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송별

캐나다 이민국 덕분에...

by 아궁이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고 그렇기 때문에 재미있는 것도 인생이다.


논문을 마무리하고 석사 졸업, 회사의 허락, 아이들 학교 마무리, 집이 무사히 정리되고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예정대로 출국만 하면 완벽했다.

하지만 출국일 집을 나와야 했고, 비자는 나오지 않았다.


우리가 여정을 준비하던 연초부터 캐나다 정책이 강화되면서 임시 거주자 비자 심사는 갑자기 까다로워졌다고 한다. 캐나다 거주 중인 사람들의 비자 연장 심사가 꼼꼼해지고 새로 입국을 원하는 신청자는 늘었는데, 심사 인력은 그대로였기에 지연이 지속된다고 유학원 원장님은 전했다.

그렇게 우리는 하루아침에 갈 곳 없는 ‘피난민’이 되었다.


집 계약이 만료된 것과 이미 5개월 전 예매한 출국 비행기 티켓을 근거로 한국에서 더 이상 머물 곳이 없으니 빨리 입국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청과 남편 학교의 학기 시작일을 강조하며 이민국에 4차례의 청원을 넣었다.


그동안은 길면 두 달이었던 절차에 이례적인 지연이 지속되면서, 결국 할인받은 비행기 티켓은 허무하게 날아갔다.


집을 나온 날, 그러니까 사실상 출국일 아침, 우리는 잠시 고민을 했다.

"그냥, 이 주변에 숙소를 잡을까? 아이들 학교도 당분간 더 보낸다고 하고"

"부모님이 오라 하시니 친정에 내려가 있을까?"

나는 출국일까지 중요한 미팅들이 가득했고 계속 일을 해야 했기에 서울을 벗어나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숙소 때문에 예정에 없던 지출이 생기는 것도 여간 마음이 불편했다.


그냥 가자.


야밤에 친정을 습격했다.

70대 부모님은 헐렁한 파자마 차림으로 4인조 일가족을 반갑게 맞아주셨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걱정 말고 여기서 편하게 엄마가 해주는 밥으로 건강이나 챙기고 떠나면 되겠다며 아빠는 유쾌하게 상황을 정리해 주셨다.


친정집은 전라도의 한 구석에 있는 면이다.

읍까지 나가려면 차로 15분(완행마을버스로는 40분) 정도 걸리는 외진 곳이다. 고요하고 깨끗해서 천연기념물 학이 날아다니는 곳이다. 조용히 누워있으면 들려오는 소쩍~소쩍새 소리도 들리고 귀뚜라미 울음과 풀벌레 소리가 어우러지고 개구리의 꾸르르르르~~ 소리도 참 좋다.

어떤 면에서 차가 없이는 동네 마트도 돌아다니기 힘든 캐나다 현지와 비슷한 환경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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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현지적응훈련 중이라고 생각하자.


이곳에서 자라지는 않았지만, 삼 남매를 외지로 대학 보내신 후부터는 아빠께서 조부모님 댁에 2층집을 올리시고 들어와 사시는 중이다. 90세까지 장수하시다 집에서 편안히 눈 감으신 할아버지, 할머니를 보내시고 두 분만 고요히 지내시는 중이다. 미국, 서울 , 제주 살아도 너무 멀리 사는 자식들을 그리워하시며 누구 한 명이라도 가깝게 살면 좋겠다 늘 말씀하셨는데, 어느 날 갑자기 둘째네가 피난민 신세가 되어 쳐들어왔으니 고요한 시골집이 시끌벅적해지게 생긴 것을 설레어하셨다.


부모님의 하루 일과에 영향이 없도록 당장 내일 아침부터는 우리 일가족은 읍내에 있는 새로 생긴 도서관에서 나는 일을 하고 남편은 캐나다 현지 조사와 준비를 하고 아이들은 공부하며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서울에서만 오래 살면서 시골 환경을 접할 일이 많지 않았는데, 새로 생긴 도서관은 서울 우리 동네 영어 도서관보다 훨씬 깨끗하고 좋았다. '나이스~!'


넓고 확 트인 도서 열람실은 중간중간 아무 곳이나 마음에 드는 책 한 권 집어 들고 앉아 읽어도 되는 구조였다. 폭신한 소파에서 하루 종일 재미있는 책을 읽으면 행복할 것 같은 분위기로는 어느 유명 대학 도서관 못지않았다.

"비자 안 나오면 여기로 이사 와서 살자" 말할 정도로 우리 가족은 대만족 했다.

서울 우리 집보다 일에 몰입이 잘되던 도서관 그 자리.


랩탑을 사용할 수 있는 자리도 공간이 오픈되긴 했지만, 자리마다 널찍한 책상에 스탠드 등이 있어 그 어느 공유오피스 못지않게 집중이 잘 되었다. 중요한 것은 새로 지은 도서관이라서 모든 것이 새 거였고 깨끗했는데, 오전부터 이른 오후까지는 이용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 조용해서 좋았다.

