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뽕하우스

We love Korean tenants.

by 아궁이

2025년 여름은 영화 K-Pop Demon Hunters의 흥행으로 어디서나 울려 퍼진 노래 ‘Golden’을 통해, 전 세계가 한국 문화에 열광하고 있음을 캐나다에서도 체감할 수 있었던 해였다.

이 도시가 캐나다에서도 유독 아시안 인구가 많은 곳이라는 점이 그 인상을 더욱 짙게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미 BTS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두터운 K-pop 팬층이 형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이러한 분위기가 결코 과장이라고만 보기도 어렵다.


‘한국인 부심’이라는 말이 있다면, 집을 구하는 동안 그것을 가장 확실하게 느꼈다.


밴쿠버에서는 내가 집을 고른다고 해서 계약이 성사되는 구조가 아니었다. 계약금을 먼저 건 사람이 차지하게 되는 우리나라와 달리 집주인이 여러 지원자 중에서 조건을 따져 세입자를 선택하고, 일종의 합격 통보를 해주는 방식이다. 제출 서류도 상당하다. 기본 신용이 보증되어야 하기 때문에 그런 시스템 안에서 집주인들의 ‘한국인 경험’은, 나 같은 새내기 정착러에게 생각보다 큰 혜택으로 작용했다. 둘러본 집들 중 상당수에서, 우리가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연락이 빠르게 오기도 했다.

그런 순간마다 나는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이전 세입자들에게 마음속으로 감사 인사를 했다.

그들이 그 공간에서 성실하게 살아준 덕분에, 신뢰를 얻고 집을 비교적 편안하게 보러 다닐 수 있었다. 어디선가 조용히, 묵묵하게 자신의 몫을 다해 살아온 자들이 남긴 신뢰.

자랑스럽다는 말이 과하지 않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어딜 가나 성실한 한국인들, 그리고 캐나다에 먼저 와 길을 만들어 준 선배들이 있어 참 든든하고, 고맙다.


도착한 지 8일이면 집도 정하고, 차도 하나쯤은 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건 너무 성급한 확신이었다. 8일은, 새로운 땅에서 삶을 시작하기에는 턱없이 짧은 시간이었다. 현지 정착을 위해 필요한 정보들은 생각보다 많았고, 그 정보들을 이해하고 판단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집과 차를 미리 정하지 않은 채 도착해 직접 알아보기로 한 선택은 결과적으로 옳았다. 한국에서 미리 찾아본 정보들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었고, 현지에 와서 마주한 현실은 그보다 훨씬 다채로웠다.

첫 숙소에서의 8일 동안 휴대폰을 개통했고, 중고차 한 대를 마련했다. 하지만 집은 달랐다.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결국 우리는 코퀴틀람에서 한 달을 더 머물며, 서두르지 않고 집을 알아보기로 했다.


첫 숙소에서의 마지막 날 주인 내외분은 우리를 저녁 식사에 초대해 주셨고, 같은 건물 102호에서 한 달 살이를 하던 가족도 함께했다. 캐나다 밴쿠버 땅에서 우리가 처음으로 지낸 곳.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낯선 땅, 한 지붕 아래에서 생활하며 소소한 정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참 감사한 일이다. 해외에 나가보면 한국인은 서로 피하다가도 이렇게 어울리기 시작하면 간이고 쓸개고 다 빼주는 이웃이 된다. 정에 약해서 처음부터 쉬이 마음을 내주지 않는지도....

풍성한 메뉴와 마음 따뜻한 식탁 위에서 오간 이야기들은 오래 남았다. 집은 급하게 결정하지 말고 천천히 꼼꼼하게 살펴보고 결정하라는 조언과 함께 처음 캐나다에 도착했을 때의 막막함과, 우여곡절 끝에 자리를 잡기까지의 시간들에 대한 주인부부의 이야기는 이제 막 시작선에 선 우리에게 조용한 자극이 되었고, 동시에 하나의 다짐처럼 마음에 남았다.




우리는 주거지를 밴쿠버, 버나비, 써리 이 세 지역 안에서만 정해야 했다.
그곳에서만 유학생 자녀에게 무상교육이 제공되었기 때문이다. 다른 지역에 거주할 경우 아이들까지 국제학생으로 등록해야 했고, 그에 따른 학비는 우리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이었다. 선택지는 분명했지만, 그만큼 고민도 깊어졌다. 크레이그리스트와 페이스북 마켓플레이스에서 지역과 예산을 설정해 하루에도 수십 개의 매물을 검색했다. 일주일에 두세 곳씩 약속을 잡아 직접 집을 보러 다녔다. 화면 속 사진과 실제 집 사이의 간극을 하나씩 확인해 가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중국, 대만, 인도, 캐나다 등 다양한 국적의 리얼터들을 만났고, 그들이 소개하는 집을 구경하는 일 자체가 하나의 경험이 되었다. 중국인 리얼터는 기물이 일부 파손되어 있어도 사용에는 문제가 없다며 자신감 있게 설명했고, 인도인 리얼터는 다소 좁아 보이는 집에서도 공간 활용을 강조하며 대가족도 충분히 살 수 있다고 말했다. 가장 팬시한 고층 아파트는 캐나다인 리얼터가 소개했는데, 과한 설명 대신 내가 좋다고 느낀 부분에 조용히 부연을 덧붙이는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다양한 국적의 리얼터들이 모두 한국인을 반기는 것이었다.

“Oh, are you Korean? We love Korean tenants. The previous tenants were a Korean family, and they took such good care of the place.”

집주인들은 이전 한국인 세입자가 얼마나 성실하게 월세를 냈는지, 집을 얼마나 책임감 있게 사용했는지를 자세히 이야기해 주었다. 그 말들은 종종 이런 의미로 들리기도 했다.

