다 보니 자연스레 멀어지게 된 것이다.


   한국인에게 러시아어가 인기가 없는 이유는 이게 다가 아니다. 발음과 강세에서도 그 원인을 찾아볼 수 있는데, 특히나 한국어나 영어 구사자에게는 다소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는 부분들이 많다. 모든 알파벳에 강세가 올 수 있는 데다가 강세가 어디에 오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는 경우도 빈번하다.



   러시아어가 인기가 없는 이유를 말하다 보니 러시아어의 어려운 점만 나열한 꼴이 됐는데, 그래서 이번엔 뿌리적으로 접근해서 러시아어의 매력을 알아보려 한다. 지난 포스팅에서 언급한 것처럼 영어의 뿌리는 게르만어, 프랑스어의 뿌리는 라틴어(로망스어)인데 러시아어의 뿌리는 이와는 완전히 다른 슬라브어이다.


   물론 이 세 뿌리 모두 '인도유럽어'라는 같은 뿌리로부터 파생된 것이긴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전혀 다른 형태로 발전해 왔다. 그중 슬라브어는 원시 인도유럽어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기 때문에 다른 언어와는 다른 독특한 특징을 많이 가지고 있다. 관사가 없다는 점, 굴절성이 강하다는 점 그리고 완료상-불완료상 등의 '상(相)'이 발달했다는 점 등이 그러하다. 원시 언어의 특징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만큼 셋 중 가장 보수적인 언어로 꼽히기도 한다. 그렇다면 언어가 보수적이라는 것이 학습자에게 어떤 의미가 될까? 필자의 개인적인 관점에서 보면 보수적인 언어를 학습하는 것은 외국어 학습자에게 장점으로 작용한다. 쉽게 체감할 수 있도록 한국어를 예시로 비교해 보자. 한국어는 한국인한테도 어렵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신조어가 쉴 틈 없이 나오고 실제 우리가 하는 말과 이론이 상당히 다른 부분도 많다. 이러한 특징을 가진 언어는 학습자가 웬만큼 배우더라도 계속해서 접하고 사용하지 않게 되면 금방 감을 잃을 확률이 높다. 그러나 보수적인 언어라면 처음에는 조금 어려울 수도 있지만, 결국 정해져 있는 틀이 있기에 상대적으로 공부하거나 유지하는데 어려움이 덜하다는 것이다. 슬라브어에 해당하는 러시아어를 비롯한 체코어, 폴란드어, 크로아티아어 등이 그러하다.


   체코에 잠깐 동안 살면서 체코어를 경험해 본 적이 있는데 체코어는 키릴 문자가 아니라 라틴 알파벳을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정말 생소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당시 한국인들이 체코어가 너무 어려워서 배우려고 시도했다가도 그만 뒀다는 말에 지레 겁을 먹고 포기해 버렸던 것에 아쉬움이 남는다. 어떤 언어든 처음 접하려고 하면 그 언어를 이미 공부하고 있거나 해본 사람들이 '이 부분이 너무 어려워서 별로다'와 같은 말로 겁을 주기도 하는데, 이런 말에 연연하지 말고 본인에게 뜻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도전할 가치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 한국인이 그토록 어려워하는 슬라브어 계열의 언어도 처음에는 힘들지만 나중에는 오히려 다른 언어보다 더 나을 수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언어라는 것이 결국 현재도 사람들이 계속해서 사용하는 '말'이기 때문에 본인의 의지만 있다면 어려운 언어라도 충분히 배울 수 있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드디어 필자가 가장 자신 있는 주제인 '스페인어'의 난이도를 비롯하여 전반적인 스페인어 학습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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