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다 캐나다

13년 만에 다시 북미로

by 아궁이

비행기 창문으로 내다보는 낮 동안의 하늘은 볼 때마다 신비롭다.


태양이 정면에서 시야를 가득 채우며 쏟아져, 눈이 멀 것만 같다.

그 아래에 빈틈없이 가득 찬 새하얀 구름이 담요처럼 폭신폭신하게 깔려 있어 보는 누구라도

몸을 던져 누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넋을 잃고 한참을 보고 있으니 고단한 현실은 다 잊고 하늘나라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느껴진다.

아직 가본적은 없지만, 삶의 모든 시름이 다 끝난 것처럼 황홀하고 행복한 기분.


내가 지금 행복한가보다.

낯설지만 새로운 세상을 모험할 수 있다는 설렘.

좋은 일이 생길 거라는 막연한 기분 좋음이 마음 가득한 상태다.


내가 이렇게 하늘 풍경에 감탄하고 있는 동안, 나 못지않게 들뜬 아이들은 한참을 재잘거리며 장난치다가 헤드셋을 끼고 각자 보고 싶은 영화와 TV프로를 찾아보고 게임도 하고 10시간이 모자라다. 불을 꺼주면 영화를 보고 불이 켜지면 밥을 먹는 사육의 시간을 보내고 이제 도착이 얼마 남지 않았다.

40대가 들어 자주 붓는 다리에 탄력스타킹을 신고 와서인지 여행이 설레어서 인지 평소보다 발이 무겁기가 덜하다.


역시 정신이 육체를 다스린다는 그 말이 맞나보다.


2012년 늦은 가을, 우리는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떠난 미국 땅에서

단촐한 짐만 챙겨 한국으로 돌아왔었다.

그 후로 아이 둘을 낳고 키우며 13년의 세월이 흘렀구나.

단 둘에서 넷이 되었고, 꽤 견고한 팀이 되어 다시 아메리카 대륙을 밟는구나.


이제 30분 뒤면 밴쿠버 공항 도착이다.


창가로 내려다본 풍경은 정말 예술이다.

모두가 아름답다고 극찬했던 밴쿠버의 얼굴이 내려다 보인다.

마치 면사포에 가려진 수줍은 신부처럼 옅은 구름과 안개에 가렸다가 보였다가 한다.

꽤 높은 고도에서 비행 중인 지금 이렇게 가깝게 보이는 산봉우리라면 얼마나 높은 산일까?

커다란 산맥 아래 깊은 골짜기 아래 강 줄기가 이어져 보이고 그 위에 구름이 하얀 목화솜처럼 둥둥 떠 걸쳐있다.

높은 산들이 겹겹이 쌓여 연결되고 강 줄기가 흐르는 거대하고 광활한 대 자연이 있는 곳이구나.

20대 때 잠깐 지냈던 몬트리올도 너무 좋았는데, 그 땐 이런 자연을 감상한 기억이 없다. 마냥 사람이 좋아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을 만나느라 늘 바빴던 때였다.


캐나다의 아름다운 자연은 해 준 것 없는(고작 분리수거 정도) 한낱 미약한 이방인의 심신에 포근한 안식을 주며 반기는 듯 했다. 에어캐나다 비행정보를 살펴보니 지금 내가 내려다보고 있는 커다란 강이 Fraser River(프레이져 강)인 것 같다.


저 멀리까지 이어진 깊은 골짜기에도 끝없이 흐르는 강 줄기를 보며 인생의 굴곡에도 늘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는 듯 했다.



조종사는 긴 비행을 안전하게 마치고 능숙한 솜씨로 우리를 이 낯선 땅 캐나다 밴쿠버에 가볍게 착륙시켰다. 기내에서 사람들이 서둘러 빠져나가고 우리도 발걸음을 재촉했다.

마치 군인이 완전 군장을 하고 멋지게 출전하듯이 각자의 백팩을 메고서 이민 가방 8개를 찾으러 Baggage Claim 번호를 확인했다.

커다란 이민 가방을 야광색 벨트로 묶었더니, 생각보다 쉽게 건져냈다.

수하물 카트 3개에 모든 짐을 나누어 쌓고 가장 무거운 순서대로 남편, 나 , 아이들이 끌었다.


입국장에서 처음 만나는 캐나다 사람들은 참 친절하게 아이컨택하며 인사해 주었다.

