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짐. 짐

어쩐지 순탄하더라...

by 아궁이

떠날 날이 정해지면 남은 날은 왜 이리 빨리 흘러갈까?

어느새 길게만 느껴지던 4개월이 지났다.


그 사이 가장 걱정이었던 집이 잘 나갔고, 감사하게도 사용한 지 1년 조금 넘은 세탁기, 건조기, 듀얼에어컨 모두를 세입자분께 좋은 값에 넘기고 떠날 수 있게 되었다. 우리 재정에 가장 큰 부분이었던 집 보증금이 해결되었으니 이제 짐 정리와 주변 인사하는 것만 남았다.


그리 크지 않은 살림살이에 늘 미니멀했으니, 짐도 정리할게 뭐가 있을까 거의 버려야 하는 것들이라 생각했는데 해보니 그게 아니었다. 구석구석에서 이 집으로 이사 올 때 싸두고 아직도 정리 안 한 것들이 많았다. 8년의 흔적을 가진 채로 꽁꽁 싸매어진 것들을 풀어보니, 화장품, 주방용품, 비싼 영양제 그리고 아이들에게 입히려고 고이 싸둔 물려받은 유명브랜드 옷 가지들.


그땐 다 귀한 것들이었다. 꼭 챙겨가야만 한다고 믿었던.

8년이 지난 지금, 그것들의 유통기한은 다 지났고, 아이들 옷은 작아져 쓸모없는 짐짝이 돼버렸다.

미련한 인간은 그렇게 고이 싸 온 기억을 까맣게 잊고 없다고 다시 사고 쟁이고 했던 것이다.

그렇게 시작해서 몇 날 며칠을 버리고 비워냈다.


여자들의 옷장에는 옷이 가득해도 옷이 없다는 말을 아는가?

남편과 아이들의 옷을 간단히 정리하고 내 옷장을 열었는데, 끝없이 나오는 옷들에 어이가 없고 민망해서 웃음이 났다. 여기저기 쇼핑몰 할인행사 때, 할인이니까 하며 샀던 옷들이다.

스티브잡스도 아닌데 까만색 반팔 셔츠는 왜 이렇게 많은 건지.

사계절 내내 안팎으로 받쳐 입기 편한 옷이라서 묶음 할인을 할 때면 맘 편히 사둔 것들이 가득했다. 청바지도 늘 입는 두 벌 외에 이렇게 쌓여있는 줄은 몰랐는데, 저 깊숙이서 언제나 나를 입어줄래 하고 있었다.

'어머나, 이 옷이 있었네.' 하며 입어보면 벌써 작아진 것들도 많았다. 좋은 브랜드라서 살이 빠지면 다시 입으리라 고이 넣어둔 옷들도 이제는 정리할 때가 되었다. 이럴 거면 진작에 누굴 줄 걸...........

겨울 패딩 한 벌, 내가 좋아하는 뽀글이 잠바도 하나만, 그렇게 하나씩만 담았는데도 옷은 많았다. 이렇게 많았으면서 예쁜 옷이 없다고 하소연했던 지난날이 부끄러웠다.


겹치는 아이템은 2벌씩만 담고 나머지 모두 꺼내서 새것 그대로인 옷들 일부는 지인들에게 나누고 대부분은 헌 옷 수거함에 다 넣어버렸다.


화장품, 이건 정말 중요하다. 전 세계 어디를 가도 한국 화장품만 한 것이 없고 현지에서 사더라도 너무 비쌀 것이니 더 사서 가져가야지 생각했는데, 아직 기한이 남은 수많은 미백화장품이 한가득 줄 서 있었다. 아직 유통기한이 넉넉히 남은 것들로 몇몇 쿠션, 팩트, 기미앰플 등만 챙겼다.


아이들에게도 꼭 가져갈 짐을 챙겨보라고 했다.

그 말을 한 내가 바보지, 애들 모르게 다 버리고 가야지 했던 인형을 한데 다 모아놨고

교과서보다 더 많이 본다는 수십 권의 '흔한 남매'와 '살아남기'시리즈를 가지런히 쌓아두었다. 아이돌 앨범, 포카, 인형, 장난감, 온갖 만화책들로 한가득이었다. 아이템별로 2개씩만 담기를 성공했지만 고통스럽게 떨쳐낸 아쉬움은 며칠 지속되었다.


책, 전공부터 다양한 책들이 그동안의 세월을 보여주며 책장에 가지런히 꽂혀 있는 그 모습이 그렇게 좋았다. 전자책보다 종이냄새 맡으며 한 장 한 장 넘기는 게 좋아서 책은 최대한 다 가져가고 싶었는데 무게 때문에 짐을 싸고 부치는 동안 많이 비워졌다.


