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의 공간
언제든 누릴 수 있는 것들 앞에서 우리는 왜 이렇게 쉽게 게을러질까.
석촌 호수 앞에 살 때는 조깅 한번 안 나가더니, 강서구로 이사 간 후로는 일부러 찾아가 벚꽃을 즐기고 한 바퀴씩 돌고 오는 걸 보면, 인간은 결핍이 있어야 열정이 생기는 지도 모르겠다.
재택근무로 집에만 있다 보니, 밴쿠버가 어떤 도시인지 잘 와닿지 않는다.
매일 설악산 절경을 보는 것처럼 책상 앞 풍경은 장관이지만, 그 아래 바삐 살아가는 캐네디언 또는 이민자들의 삶은 어떤지 궁금하다.
그래서 시간이 날 때마다, 일부러라도 바깥으로 나가보려 한다.
집 바로 옆에 Skytrain station(EXPO line)이 있어서 시내 나갈 땐 언제나 애용 중이다.
오늘처럼 마음 심란한 날은 최고의 옵션이니까.
서울에서도 지하보다는 바깥을 보고 싶어서 버스를 타고 다녔으니, 지하철이 아닌 하늘철이라서 더 좋다. 이름대로 철길이 공중에 이어져 있어서 어떤 구간은 놀이동산 롤러코스터를 탄 기분도 든다. 마지막 정류장까지 가야 하니, 심장이 간질거리는 옛날 발라드를 들으며 창가에 자리를 잡고 한 동안 풍경에 심취할 수 있다. 저 멀리 눈 덮인 산과 구름모자를 쓴 산자락이 넓게 펼쳐지고 양 쪽에 키카 큰 나무들이 하늘까지 닿을 기세로 늘어서 있다.
양쪽 벽을 따라 길게 이어진 일자형 좌석에 마주 보는 지하철 실내가 익숙한데, 버스처럼 두 자리씩 순방향, 또는 역방향으로 뒤섞여 자리가 배치되어 있다. 천편일률에 익숙한 내 몸이 느끼기는 참 재미있다. 복잡한 출퇴근 시간이 아니라면 열차의 젤 끝 칸, 끝자리에 혼자 앉아갈 수 있는데 마치 기관사가 된 기분도 느낄 수 있다.
만화 같은 상상을 보태면, 깊은 숲 속을 빠져나와 하늘 어딘가로 날아가는 열차를 타고 있는 기분이 든다.
나는 매번 볼거리가 많은 다운타운으로 향하는 중이다.
아직까지는 마냥 기분 좋은 여행자 모드니까.
다양한 인종이 한 공간에 뒤섞여 앉아 같은 방향을 향해 달린다.
출신 국적, 언어, 문화, 성격, 성향 다 제각각이지만 이렇게 한데 모여 있는 모습을 보니, 다들 살아가느라 고생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일면식도 없는 이 사람들을 보며 애잔한 마음이 드는데, 가까이에 있는 가족에게는 냉정한지 모르겠다.
우리는 서로를 다 이해하지 못한다. 오랜 시간이 이해의 범위를 보장할 수 없다. 오래 봐 왔다고 그/그녀를 이해하고 그/그녀에 대해 안다고 할 수 없다. 오로지 인간은 자신이 아는 범위, 꼭 안에서만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때로는 속으로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이건 너무나 명백한 건데 그걸 왜 몰라?' 원망하면서
말로만 알겠다고 자기기만을 하며 사는 것 아닐까?
그러니, 살면 살수록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말이 조심스러워진다.
이제는 네 마음을 안다고 함부로 말할 수가 없다.
나는 그를 이해하지 못한다.
아마 끝까지, 모른 채로 남을 것이다.
밴쿠버 영사관에 들러 미국 간호사 면허를 캐나다로 이전시키는데 필요한 서류들을 떼어 돌아오는 길이었다. 두 번째 걸음이었다. 유독 추워진 어느 월요일, 예약을 해야 하는 줄 모르고 그냥 갔다가 돌아와야 했는데 화요일, 목요일만 순차로 work in service를 한다고 했다. 서울의 주민센터 생각하듯 영사관으로 달려간 나와 같은 초짜에게는 현지의 예약 문화를 각인시켜 준 번거로움이기도 했으니 하나 배웠다치자.
외국인 임시거주자를 줄이기 위한 강경책이 진행 중이나 간호사는 이곳에 필요하다는 의료인이니 어찌 될지 모르는 앞날, 여건이 된다면 정착해 쓰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궁금하고 알고 싶은 것이 갈수록 많아지는 곳이니 탐험을 해보는 거다.
Waterfront역에 내려서 여기저기를 다니다가 신호등 앞에 섰다.
처음엔 아무 생각 없이 서 있다가 바로 옆 건물 벽에 커다랗게 그려진 벽화를 봤다. 시내 곳곳에는 벽화가 많이 있어서 쉽게 지나칠 뻔했는데, 신호등 기다리는 시간이 내 시선을 벽화에 머물게 해 주었다.
예술에 문외한인 나에게도 메시지가 분명히 전해지는 벽화였다. 이런 걸 공공예술이라고 하나?
