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만장에서 이제 첫 장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욥기 8:7)

by 아궁이

8월의 뙤약볕 아래 늘어선 중고차들 가운데 검정과 빨강의 마쯔다 3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둘러보다 보니 바로 옆에 베이지색 가죽 시트를 갖춘 아우디가 꽤 고급스럽게 다가왔고, BMW와 벤츠도 자연스레 시선을 끌었다. 마음만 먹으면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중고차라 해도 우리에겐 부담스러운 가격이었지만, 고급차가 1만 달러 미만, 우리 돈으로 천만 원 안팎이라니 묘하게 합리적으로 느껴졌다.

‘견물생심’이라 했던가. 보다 보니 점점 더 좋은 조건의 차들만 눈에 들어왔다. ‘무리해서 사버릴까’ 하는 마음이 고개를 들 무렵, 남편이 나를 재촉했다. 고개를 가로저으며 최소한 1년은 아끼기로 했던 약속을 떠올리고, 가장 저렴한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렇게 고른 차가 연비와 내구성 면에서 경쟁력이 있다는 2001년식 검은색 혼다 아큐라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싼 모델이었다. 보험료 3개월치와 서류 처리 비용까지 모두 합해 6,000달러 선이었다. 한국에서 10년을 탔던 아반떼를 300만 원에 팔았으니, 이 차 역시 300만 원에 산 셈이었다. 나쁘지 않은 거래였다.


넉살 좋아 보이는 주인은 한국인은 거의 찾아오지 않는 자기네 매장을 우리가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 물으며, 차를 보러 온 첫날 바로 구매를 결정한 우리에게 꽤 호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대학생 때 캐나다로 건너와 결혼 후 영주권을 받게 된 이야기, 이유는 모르겠지만 한국에는 다시 돌아가지 않을 거라는 말까지, 이런저런 개인사를 풀어놓았다. 당분간은 어디서든 한국인을 만나기만 하면, 각자의 정착기를 듣게 될 것만 같다.

주인은 깔끔히 세차를 해 주었고, 내부 vacuum도 해줬는데 헤드라이트 커버는 색이 바랠 대로 바래서 투명하지 않고 뿌옜다.

우리나라였으면 이 지경인 차를 타고 다니기 힘들겠지만, 캐나다는 외관이 어떻든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거리를 다니다 보면, 자동차의 역사를 훑는 듯한 다양한 시대의 차들이 아무렇지 않게 달리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25년 동안 세 명의 주인을 거쳐온 아큐라의 네 번째 주인이 되었다.

큐라야, 잘 부탁해.

우리차 아큐라.PNG 첫 차는 2001년식, ACURA


정확히 이틀뒤 주일 아침, 우리는 언제나처럼 일찍 일어나 교회 갈 채비 중이었다. 지난밤에 브레이크 등이 잘 안 꺼지는 것이 마음에 걸렸는지 준비를 마친 남편이 먼저 나가 차를 살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들어오더니,

"어떡하지? 배터리가 아예 나간 것 같은데..."

"뭐라고? 왜 그렇게 된 거야?"


그동안 20만 Km를 달린 아큐라는 브레이크등이 밤새 꺼지지 못했고 배터리는 방전되었다. 남편이 차를 살피러 다시 나가있는 동안 나는 재빨리 챗GPT에 차의 증상을 줄줄이 설명했고, 똑똑한 GPT는 몇 가지 가진단을 내렸다. 그중에 하나가 오래된 차라서 브레이크 등을 켜고 끄는 고무마개의 마모 가능성을 1번으로 언급했다. 그리고 배터리문제 그다음으로 갈수록 심각한 것들이었다.

지난주에 우리가 중고차를 살 거라고 말했을 때, 교회에서 처음 만난 분들은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본인들의 중고차 경험담을 들려주었는데, 차를 사고 몇 달 만에 길에서 퍼진 이야기, 다친 사람은 없지만 폐차가 된 이야기, 산값의 몇 배는 수리비에 들어 새 차를 사느니만 못했다는 이야기가 다시 귓가에 맴돌면서 그냥 첨부터 예산비중을 더 들여 좋은 차로 샀어야 했나 하는 후회도 들고 고쳐지지 않으면 다시 사야 하나 고민도 되었다.

구매 후 이틀 만에 일어난 일이니, 꽤 절망스러운 아침이었다.