캐나다 동네 도서관에도 한국 소설과 책이 많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상태가 좋은 책은 골라서 북카페를 시작하시는 분께 나누고

나머지는 동네 영어학원과 도서관에 기증했다.


세 차례에 걸친 비우기 끝에 목표한 8개의 이민가방과 4개의 백팩 짐이 꾸려졌다.

다행히도 캐나다 유학원 사무실로 짐을 부칠 수 있어서 일부는 우편으로 보내기로 하였다.


마지막 비우는 시점에서는 '혹시 돌아올지도 모르잖아' 하는 미련을 다 버렸고, 결국 절반에서 다시 절반으로 비워지는 과정이 오묘했다.


쥐고 있다고 다 누리는 게 아니라는 것.

가지고 있어도 가진 줄 모른 채 살아간다는 것.

떠날 거라면 비워야 새로운 것을 채울 수 있다는 것.

비울 수록 더 넓은 세계로 발 디딜 수 있다는 나만의 깨달음 같은 것이 있었달까?




" 뭐? 뭐라고? 캐나다를 간다고?"

" 정말 너답다. 그래서 언제 오는 건데?"

" 연락도 없이 갑자기 캐나다를 간다니 너무 섭섭하다."

막상 가는 날이 코앞에 다가오자 우연히 연락한 이들에게는 전하고 연락이 없는 이들에게는 굳이 전하지 않았다.


2,30대 때의 나는 달랐다. 떠나기 몇 달 전부터 사람들을 시끄럽게 불러 모았고 나를 잊지 말라고, 마지막 날까지 약속을 꽉꽉 채워 만났다.


하지만 이번엔 아무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았다. 가족 외에는....

회사에는 전달했지만 동료들에게조차 알리지 않았다.

미국 유학 때처럼 금방 돌아올 수도 있으니 정착하기 전까지는 입을 닫아두자는 마음도 있었고,

그리고… 전혀 다른 나로 살아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나는 사람 속에서 에너지를 얻는 사람이었다. 관계에 공을 들였고, 체면도 챙겼다.
친절함이 나를 대표하는 성품이라 믿었고, 오지랖은 나만의 특출 난 기질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소중하게 쥐고 있던 인간관계에서 지금의 나는 이상하리만큼 멀어지고 싶다.

이것 또한 짐을 비워낼 때의 마음일까?


거창한 이유는 없다.
그냥 이번 떠남은 조용히, 아무도 모르게 하고 싶다.
알아차리더라도, 서운해하더라도 이게 우리 삶에 큰 영향은 없을 것이다. 떠남과 그리움은 가끔 마음을 건드리고 가는 살랑바람 같은 것일 뿐이니까.


오히려 동네 단골 식당 사장님, 집 앞 카페 사장님들과 아쉬운 인사를 나눴다.


떠나기 위해 비웠지만, 비우고 나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주변 사람을 다 비우고 나니 내가 보이는 것도 있고

이제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들여다 보고픈 마음도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설렘도 긴장도 없이 이 시간이 흘러가는 게 신기하다.

서울에는 우리 살 곳이 없어서 캐나다로 이사 갈까 했던 말이 실현되는 게 실감이 안 나서 그런가?




이렇게 완벽한 정리가 있을까? 다시 태어나는 기분으로 집도 마음도 다 비웠는데......


비자가 나오지 않았다.

충분히 나오고도 남을 거라 했던 시간은 지나갔고 출국일이 되었다.

유학원에서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라고 했다.
최근 외국인 체류자를 줄이는 정책으로 이민국이 비자 심사를 무기한 늦추고 있다며,

지금은 그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왜 하필 우리 차례에서 멈춰 버린 걸까.


이럴 줄 알았으면 아이들을 며칠이라도 더 학교에 보내는 건데.

서울에서 머물 곳이 없는데 언제까지 어디서 머물러야 한단 말인가?

기약 없이 기다려야 한다니, 모든 것을 정리한 우리에게 가혹한 형벌이었다.


일단 여행자로 먼저 들어가고, 비자가 나오면 미국에 잠시 건너갔다가 재입국하는 방법.
언제까지일지 모르지만 친정에서 지내며 시간을 버티는 방법.
우리에게 남은 선택지는 그렇게 몇 가지뿐이었다.


집을 비우고 공항 근처에 이민 가방을 맡겼다.
비행기표는 손해를 감수하고 취소해야만 했고,
출국해야 하는 날 우리는 보증금을 손에 쥔 채, 캐나다가 아닌 친정으로 향했다.


어이없는 상황을 전해 들은 아빠는 “뭘 걱정하냐, 당장 집으로 와라” 하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 말에 힘을 얻어 우리는 차에 간단한 짐만 싣고 친정으로 향했다.


인생은 정말 한 치 앞도 알 수가 없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