지난 미국 출장의 기억이 있어서인지, 평범한 것일지 모르는 그것이 참 따뜻한 친절로 인상에 남았다. 입국은 전자로 간단히 진행되었고 남편과 함께 동반 비자를 받아야 하는 우리는 Baggage Claim과 같은 층 한쪽에 있는 이민국 사무실로 들어갔다. 짐 카트를 밖에 세워두고 들어가 나란히 넷이 앉았다.


미국 언니네 갔을 때, 입국심사를 하다가 이민국 방으로 끌려가 1시간 이상을 대기하고 나온 적이 있는데, 미국에서 유학한 기록만으로 이민국에서 정보를 찾고 확인한다고 했었다.

이곳 이민국에서도 철저히 수사하려나?

'2006년 몬트리올에서 Tesol공부를 했던 기특한 흔적을 찾아줘. 그리고 어서오라고 잘 지내보라고 해줄래?'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앉아 있었다.


이민국 사무실 창구에서 직원이 우리 가족을 불렀다.

우리는 우르르 달려가서 친근하게 인사하고 필요하다는 서류 모두를 차례차례 꺼내어 보여주었다.

"Good~!"

"Thank you~!"

"Perfect~!!"

그가 말하는 것마다 남편의 준비된 파일에서 쏙쏙 나와 신속하게 답을 하니 엄지 척을 해주었다.

그러고는 잠깐 기다리란다.


우리는 다시 대기석으로 돌아가 앉아 편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아까 우리를 불렀던 직원이 다시 우리에게 손짓했는데, 그 옆에는 조금 심각한 표정을 한 다른 직원이 나와 앉으며 우리를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나에게 질문을 했다.


"“Your husband is coming to study, and you have two children. What is your plan for staying in Canada, and why did you not apply for a visa beforehand?”남편은 공부를 할 것이고 아이가 둘인데 당신은 어떻게 머물 예정인가? 왜 비자를 미리 받아오지 않았나?"


당연히 실물비자를 받는 일만 남았다 생각했는데, 갑작스러운 심문에 당황했다.

하지만 너무 명확히 영어가 잘 들려서 시치미를 떼고 빨리 비자 주세요 할 수가 없었다.

남편과 서로를 쳐다보았고, 나는 영어를 못 알아들은 척 한국말로 남편에게 말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유학원이 생각나서

"We only follow what study agency tell us. They said visa can be given here."

"우리는 유학원 안내에 따랐을 뿐이에요. 이곳에서 비자를 줄 거라고 했어요."


직원의 얼굴은 더욱 심각해져서

"Study agencies like that are a major issue at the moment, and we are not able to issue a visa. What are you going to do? You should have arrived with a visa, as your husband did.”

유학원이 문제라고 했다. 남편처럼 비자를 받고 들어와야 한다고 나는 줄 수가 없단다.

정말 유학원은 문제였다. 그들이 설명한 것처럼 술술 주는 분위기는 확실히 아니었다.


그렇게 몇 번을 같은 대화를 하다가 도저히 결론이 나지 않자, 나는 한국에서 하던 일을 여기서도 remote로 이어서 할 것이고 우리 부모님이 필요한 재정은 걱정 없이 보내주실 예정이다라고 거짓말까지 보태며 답했다가 게임오버돼버렸다.

사실 6개월 뒤에 다시 한국으로 출장을 가야 하니, 어쩔 수 없으면 내가 6개월마다 오가야지 어떻게 하겠냐고, 애들이 엄마가 없는 시간이 힘들겠지만 어쩌겠냐고 말도 안 되는 영어로 답을 하고 말았다.

"그래 그럼 됐어." 하고 들어가더니, 남편의 비자와 아이들의 동반비자만 주었다.


이럴수가 난 정말 바보였다.

그냥 "영어 못해요. 미안해요. 비자 주세요." 이 말만 하며 사정을 할걸 하며 후회가 막급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우리는 가족인데, 주는 게 당연하다 생각했던 동반비자에서 나만 탈락했다.

씁쓸했지만, 아이들이 모두 받았으니 학교 다니는 건 문제가 없을 거다.


다시 신청해서 받을 수 있다고 하니, 너무 감정을 쏟지 말고 갈 길을 가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이런 방식으로 입국하는 것에 짜증이 잔뜩 나버린 캐나다 국민들의 입장도 이해를 하자.


어이~밴쿠버, 우리 가족 좀 껴줘어~.

비행기에서 보았던 그 아름다운 자연을, 너의 첫 인상으로 남기기로 했다.

아직 우리에게 차갑지만, 언젠가는 너도 알게 될 거야 우리가 얼마나 따뜻한 사람들인지.

우리랑 친해지고 싶을 걸?!


반갑다, 밴쿠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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