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quitlam
낯선 땅을 여행할 때 설렘이 폭발하는 순간은 드디어 공항을 빠져나와 현지 풍경을 처음으로 눈에 담는 순간이 아닐까 싶다. 이고지고 왔던 짐들에서 해방된 홀가분한 몸으로 차에 올라 창밖 풍경에 넋을 잃는 그 시간.
불어오는 상쾌한 바람이 그동안 흘린 땀과 애쓴 마음을 쓸어가 주는 것 같다.
펄펄 끓는 폭염에서 고작 10시간을 날아왔는데 이곳 밴쿠버에는 시원한 바람이 분다. 미세먼지에 익숙한 콧구멍은 고퀄러티의 산소를 만끽하느라 쉬지않고 벌렁거렸다. 미국인 회사 동료 MF가 밴쿠버는 7,8월이 천국이라더니 이곳의 여름이 기대된다. 숨이 턱턱 막히는 고국의 여름만 여름이라 믿었던 나의 오랜 선입견이 이제 새로운 땅에서 하나둘 벗겨질 터이다.
시원하게 펼쳐진 파란 하늘 아래 단층 건물들이 즐비해 있고 키가 높은 북미의 침엽수가 중간중간 여백을 채워주어 듣던 대로 자연이 아름다운 땅에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일이라 그런지 도로는 한산했고 생각보다 도시는 평범했다. 여기를 떠나올 때 내 마음처럼 거창하지도 화려하게 수식할 필요도 없는 그저 있는 그대로의 담백한 곳.
우리는 이곳에서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게 될까?
밴쿠버 공항에서 우리의 첫 숙소인 코퀴틀람까지는 약 50분 정도 걸렸다. 다이내믹한 서울에서 온 우리는 번잡한 도심보다는, 자연을 마음껏 느낄 수 있는 캐네디언 동네의 일상을 엿보고 싶었다. 그래서 비교적 조용한 코퀴틀람을 첫 거점으로 정했다. 다행히 한인이 운영하는 에어비앤비를 구할 수 있어 우선 8일간 머물기로 했다. 그동안 중고차를 알아보고, 앞으로 지낼 집도 정할 계획이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이곳은 도시가 조용하고 깔끔해서 한인들이 이미 많이 거주하는 곳이었다.
숙소 마당엔 예쁘게 정원이 꾸며져 있었고, 한 여름 풍경에는 낯설었지만 붉게 물든 단풍나무도 심겨 있었다. 널찍한 마당을 보니 아이처럼 마음이 들떴다. 주인분이 반갑게 우리를 맞아 주셨고, 함께 나온 몰티즈 강아지에 우리 집 강아지들도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렇게 인사와 간단한 설명을 듣고 짐과 함께 이동했다. 우리가 묵을 곳은 마당정원 오른쪽 아래에 난 길을 내려가면 있는 별채였다. basement 두 채가 있었는데 그중에 작은 집을 우리 가족이 쓰게 되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황금빛 오후 햇살이 들어와 부엌과 식탁을 은은히 비추는 아늑함이 참 좋았다.
거실과 이어지는 짧은 통로를 지나면 커다란 퀸 베드 2개가 꽉 차게 놓여 있어 벌써 드러눕고 싶었다.
남편은 짐을 모두 옮겨놓고는 동네를 한 바퀴 둘러보겠다며 밖으로 나갔다. 아직 차가 없던 터라, 걸어서 주변에 뭐가 있는지 살펴보고 온 남편의 첫마디는 이랬다.
“지금 9시인데, 초저녁처럼 밝아. 사람들이 다 운동하러 나와 있어.”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남편의 말에 얼른 문을 열어 밖을 내다보니, 정말 해질녘 대여섯 시쯤 되는 것처럼 아직도 훤했다. 그날 이후 이틀 동안, 나는 잠자고 일어나고 일하느라 숙소에 거의 머물러 있었고, 아이들과 남편은 집 앞에 있는 Coquitlam Recreation Centre와 바로 옆 도서관을 오가며 이 동네를 조금씩 탐색하기 시작했다.