우리는 일단 Uber택시를 불러 예배시간에 늦지 않게 교회로 갔고 예배를 마친 후 남편은 보이는 사람마다 붙잡고 이 사건을 이야기했다. 이곳에 온 지 이제 2주 차인 우리 이야기에 모두가 안타까운 마음으로 위로해 주었지만, 중고차의 위험에 대해 그렇게 일러주었는데 그렇게 빨리 그것도 가장 싼 걸로 샀다는 것에 놀라는 눈치였다. 겁 없는 하룻강아지를 보는 듯한 산전수전 다 겪은 자들의 눈초리......


아무튼 해결을 위해서는 누구라도 붙들고 차를 얻어 타 부품을 사야만 했는데, 다행히 우리와 같은 날 교회 등록한 집사님께서 도움을 주셨다. 배터리는 집사님 차로 jumping을 했고 챗 GPT의 진단대로 브레이크 등을 켜고 끄는 버튼이 닳아 있던 것이고 작은 고무패킹(13 CAD)을 갈아 끼우니 문제가 해결되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이 작은 고무패킹을 찾아 남편과 함께 써리의 동서남북을 함께 라이드 해주신 집사님께 정말 정말 감사하다. 은인 중에 은인이다.


그 뒤로 이어진 또 하나의 이슈는 엔진 온도 계기판 오작동이었는데, 주행이 시작되면 계기판 표심이 아래로 뚝 떨어져 버렸다. 계기판의 센서문제인지, 냉각수통이 오래돼서 누수가 있는 것인지 가능성은 여러 가지였다. 이 문제는 아무래도 현지 공업사를 찾아가야만 해결될 것이었다. 온 가족의 안전을 위해서 가장 믿을 만한 한인 공업사를 추천받아 찾아갔는데, 남편은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진단스크리닝만 하는데, 120달러였고 이후 문제에 대해 정비 시 얼마가 더 들어갈지 모르지만 기본 280달러부터라고 조금은 무책임한 설명을 듣고 돌아왔고, 동네 현지 공업사를 찾아다녔다. 그러다가 정말 신기하게도 우연히 들른 곳의 어느 중국인 기술자가 소개해준 독일인이 운영하는 공업사에 갔는데, 우리 차를 정비해 준 필리핀 사람이 정확히 우리와 똑같은 차를 소유하고 있었다. 놀라운 것은 연식과 조건이 다 같은 2001년식 아큐라 검은색이었던 것이며 그 공업사 한편에 그의 차가 있었다. 그는 자신 있게 이 차를 잘 안다고 하며 친절하게 문제를 해결해 주었고, 굉장히 합리적인 비용으로 마무리되었다.

어딜 가나 발품을 팔고 현지인을 찾아 해결을 찾는 것도 꽤 의미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25년 된 아큐라는 우리 가족으로 신고식을 치렀고 잘 적응해가고 있다.

'삐빅' 버튼 하나로 원거리에서도 차 문을 열고 닫고 위치를 확인했던 시절은 이제 옛 일이고, 문을 여는 열쇠 따로, 시동 거는 열쇠 따로 주렁주렁 열쇠고리가 요란하게 두 번에 걸쳐야만 차에 입장한다. 모든 것이 '빠름'에 길들여진 우리는 이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잘 참아내는 인내를 훈련 중이다. 물론 이 훈련은 처음부터 새 차를 사거나, 조건이 좋은 중고차를 산다면 굳이 필요하지 않겠으나 지금 우리는 이 모든 일에 적응 중이다. 우습겠지만, 나는 문 열 때 나는 삐거덕 소리도 왠지 정감 있어 좋다.

밴쿠버 도로 위의 유난히 볼록 튀어나온 방지턱을 만날 때마다 오르고 내려오는 사이 차 내부 부품이 제자리를 벗어나 브레이크 등 같은 사건이 일어날까 조마조마하지만, 그마저도 스릴 있다. 웬 청승이냐고 하겠지만, 우리 예산 안에서는 이 차가 최선이다. 그래서 감사한 마음으로 차를 마치 사람 다루듯 달래며 오래 같이 해달라고 매일 부탁하고 있다.

몇 배나 돈을 들인 분들에 비하면 우리 주머니사정에 딱 맞는 검소한 신고식이었던 것이 얼마나 감사한가?




자동차 문제는 문제도 아니었다.


도착 2달 된 무렵, 9월 말부터 남편의 학사 일정이 시작되었다. 첫 주 수업을 듣고 둘째 주 미니 시험을 치른 그 주 목요일, 남편이 갑자기 방에서 뛰쳐나오더니 "Oh, My God!"이라며 외쳤다.

표정은 웃고 있었는데 한편으로는 어이없어하는 웃음이기도 했다.


"무슨 일이야?"