첫날, 도서관으로 출근해 돌아온 우리 가족이 이런저런 칭찬과 만족감을 쏟아놓느라 저녁시간은 풍성했고 엄마도 오랜만에 손녀들과 딸, 사위를 위해 요리를 하시니 활력이 생긴다 하시며 좋아하셨다.


한편으로는 이 생활을 언제까지 해야 할까?

기약이 없다는 사실이 가장 불안했다. 출국일이 지나자 아이들 학교에서 연락이 오기 시작했고, 우리는 매번 같은 설명을 되풀이해야 했다. 이상하게도 낮에 아무리 평온해도 밤이 되면 불안은 더 크게 부풀어 올랐다. 잠들지 못한 채, 만약을 가장한 질문에 답을 머릿속에서 계속 만들어내며 뒤척였다


인생은 참 아이러니하다.

7월 8일 출국이었는데, 7월 9일 친정합숙 첫날 도서관에 감격하고 그날 밤 불안을 끌어안고 잠들었는데 그다음 날인 7월 10일에 비자가 나왔다.


아침에 일어나서 흐릿한 눈으로 문자를 확인하고 잠결에 소리를 질렀다. "할렐루야~!!!"

아침을 준비하시던 엄마, 거실을 정리하고 계시던 아빠 그리고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남편과 아이들이 그 순간 나를 쳐다보았고 나는 외쳤다.

"비자가 나왔다아~!!!!!!!!!!!!!!!!!!" 거의 대한독립만세 수준의 고성이었다.


기쁨의 환호성과 함께 출국 예정 이틀 만에 나올 거면 좀 빨리 나와주지 하는 불만도 그제야 내뱉을 수 있었다. 친정 엄마가 나 마저 타국으로 나가는 것에 아쉬워하니 하나님이 이런 기회를 주셨나 보다 하는 아빠의 말씀에 우리 역시 그랬나 보다 하며 서로 껴안고 방방 뛰며 감사했다.


남편의 학기는 9월에 시작하고, 아이들도 학교 등록 시 9월 학기부터 시작할 것이니 우리는 친정에 2주를 더 머물다 7월 말에 들어가기로 했다.

이제 피난민이 아닌 멀리 떠나기 전, 부모님과 함께하는 시간을 누리는 행복한 합숙이 시작된 것이다. 물론, 7월 극성수기에 출국하게 된 우리의 비행기 표는 눈물을 머금고 사야 했지만 부모님과 아름다운 송별할 시간을 벌었으니 이 시간에 감사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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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혈증으로 중환자실에 다녀온 이후 급격히 기억력이 소실되고 15kg 체중이 감소하면서 체력도 쇠약해진 엄마. 영상통화로는 보이지 않던 방긋방긋 미소가 손녀들과 함께 하는 동안 회복되었다.

부모님을 자주 찾아뵙는 것만으로 노년기인 부모님의 건강에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

이 집 자식들이여~~~ 부모님이 오지 말라해도 찾아가자. 가능한 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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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실패의 지점마다, 아빠의 긍정의 말 한마디가 훌훌 털고 일어서게 했다.

실패들이 모여 또 다른 성공을 이루고, 성공이 아니라도 나라는 사람이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면 그마저도 감사하는 인간이 되도록 했던 아빠의 단순하고도 유쾌한 조언들.


최선을 다하자. 남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자.

어릴 적엔 우리 집 가훈이 좀 긴 거 아닌가 했었는데, 성장하며 결국은 내 가치관과 직업 소명의식에도 큰 영향을 끼쳤으니 길더라도 가훈은 중요하다.


친정집에 오면 나의 과거 그리고 현재까지 남아있는 박물관에 온 것만 같다. 나에겐 큰 의미 없는 어린 시절의 상장과 나름의 업적들을 자랑인 듯 걸어두시고 기억도 안나는 그 시절 대견했던 일화들을 이야기해 주신다. 굳이 액자까지 끼워서 말이다.


이번 떠남에 있어 아무런 감흥이 없던 내 마음이 부모님의 사랑으로 더 준비를 다지고 각오하게 되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부모님은 멀리 파병 보내는 군인을 대하듯이, 매 끼니 고기반찬과 영양가 있는 좋은 것들로 먹여주셨다. 우리 부부가 한국보다는 캐나다에 더 잘 적응하고 잘 살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와 응원도 아낌없이 해 주시며 매일 축복기도를 해 주셨다. 재정적으로 넉넉히 지원할 수 없으나,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우리를 보살펴 주신 것이다.


2주 간을 그 시골 마을과 지방자치의 혜택을 마음껏 누리며 도서관과 읍내에 있는 대형 스포츠 센터 수영장을 독점했고, 읍내 식당가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고 자부하는 바.

다시 돌아온다면 이곳에서 살아보자는 안전빵을 확실히 두고 떠날 수 있게 됐다.


부모님의 축복을 등에 업고, 우리는 마침내 낯선 나라를 향해 떠날 준비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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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