생필품을 구비하려면 차가 꼭 필요했는데, 렌트비가 생각보다 너무 비쌌다. 7월 성수기라 이용객이 많다고 하루에 150달러가 훌쩍 넘는 비용을 열흘 동안 감당하자니, 우리가 차를 사려고 마련해 둔 예산과 맞먹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숙소 주인분께 혹시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조심스레 여쭤보았다.
이럴 때는 무엇이든 물어보고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정말 큰 힘이 된다는 걸 새삼 느꼈다. 주인분은 마침 딸이 요새 쓰지 않고 세워두고 있는 차가 있다며, 8일 동안 500달러에 사용하라며 흔쾌히 내어주셨다.
남편이 local 중고차 매장을 몇 군데 알아보고 함께 차를 보러 나갔다.
써리라는 곳이었는데 주인은 눈이 부리부리한 이란 사람이었다. 이 매장은 도로 바로 옆 공터에 있었는데 땡볕 아래서 차를 보고 있으니, 아이들이 너무 더워 힘들어해서 나는 아이들과 차에 돌아와 있었고, 남편은 중고차 한 대를 골라 시운전을 하러 직원과 나갔다.
한참을 기다린 것 같은데 남편은 오지 않고, 아까 매장 안에 있었던 양쪽 팔뚝에 문신을 한 나시티를 입은 여자와 한 남자가 우리 차 옆에 주차를 하고는 차에서 내리지 않고 나를 한 번 쳐다봤다. 못 본 척했지만 여간 신경이 쓰였다.
갑자기 남편이 전화해서는 시운전 중에 차가 길 한가운데 서서 직원이 자기를 차에 두고 걸어서 매장에 뭘 가지러 갔다고 연락이 왔다. 좀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그 후로 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남편은 돌아오지 않고 그 매장에서 봤던 낯선 남자가 우리 차 왼쪽 옆에 차를 주차하고 나오더니 우리 차 앞에서 나와 아이들을 쳐다보며 담배를 피웠다.
'이런 미친놈이...' 하며 인상을 찌푸리며 쳐다봤더니, 정면에서 '이게 뭐 어때서?' 하는 듯 눈을 흘겼다.
이게 무슨 일이지?
차 백미러로 아까 그 중고차 주인아저씨가 주차장 뒷 건물인 레스토랑으로 들어가는 게 보인다.
갑자기 무서움이 몰려왔다. 애들은 K-pop 데몬헌터스 노래를 들으며 신났는데,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는 자신이 한심하지만 낯선 곳에서 처음 마주하는 사람들에 대한 불안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그 불안은 이 놈들이 남편을 납치하고 남은 우리마저 납치하려는 강도들인가하는 무시무시한 시나리오를 써 내려갔다.
모든 문을 잠그고 애들과 간절히 기도했다.
여기서 이렇게 죽게 두지는 않으실 거죠?
남편은 왜 돌아오지 않고, 연락도 안 받는 건지 제발 우리를 이 상황에서 구해주세요. 하면서 나답지 않게 덜덜 떨었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정말 영화처럼 차창 너머로
기다리고 기다리던 남편이 터미네이터처럼 걸어 나오고 있었다.
말한 적은 없지만, 지금까지 중에 가장 반가웠고 기쁜 순간이었다.
휴~~~~~~
왜 이렇게 늦었냐는 잔소리로 그 마음을 대신했다.
남편이 남편의 자리에 앉아 있다는 것이 이렇게 큰 위안이 되는 줄 몰랐다. 그가 시동을 걸고 차가 그곳을 빠져나왔을 때 그제야 긴장이 풀렸다. 남편은 미리 봐둔 다른 곳으로 가자 했다.
한국사람들은 KIA나 Hyundai매장에서 구매한다고들 했는데, 우리는 local만 찾아다녔다.
두 번째 간 곳에서 가장 저렴한 차로 결정했는데, 우리 가족의 첫 차는 아큐라 2001년형이다.
25년 된 할아버지 차. 한국돈 600만 원에 구매하고 번호판을 받았다.
오르막길도 잘 못 올라가고 이틀 만에 차가 퍼지는 등 각종 초기 수난을 겪었지만, 많은 분들이 겪은 것보다는 저렴하게 부속품 갈아 끼우고 센서교체로 해결되었다. 지금은 붕붕 잘 달린다.
아큐라 할아버지요, 천천히 달리더라도 1년은 버텨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