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저녁

프롤로그

by 아궁이

어느 평범한 주말 저녁 아이들과 함께 하는 대학로 공연을 보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늦여름의 아름다운 노을이 강벽북로의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해마다 한계치를 넘어서는 더위로 우리 모두를 허덕이게 한 여름이,

나 이제 떠나가니 아름다운 것만 기억해 달라는 듯 유난히도 아름다웠다.


어쩜 이렇게 예쁠까? 이럴 때 우리말, 한글은 또 얼마나 맛깔난 표현을 떠올리게 하는지,

노을, 너는 푸르스름한 하늘 바탕에, 하루 일을 마치고

우리처럼 집으로 돌아가는 황금빛 태양이 남긴 불그스름한 흔적이더냐.


단숨에 바뀌지 않고, 흐름과 과정 그대로 색을 남기며 변해가는 하늘.

그 친절한 자연은 문득문득 하늘을 올려다보는 나 같은 사람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이봐, 인생의 아름다움을 좀 봐. 밝고 황금빛만 가득하기보다, 층층이 짙고 옅은 어둠이 남아 섞여 물들어가는 것이 우리의 삶이라고.


남편은 20대에 미국에서 유학을 했다.

결혼을 하고 신혼 때 아이가 생기지 않자 이럴 때 공부를 더 해보라고 권했고,

신혼집 보증금 그것만 들고 미국 유학을 함께 떠났다.


하지만 공부를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아이가 들어섰고,

22주 차 때 조기진통으로 두 번이나 응급실을 오가다 결국 휴학 후 한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첫 임신의 불안, 미국의 낯선 의료 시스템, 금전적 압박까지—내 마음의 평화는 산산이 흩어졌기에.


출산 후 몸조리만 되면 다시 돌아갈 거라 믿었는데,

인생은 언제나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더라. (특히 내 인생은 더 그런 것 같음..이라고 모두가 생각할 것이다.) 그렇게 서울 나그네처럼 살던 우리는 둘째가 초등학교 입학 무렵 미국으로 돌아가겠다는 생각을 완전히 접었다.


40대가 되면 집도 하나 있고,

직장도 안정되고 아이들 교육도 잘 시키며 살게 될 줄 알았다.

그러나 현실은 그 기대와 정확히 어긋나 있었다.


빚 없이 사는 게 어디냐 하며 월세에서 반월세로 옮긴 것을 커다란 발전으로 의미 부여했고,

출산 육아로 엉킨 커리어는 진로를 고려하지 않은 철저한 생계형으로 유지 중이었으며,

어린 시절 넓은 세상을 경험한 우리는 끝내 한국식 교육에 동의할 수 없었다.


이 사회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높은 목표점을 제시하며 모두를 경쟁 대상으로 만들어 버린다.

사람을 만나고 배우고 나누고 함께 하는 법을 알기도 전에

누군가를 밀어내야만 설 자리를 확보하는 세상.

그 길에 함께 서 있지 않으면 패자가 되는 사회.

정 많고 사람을 사랑하는 민족이 어쩌다 이렇게 성공만을 향해 몰아가는 사회가 되었을까.


아이들을 위한 세상은 너무나도 다채롭고

그래서 아름다우며 아이 각자를 이야기하고 듣기에도 가슴이 벅찰 텐데,

한 인간의 성장을 돕는 부모로서 오직 학업, 학원, 성적으로만 오가는 대화들이 나는 슬프다.

생각할 여유도 없이 천편일률적으로 또 다른 의미의 SKY만 바라보며 사는 게 너무 답답했다.


밤낮없이 일하는 것도,

아이들을 압박하며 사교육으로 일상을 채우며 살기는 더욱 싫었다.


서울에 살며 느끼는 경쟁이 싫다면

지방의 소도시나 시골근교로 내려가 아이들이 더 행복한지를 선택하게 하면 될 일이었다.


이왕 그럴 거면 우리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보자.

집도 절도 없는 우리가 줄 수 있는 건 영어로 소통이 가능한 부모라는 자산 하나뿐.

그렇다면 다양한 나라와 문화, 언어를 경험할 기회를 주며

스스로 인생을 생각하고 공부할 여지를 주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이 아름다운 나라를 떠난다 생각하면 아쉽지만.

우리를 담아내기엔 조금 좁구나.

선택해야 한다면, 지금이 가장 젊은 때다.


그날 저녁, 문득 떠올린 생각.

그리고 무심코 내뱉어버린 그 의견은

남편의 마음에 물보라를 일으켰음이 틀림없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