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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그네스 Dec 12. 2023

브뤼셀에서 생긴 기막힌 일들

지극히 개인적인 브뤼셀 여행기

    종강이 다가오면서 마지막 주말에 어딜 다녀올까 고민하다가 가까운 공항에서 벨기에 브뤼셀까지 가는 항공편이 왕복 5만 원 정도인 걸 발견하고 고민 없이 질렀다. 원래 가보고 싶던 곳도 아니었고, 어떤 나라인지 이미 잘 알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2년쯤 전에 워홀 국가를 정하느라 여러 나라를 알아보다가 얼핏 인종차별이 심하다는 것을 들은 게 내가 벨기에에 대해 알고 있던 전부였다.


    아무튼 1시간 정도 차를 타고 공항으로 갔고 무사히 브뤼셀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2시간 후 브뤼셀 공항에 내려져서 이제 시내로 가려고 미리 찾아둔 '브뤼셀 공항에서 시내 가는 법'을 보았다. 그런데 30분째 (크지도 않던) 공항을 돌아다녀도 내가 네이버에서 본 사진이 나오지 않았다. 내가 본 방법은 기차를 타고 시내까지 가는 것이었는데 아무리 찾아도 기차를 타는 곳이 보이지 않아 너무 이상해서 공항 데스크에 물어봤다. 그랬더니 여기는 기차를 타는 곳이 없단다. ?????? 분명히 네이버에서는 다들 기차를 타고 갔다고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이상해서 구글 지도를 켰다. 그런데 이게 웬걸???? 나는 브뤼셀이 아닌 샤를루아에 있었다. 그때부터 미친 듯이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내가 비행기를 잘못 탔나?

아니 그랬으면 입구컷 당했을 텐데..


아니면 내가 더 가서 내려야 됐는데 중간에 내렸나?

버스도 아니고 비행기가 무슨 중간에 멈춰;


이미 숙소 브뤼셀로 다 예약해 놨는데 그건 어쩌지..?



    정말 별의별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농담 같겠지만 그때부터 핸드폰 배터리가 엄청 빠른 속도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전부터 말썽이긴 했음) 보조배터리를 꽂아도 충전이 되는 속도보다 줄어드는 속도이 더 빨랐고 현금이나 카드를 안 가지고 다녀서 핸드폰이 방전되면 난 진짜 정말 답이 없는 미아가 되는 상황이었다. 진짜 수능날 시험지를 받은 것마냥 머리가 새하얘졌다. 나름대로 여행 짬이 좀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엔 진짜 레전드였다.

    알고 보니 내가 도착한 공항의 정식 명칭은 '브뤼셀 샤를루아 쉬드 공항'으로 브뤼셀이 아닌 샤를루아에 있는 공항이었다..


    죽으라는 법은 없는지 사람들이 다 한 곳으로 가길래 나도 그리로 따라가 보았더니 브뤼셀 시내로 가는 고속버스 정류장이었다. 급하게 남은 배터리로 인터넷에 접속해서 버스 티켓을 사고 그때부터는 핸드폰을 아예 안 만지고 보조배터리를 꽂은 채로 충전만 되길 기다렸다.


    드디어 역대급 고비를 넘기고 브뤼셀 시내에 도착했다. 첫날은 숙소 값을 아끼려고 호스텔(게스트하우스)로 잡았는데 구시가지 코앞이어서 밤 풍경을 만끽하기에 최고였다. 그 고생을 하고 왔던 게 싹 잊히고, 왜 브뤼셀이 여행지로 유명하지 않은지 의문을 갖게 되는 정말 내 스타일의 구시가지였다.

 

   호스텔은 여성 전용 6인실이었고 일본인 2명, 우크라이나인 2명 그리고 폴란드인 1명과 한국인인 나 이렇게 여섯 이서 있었다. 대부분이 친구 온 것이었기 때문에 모르는 사이끼리 어울리는 분위기는 아니었는데 난 친구가 없었기 때문에 먼저 말을 걸었다. 먼저 유럽 여행을 하고 있던 일본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다음엔 우크라이나인과도 서로의 나라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당시 전쟁이 한창이었기에 그 둘은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유학을 하고 있다고 했다. 내가 한국인이라고 했더니 '안녕하세요'라고 하길래 나도 '즈뜨라스부이쩨'라고 해줬다ㅋㅋㅋ 우크라이나어는 모르지만 러시아어는 인사 정돈 할 줄 알았기 때문에.. 아무튼 그렇게 말이 유독 잘 통했던 친구와 인스타 맞팔도 했다.