“당신도 한국인이니, 그만큼 잘 써줄 거라고 믿어요.”


이런 일도 있었다. 도착한 지 20분이 다 되어가는데도 리얼터는 나타나지 않았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지?' 약속 시간에 맞춰 만나는 것이 보통이었기에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주소를 잘못 알고 있는 건 아닐까 싶어 안내받은 집 앞까지 직접 가 보았다. 그곳에는 이미 우리 말고도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집을 보러 온 사람들임이 분명해 보였다. 터번을 쓴 남자가 아주 어린아이를 안고 있었고, 화려한 외모와 눈에 띄는 주얼리를 한 인도인 부부가 서 있었다. 리얼터가 나타나지 않는 상황에 몹시 당황한 표정의 이란인 부부는 자신들이 이란에서 왔다고 소개했다. 거기에 태국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중년의 여성까지 합류하자, 어느새 세입자 후보만 네 팀이 되어 있었다.

그중 인도인 여성이 나에게 다가와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었다. 한국 사람이라고 답하자, 그녀는 리얼터의 이름이 ‘Son’이라며 한국 사람이 아니냐고 했다. 직접 전화해 보라는 말에 전화를 걸었고(생각해 보니 내가 왜 그녀가 시킨 대로 했는지 홀린 듯이 전화를 걸고 있었다), 리얼터는 한국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이미 다른 후보자가 집을 계약하고 갔고, 그 소식을 제때 전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짧은 사과를 전했다.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 모두 허탈한 표정이 되었다. 이란인 부부는 오늘 오후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이곳에 왔다고 했고, 우리는 이 상황에 대해 그냥 넘어갈 수는 없겠다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시간 낭비에 대한 항의는 함께하자는 데에 자연스럽게 의견이 모였다.

우리는 같은 상황에 놓인 피해자로서 감정을 공유하게 되었다. 누구랄 것 없이 그 자리에서 이 리얼터 후기에 Worst of worst로 각자가 느끼는 불쾌함을 글로 남겼다. 언어도, 국적도 달랐지만, 이 어이없는 상황 앞에서는 모두가 같은 편이었다. 몇 시간 뒤 리얼터는 지금 계약 중인 사람이 취소하면 우리에게 기회를 주겠다며 미안하다는 사과 문자를 보내왔다.

그 뒤로 다시 연락은 없었다.




써리는 남편의 학교가 있는 버나비와는 거리가 있었지만, 신도시답게 주거 환경이 안정적이고 집세도 밴쿠버나 버나비보다 상대적으로 낮았다. 밴쿠버에서 투룸 아파트에 살 비용으로 써리에서는 타운하우스를 계약할 수 있을 정도였다. 2~3층 규모의 낮은 아파트들이 많아 주변 자연과 어우러지는, 묘한 안정감을 주는 동네이기도 했다. 집만 놓고 본다면 써리는 충분히 매력적인 선택지였다.

문제는 아이들이 다닐 학교였다. 대부분의 집은 등하교를 위해 차량 픽업이 필요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1종 보통 면허를 따놓고도 20년 넘게 ‘장롱면허’로 묵혀두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우리의 선택지는 아이들이 걸어서 다닐 수 있는 학교 근처로 자연스럽게 좁혀질 수밖에 없었다. 한국인이 주인인 타운 하우스의 베이스먼트 독채도 가 보았다. 월세는 한화로 180만 원 선. 주인 분들은 무척 친절했지만, 가구와 생활용품을 모두 새로 마련해야 하는 구조였다. 초기 비용에 여유가 없었던 우리에게는 월세가 합리적이어도 부담이 컸다.


또 한 곳은 써리에서도 초입에 위치한 프레이저 하이츠 지역이었다. 학군이 좋다고 알려진 동네였다.

월세는 약 210만 원. 주인아저씨가 욕실이 딸린 메인 룸을 사용하고, 우리는 작은 방 두 개를 쓰며 거실과 부엌을 함께 사용하는 조건이었다. 베이스먼트에는 신혼부부가 살고 있었고, 유학생 한 명까지 더해진, 식구가 많은 홈스테이 구조였다. 살림살이를 장만할 필요는 없었지만, 전기세를 비롯한 유틸리티 비용을 우리가 더 많이 부담해야 할 것이 분명했고, 자유분방한 아이들을 데리고 생활하다 보면 내가 하루에도 몇 번씩 아이들을 통제하며 지내게 될 모습이 너무도 선명하게 그려졌다. 그 집 역시 결국 선택지에서 제외됐다.


고민 끝에 우리는 결국 우리 가족만을 위한 공간을 선택하는 것이 낫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월세 180만 원도 결코 적은 금액은 아니었다. 그러나 180만 원에서 280만 원 사이의 선택지라면, 주인집에 딸린 셋방보다는 비용만큼의 공간과 자유를 온전히 누릴 수 있는 단독 아파트가 더 합리적으로 느껴졌다.

계약 직전, 집주인이 월세를 50달러 올렸다 내렸다 하는 바람에 마음을 졸이기도 했지만, 여러 조건을 비교해 보았을 때 이 집이 가진 장점은 분명했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우리는 이곳을 선택했다.

투룸에 덴이 있고, 넓은 거실의 통창 너머로 집 앞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아파트다. 아이들 학교는 모두 걸어서 5분에서 10분 거리였고, 남편 학교 역시 차로 10분이면 갈 수 있는 효율적인 동선이었다. 무엇보다도, 이곳에서는 분명하게 ‘우리만의 집’이라는 자유로움이 느껴졌다.


100여 곳을 검색하고, 20여 곳을 직접 찾아다닌 끝에 마침내 우리 가족이 머물 첫 집이 그렇게 정해졌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