"학교가 폐교조치된대."

"뭐어?"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일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게 가능한가?

말로만 듣던 사기를 당한 것인가?

1년이라는 비교적 효율적인 학과 프로그램을 이수한 뒤, 영주권 신청으로 이어질 수 있을 만큼의 실습과 취업 연계 조건은 꽤나 솔깃했다. 우리는 그 가능성에 모든 것을 정리하고 이곳으로 떠나, 사활을 걸어볼 만하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알고 보니 해당 학교는 인도인이 설립한 기관으로, 교육 당국으로부터 여러 차례 경고를 받았음에도, 시정되지 않은 운영 문제로 결국 폐교 조치를 받게 된 것이었다. 학생들의 학사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대다수 학생들은 등록만 유지한 채 허가되지 않은 취업을 통해 생활하는데 데 급급했다. 그 결과 많은 유학생들이 캐나다 내 임시 노동자로 편입되었고, 영주권 진행 후 기존 캐네디언들의 일자리까지 위협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에 정부가 보다 적극적인 조치에 나선 것이었다.

공교롭게도 우리의 비자 발급이 지연되었던 것 역시 임시 거주자와 외국인 노동자 수를 줄이려는 정책 기조와 맞닿아 있었으니, 이번 사건 또한 그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폐교' 소식이 재학생을 통해 내부 intranet에 퍼진 것을 뒤늦게 알고 나서야 학교는 전체학생들과 zoom미팅을 잡았다. 그 미팅에서 자신들의 입장을 설명하겠다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설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다음날 학교와 zoom 미팅을 마친 남편은 조금도 명쾌해진 것이 없고 학교가 변명만 하고 끝냈다고 했다. 자기들이 교육당국에 충분한 해명을 할 것이라는 말로 학생들의 소요를 막고자 했던 것 같다. 그날 이후 학교는 문을 닫았고 그 누구도 연락에 답하지 않았다.


캐나다에 오자마자 이런 일을 겪는 것이 전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이 과정을 통해 영주권을 신청하려던 우리에게는, 마치 목표 지점에 꽂혀 있던 깃발을 누군가 갑자기 뽑아 가버린 듯한 기분이 들면서도 동시에, 믿기지 않을 만큼 걱정은 크지 않았다. 이제 막 시작한 단계였고, 이런 일이 초반에 일어났다는 것은 어쩌면 걸러져야 할 학교가 걸러지고, 더 안전한 곳에서 다시 배울 수 있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는—다소 요상한 긍정 회로가 돌아가고 있었다. 물론 내가 한국 회사의 일을 계속 유지하고 있었기에, 당장의 재정적 어려움이 없다는 점도 이런 태연함의 이유였을 것이다.


남편의 학교가 줌 미팅을 마친 다음 날, 교육 당국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다시 한번 줌 미팅을 열었다. 그 자리에서 학교의 폐교 조치 경위를 설명 들었고, 각 학생들에게는 납부한 학비에 대한 환불 신청서를 제출하라는 안내와 함께, 이후 진학에 대해서도 도움을 제공하겠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언뜻 보아도 줌 미팅에 참석한 학생 수는 400명을 훌쩍 넘었고, 이 나라에서는 유학생들이 이런 일을 겪더라도 구제받을 수 있는 절차가 마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괜히 G7 국가가 아니구나’ 하는 신뢰감이 들었다.


남편은 그 자리에서 곧바로 환불 신청서를 작성해 제출했고, 안전성 검토 없이 유학생을 모집한 유학원에도 충분히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다행히 유학원은 우리의 요청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며 학생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합의를 이끌어 주었다. 비슷한 학과 프로그램으로 몇몇 학교를 추천했고 가장 빠른 입학을 위해 즉시 IELTS 시험을 치러야 했다. 100년 전통의 학교가 제시한 기준 점수는 꽤 높았지만, 남편은 하루 이틀 만에 시험날을 잡고 고득점으로 당당히 패스했다. 남편의 영어 실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이 낯선 땅에 도착한 지 고작 두 달 만에 겪은 일련의 사건들은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언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는 불안정한 이방인의 삶의 면모를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주민으로 파란만장할 인생 중에 첫 장이 넘어가고 있다.

민들레 홀씨처럼 날아와 이곳에 뿌리를 내려보고자 하는 수많은 이방인들 틈에 우리가 함께 서 있다.

쉬이 메마르지 않도록 서로가 지탱해 주기를, 함께.

밴쿠버에 수많은 이민자들이 와 있다. 똑같지 않아도 품은 마음은 비슷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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