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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그네스 Dec 29. 2023

아프리카에서 살아남기(1)

    작년 이맘때쯤 사하라 사막에 다녀왔다. 내가 아프리카에 가겠다고 했더니 동생이 아프리카에 왜 가고 싶은 거냐고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엄청난 동기가 있던 건 아닌데 같이 교환학생을 했던 유럽 친구들도 많이 다녀왔고 또 새롭고 재밌어 보여서 간다고 했다. 뒤늦게 깨달은 거지만 철저한 계획하에 방문하는 게 아니라면 저런 가벼운 이유로 가는 건.. 솔직히 비추한다.


    당시 나는 달에 한 번 다른 유럽 국가에 여행을 다니면서 나름대로 준(準) 베테랑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프리카라고 해서 크게 다를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었다. 아니 사실 아프리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그냥 그동안 다녔던 유럽 여행 정도겠거니라고 우습게 생각했었던 걸지도.


   마드리드에서 3시간 비행기를 타고 마라케시 공항(모로코)에 도착했다. 확실히 중동이어서 그런지 내가 생각한 아프리카 보다는 이슬람 국가 느낌이 확 들었다. 스페인 남부도 이슬람 세력의 흔적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본토에는 역시 게임이 안 됐다. 어쨌든 호텔로 가기 위해 공항을 나와 택시 승강장으로 향했다. 모로코는 주 언어가 아랍어이기 때문에 글자만 보고는 뜻을 추측조차 할 수 없어서 솔직히 그때부터 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택시 승강장에 와서 미리 호텔 이름을 말하고 위치를 보여준 후 가격 협상을 마치고 택시에 탑승했다. 근데 갑자기 나에게 불어로 말을 걸었다. (모로코는 불어가 상용어) 근데 난 불어로는 기본적인 대화밖에 할 줄 몰라서 간단하게 대답해 주고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앉아있었다. 그러고 불어 못한다고 했는데도 계속 불어로 말 걸었다ㅋㅋㅋㅋ 처음부터 못 알아들었어야 했나.. 아무튼 중간쯤 갔는데 갑자기 기사가 밖을 가리키면서 여기가 내가 말한 호텔이 아니냐고 했다. 근데 내가 말한 호텔은 그 근처도 아니었고, 근처에 내가 말했던 것과 동일한 이름을 가진 호텔도 없었다. 그래서 아니라고 했더니 자기는 여긴 줄 알았다면서 더 가려면 돈을 더 내란다.


    그때부터 열이 받기 시작했다. 근데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너무 중동이라서 괜히 따졌다가 내리라고 하면 어떡하지 그럼 진짜 답이 없는데;; 하는 생각에 일단 알겠다고 했다. 그러고는 호텔에 도착하고 난 뒤에 "어랏? 알고 보니 돈이 없네?" 하고 열연을 펼쳤다. 그래서 원래 120 뜯길 거 잔돈 없다고 연기해서 100만 뜯겼다. (근데 처음에 약속한 금액은 80이었기 때문에 어쨌든 결과적으로 20은 더 뜯겼다ㅠ)


    그렇게 호텔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사하라사막 투어 패키지를 구매하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마라케시에는 제마 엘프나 시장이 있는데 거기에 가면 투어 상품을 판매하는 업체가 많아서 직접 발품을 팔아야 한다. 물론 에어비앤비 같은 플랫폼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지만 그러면 같은 상품인데도 가격이 훨씬 비싸져서 직접 발품을 파는 걸 추천한다.


인종차별의 성지 제마 엘프나 시장


    근데 투어 업체를 살펴보기도 전에 시장에 입성하는 순간부터 인종차별에 절여졌다. 유럽에서 1년 살았을 때보다 모로코에서 하루 있었던 게 인종차별을 더 많이 당한 것 같다. 지나가는데 계속 킥킥거리고 니하오, 곤니찌와 등등 얘네는 내가 사람이라고 인지를 하고 있긴 한 건가 싶은 대우를 받았다. 진짜 한 두 번도 아니고 걸어가는 내내 저러니까 너무 짜증이 났다. 하지만 인종차별은 상대가 열받아하는 반응을 재밌어하는 경우가 많아서 진짜 깡그리 무시했다.


    맘에 드는 업체를 찾아서 선금을 내고 계약을 마쳤다. 다음날 아침에 호텔로 데리러 오겠다고 했다. 근데 막상 계약을 하고 나니까 내가 진짜 사하라에 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뭔가 집에 가고 싶었다.ㅋㅋㅋㅋㅋ 그러고 다음날 아침, 약속 시간이 1시간이 지났는데도 픽업 차량이 오지 않았다.


(2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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