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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그네스 Dec 21. 2023

스페인이 뭐가 그렇게 좋냐고 물으신다면

교환학생을 하면서 느낀 것

    내가 처음 스페인에 갔던 건 2021년 12월이었다. 스페인어를 배우기 시작한 지 반년쯤 됐을 무렵 스페인 교환학생을 결심하고 어떤 도시가 좋을지 답사 차원에서 다녀오기로 했다. 3주 간의 일정동안 주요 도시를 비롯하여 여행지로 유명한 몇 개의 도시에 갔었다. 여행을 하면서 느꼈던 것은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바르셀로나가 교환학생을 가기에 적합하지 않은 도시라는 것, 둘째는 사람들이 정말 편견이 없다는 것이었다. 바르셀로나가 교환학생으로 적합하지 않다고 느꼈던 이유는 너무 다언어 도시였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우리가 아는 스페인어인 까스떼야노 말고도 지역 언어인 까딸란이 아주 많이 쓰이며 외국인 거주자와 관광객도 매우 많아 영어의 비중도 높았다. 쇼핑하러 가면 직원이 다가와서 english or spanish?라고 물어볼 정도로 영어에 노출되기가 쉽기 때문에 교환학생의 목적이 스페인어인 나에게는 최악의 환경이었다. 저렇게 영어 가능자가 많으면 나도 민폐가 되고 싶지 않으니까 영어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이 결정은 아주 잘한 것이었다. 스페인 사람들이 편견이 없다고 느꼈던 이유는 바르셀로나를 제외하고는 어딜 가든 나를 외국인으로 봐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얼굴만 보고 외국인이라고 판단하고 영어를 쓰지도 않고,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나에게 길을 물어보거나 기계 사용법을 물어보기도 했다. 내가 한국이었다면 절대 외국인에게 그런 걸 한국어로 물어봤을 것 같지 않은데 나를 그렇게 대해주는 것을 보고 오히려 감동받아서 그간의 내 행동을 돌아보게 되었다.


마드리드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스페인이 너무 좋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냥 "괜찮네. 와서 스페인어 열심히 공부하면 되겠다." 정도였다. 그런데 그렇게 스페인어를 배우기 위해 갔던 교환학생이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내가 살았던 곳은 스페인 북부에 있는 팜플로나라는 도시인데 7월에 열리는 산페르민이라는 투우 축제 유명한 곳이다. 여담이지만 난 8월에 갔기 때문에 축제를 보지 못했고 설령 7월에 갔더라도 너무 위험하고 다치는 사람들도 많아서 가지는 않았을 것 같다. 도시 이름을 보면 낌이 오겠지만 팜플로나는 한국인뿐 아니라 대부분의 외국인들이 잘 모르는 도시이며, 거주민도 대부분 노인, 어린아이가 있는 가족 그리고 대학생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스페인 대도시와는 느낌이 매우 다르다. 소매치기가 전혀 없고 치안도 한국 수준으로 매우 높은 도시이다. 그리고 영어가 전혀 안 통한다. 나에게는 최고의 도시였다. 한식을 먹을 수 없다는 것만 빼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팜플로나에 살면서 스페인을 좀 더 온몸으로 배우고 느낄 수 있다. 내가 듣던 수업은 학생 수가 20명가량 되었는데 미국, 영국, 독일, 네덜란드, 폴란드, 홍콩, 프랑스, 필리핀 등 학생들의 국적이 매우 다양했으며 한국인은 그중에서 나뿐이었다. 평생 한국에서만 살고 공부하다가 생전 처음으로 저렇게 국제적인 환경에서 수업을 듣게 되었다. 교수님이 질문이 있냐고 해도 손을 안 들 판국에 질문이 있냐고 하지도 않았는데 계속 손을 들고 질문하는 학생, 교수님이 수업 중 무언가를 물었을 때 우물쭈물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대화하듯 대답하는 학생을 보면서 처음에는 진짜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나한테 질문하면 어쩌지, 질문을 못 알아들으면 어쩌지, 내가 너무 스페인어를 못한다고 생각하면 어쩌지 정면 별의별 생각을 했는데 한 달이 지나니까 나도 그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동화되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느꼈던 게 한국에 있을 땐 몰랐는데 한국 교수님들은 참 수업할 맛 안 나시겠다ㅋㅋㅋ라는 생각도 들었다.


    학교 외적으로도 배운 게 많았다. 오며 가며 이웃들과 인사를 하고, 안부를 주고받고, 로컬 시장에 다니면서 스페인 사람들을 온몸으로 느꼈다. 두리번거리고 있으면 와서 도와주냐고 물어보는 사람, 캐리어를 들고 전철 계단을 오르고 있으면 캐리어를 번쩍 들어서 옮겨주는 사람, 에코백을 가지고 다니면 안 된다고 말해주는 사람(에코백 든 사람은 소매치기의 주요 표적이 됨) 등 내가 스페인을 좋아하는 이유 중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스페인 사람'인 이유가 여기서 여실히 드러난다. 이렇게 기본적으로 사람들과 교류와 소통이 많은 구조였기 때문에 스페인어를 아주 빠르게 배울 수밖에 없었고 그 속에서 스페인 사람들의 따뜻함도 정말 많이 느꼈다. 그 사람들을 더 알고 싶어 졌고 그래서 스페인어 공부도 더 열심히 하고 스페인의 역사에 대해서도 공부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건 내가 외국인이라서 특히나 두드러진 걸 수도 있지만 삶에 정답이 정해져 있지 않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살다 보면 자꾸 남들과 나를 비교하게 된다. 20대 후반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주변에 누구는 몇 년 차 직장인인데 나는 아직도 대학생이고 그렇다고 특별히 일궈놓은 게 있는 것 같지도 않고 그런 와중에 또 안정적인 직장에 취직하기보단 다시 스페인으로 돌아가는 것을 택하면서도 이게 맞나, 이래도 되나 하는 의심이 끊이질 않았다. 사실 난 아직까지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당장 안정적인 직장을 구하고 취업을 하는 것보다는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문화와 일을 경험하고 싶은데 이런 삶의 방식은 남은 물론 가족한테까지도 응원받기가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대다수의 또래 사람들 같이 취직을 준비하다가 도저히 내키지 않아 다시 내 방식으로 돌아오고 그걸 반복하는 패턴 속에서 꽤 혼란을 겪고 있다. (사실 이건 현재 진행형이기도 하다.)


    스페인은 최저 시급이 한국보다 낮고 경제적으로 발전이 더디며 실업률도 매우 높아 청년들의 곡소리가 많은 나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스페인에 다시 돌아가고자 하는 것은 외국인이라서일지도 모르지만 반드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에 대한 해방감, 그리고 사람들의 따뜻함 때문인 것 같다. 물론 이건 내가 돈을 벌 필요 없는 학생으로만 살았었기에 느낀 걸 수도 있다. 내년에는 돌아가서 일을 할 것이기 때문에 혹시 이 생각이 바뀐다면 또다시 글을 써야지.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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