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 스물셋. 어느 점심

여자들의 수다

by 선량한해달

「너 살쪘다. 좀 빼라. 얼굴 늘어지네.」


의미 없는 칭찬이 여자의 대화방식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적어도 나와 내 주변인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승무원 출신이 많다 보니 외모 지적을 서슴지 않는다.

미의식을 강조하는 한국 특유의 승무원 문화 속에서

바람직하지 못한 방향으로 길들여진 우리에게 깃든

저주 걸린 직설 화법이다.


'어우, 그만해, 야. 내린 지 7년이야.'

'와, 언니 많이 늙었구나. 난 아직 3년인데.'

라며 눈가의 주름을 드러내며 웃는 그들이 사랑스러웠다.


최근 있었던 사고 이야기를 하며 혹시 아는

동료들이 있지는 않았는지 살피는 서늘한 눈길에서

그 시절의 긴장감이 느껴졌다.


여행 갈 때 오랜만에 비행기 타니 그리웠던 냄새가 나서

눈물 나더라며 말끝을 흐리는 친구는 샌프란시스코 사건

이후 비행기에서 내렸다.



저마다 마음에 상처 백 개정도는 담고 내린 비행기이기에

지상에서 웃으며 눈을 마주치는 지금 이 순간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게 된다.


하늘에 남겨둔 동료들의 희생과 따뜻한 마음을 떠올리며,

동료들이 남아있는 그곳을 떠났다는 약간의 죄책감과,

옳은 판단을 한 것이라는 자신감이 한데 섞여 감상적인

무드를 만든다.


눈 앞의 딤섬과, 면 요리와, 자스민차가

날개 접은 우리들을 위로하는 시간.

오늘의 점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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