    둘째 날 아침이 밝아 호스텔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고 체크아웃을 했다. 두 번째 숙소는 혼자 쓰는 방이었지만 시내와 좀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낮에는 계속 놀다가 밤에 들어가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왜 벨기에 사람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지 이해가 가는 감튀. 그리고 전혀 몰랐는데 벨기에의 유명한 음식이었던 홍합 찜. 혼자 근사한 레스토랑에 가서 4만 원어치 양동이에 나오는 크림 홍합 찜을 시켰는데 나 진짜 한국에서 홍합 안 먹는데 여기는 너무 충격적으로 맛있어서 싹 다 흡입했다. 다 먹어갈 때쯤 내 옆테이블에 커플이 왔는데 반가운 스페인어가 들렸다. 그래서 또 혼자 온 패기로 커플 중 여성분께 말을 걸었다. 나도 스페인에서 왔는데 여기 정말 맛있다고ㅋㅋㅋ 동양인이 스페인어를 해서 그런지 너무 반가워하셨고 고맙다고 하셨다. 그렇게 뿌듯함을 안고 식당을 나왔다.



    시내를 벗어나 외곽에 있는 숙소로 향했다. 실제 브뤼셀 주민이 사는 아파트에 방 한 칸을 에어비앤비로 내놓은 것이었다. 근데 또 여기까지 가는 길에 참 다양한 일이 있었다.


    브뤼셀 시내를 다닐 때도 느꼈던 거지만 다른 유럽에 비해 유독 집시가 많은 느낌이었다. 심지어 직접적으로 돈을 달라고 한 경우도 많았다. 숙소를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던 중에 유모차를 끈 아주머니가 나에게 다가왔다. 아이에게 우유를 먹일 돈이 없는데 돈을 좀 줄 수 있냔다. 근데 난 현금을 가지고 다니지 않기 때문에 현금이 없다고 했더니 그럼 저 건너편에 있는 마트에 가서 물건을 사고 카드로 돈을 더 지불한 후에 남은 돈을 현금으로 받고 자기한테 달란다. ???????ㅋㅋㅋㅋㅋㅋㅋ 너무 어이가 없어서 됐다고 했다. 그 기발한 아이디어로 다른 일을 해보시는 것은 어떤지..


    어쨌든 버스를 타고 다른 동네로 왔고 걸어가던 중에 (여기는 관광객 없고 거주민만 있던 동네였다) 웬 남자 2명이 갑자기 또 다가왔다. 이미 저런 식으로 다가오는 사람들을 벨기에에서 수없이 겪었던지라 이번엔 또 뭔가 싶어 들어봤더니 자기네랑 같이 가서 잠을 자잔다. ㅋㅋㅋㅋㅋㅋㅋ진짜 내 귀를 의심했다. 솔직히 다른 사람들은 그냥 됐다고 하고 무시하고 갔는데 저건 너무 미친 사람 같아서 그냥 무시하면 해코지당할까 봐 그러지도 못하겠더라. 그래서 영어를 못하는 척했다. 영어로 말하길래 "노 잉글리시" 하면서 난처한 표정을 지었더니 한참 말하다가 그냥 갔다. 솔직히 저건 진짜 무서웠다.


    우여곡절 끝에 에어비앤비에 도착했다. 방은 매우 넓고 정말 쾌적했다. 방 하나가 무슨 거실급 크기였다. 고층 아파트여서 뷰를 감상하다가 갑자기 감상에 젖어 유튜브 라이브를 켰다. 그때 아마 구독자 700명 기념 명목의 라이브였던 것 같은데 사람이 딱 1명 들어왔다. 한국에서 아직 안 자고 있던 내 친구였다. 30분 정도 라이브를 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친구랑 얘기만 하다가 끝났다.


다행히 이후에는 별일이 없어서 무사히 스페인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크림 홍합찜, 감튀, 와플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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