일반인에게 보편적인 의미로 전달되는 예술의 공공 영역 같은 게 있다면 말이다.
두 인물의 얼굴을 중심으로 원주민(Indigenous) 정체성, 역사, 자연, 바다, 별·달 같은 우주적 상징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얼굴 안과 주변에 들어간 수많은 이미지들이 한 사람의 초상이라기보다 집단의 기억과 이야기를 나타내는 방식으로 묘사되어 있었다. 수많은 작은 그림들은 두 인물을 나타내는 작은 단위처럼 스며들듯 색칠되어 있었고 그래서 뭔가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고 가까이서 또 멀리서도 보았다. 아이와 여인의 얼굴은 과거–현재, 전통–현대, 혹은 서로 다른 문화/관점을 상징하는 인물처럼 보이기도 하고 겹쳐진 이미지 중 바다, 배, 동물, 문자, 기하학적 문양이 토착 문화, 이주, 식민 역사, 다문화 공존 같은 주제를 암시하는 것 같다.
밴쿠버는 원주민을 first nation이라고도 부르며 그들의 문화와 역사를 존중하고 인정하는 분위기가 있다.
어디를 가나 공존의 의미를 드러내는 이 도시는 다문화를 진심으로 존중하는 도시라고 느껴진다.
2006년, 몬트리올 북부 원주민 마을을 방문했을 때는 상황이 달랐다.
캐나다 정부의 차별적 정책과 지나친 간섭으로, 원주민의 문화와 삶이 무력화되는 모습을 보았다. 지정된 곳을 벗어날 수 없고, 교육을 받는 것도 자유롭지 못했다. 물질적 지원을 해주는 것이 복지가 아니라, 주체적 선택권을 빼앗고 동물원의 동물처럼 자유를 가두는 것 같았다.
원주민 마을의 대부분 성인은 마약 중독이거나, 자살 충동, 사회 범죄와 연관되었고 거기에서 방치된 아이들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당시 우리 봉사단은 어린이들을 위한 행사를 준비했었는데, 아이들이 행복해하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매일 캠프로 달려오는 아이들에게서 마리화나 냄새가 나는 것이 슬펐던 기억도....
20년이 흐른 지금, 나는 다시 캐나다에 와 원주민의 역사와 현재의 삶을 바라본다.
각 자치 주마다 상황이 얼마나 다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이 다시 건강해지고 있는지, 그 회복의 과정이 어디쯤 와 있는지 알고 싶다.
인도인인 줄 알고 ‘인디언’이라 부르며 정착한 프랑스인.
그들을 몰아내고 땅을 차지한 영국인, 그리고 그 후손들이 일궈온 이 땅.
그 위로 다시 인도인, 중국인, 한국인, 중동인이 들어와 자리를 차지하며 함께 살아가고 있는 과거와 현재의 캐나다가 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의 세계를 침범한 이방인들이기에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존재들이지만, 원주민과 그들을 정복했던 이주민이 공생을 위해 기울여온 노력을 배우고 싶다.
나 역시 이방인 중에서도 소수민족으로서 감정을 이입하며, 이 사회 안에 스며들어가는 방법을 찾아 가능하다면 이들과 함께하고 싶다.
밴쿠버를 돌아다니다 보면, 이런 멋진 사람들이 사는 도시가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도시 곳곳이 마치 하나의 예술 전시장 같다.
더는 사용하지 못하는 경비행기 프로펠러를 꽃잎처럼 거리 위에 내려놓은 설치 작품부터, 자유롭고 의미 있는 벽화까지 그 모습도 다양하다. 거리가 깨끗하게 유지되다 보니, 다른 곳이라면 지저분하게 보였을 골목의 낙서조차 하나의 예술처럼 느껴진다. 게다가 local artist들의 작품을 무료로 감상할 수 있는 갤러리도 열 곳이 넘는다. 다운타운에서 West Broadway와 교차하는 Granville Street을 따라 걷다 보면, 그중 절반은 자연스럽게 마주치게 된다.
그랜빌 아일랜드를 걷다 우연히 글로벌 건설자재 회사 하이델베르크의 시설 앞을 지나게 됐다.
거대한 시멘트 저장소들이 마트료시카 인형, 혹은 커다란 목각 인형처럼 칠해져 있는 모습에 웃음이 났다. 건물 하나만 한 구조물에 그런 그림을 그려 넣을 생각을 하다니. 마지막에 복면을 쓴 캐릭터는 우습기까지 했다.
예술과 일상이 이렇게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풍경 속에서, 지위고하나 생활환경을 막론하고 삶을 대하는 이곳 사람들의 태도가 느껴진다. 분명한 내 영역에 다른 누구/무엇이 끼어들 여백을 남겨 두는 것.
자기 고집 또는 획일화된 문화나 규제에 갇히기보다, 상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여유 말이다.
나는 이제 막 첫인상을 받아들이는 중이기에, 이 모든 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감상일 뿐이다.
지금은 그저 그것을 누릴 시기다.
이 도시의 열정과 여유가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