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ppiness is

found in the ordinary

by 아궁이

“엄마, 나 이제 좀 긴장돼.” 가까이 와보라는 손짓을 하더니, 귀에 대고 속삭인다.

우리 가족 중에서 캐나다행을 가장 반겼던 아이가 둘째다.

친구들과 헤어지는 건 아쉬워했지만, 그럼에도 매일같이 이사 이야기를 하며 설레어하던 아이.

3년 전, 처음으로 미국 올랜도 디즈니월드를 다녀온 뒤로 영어를 잘해서 하버드 대학에 가고 싶다는 목표를 스스로 정해 두었다. 영어를 배워 본 적이 없지만 무조건적인 호감을 가진 상태로 누가 시킨 것도 아닌, 아주 순수한 자기 목표를 세운 기특한 녀석이다.


비행 내내 기내식과 다양한 볼거리에 마냥 흥분해 있던 아이가 도착이 얼마 남지 않은 그때, 갑자기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그동안 털어놓지 못했던 마음을 조심스럽게 꺼내놓았다.

“사실은 캐나다에 살게 되면 영어를 잘하게 되는 줄 알았어. 근데 아까 엄마가 그건 아니라고 했잖아. 처음부터 잘할 수는 없다고.... 학교 갈 생각을 하니까 떨려, 엄마.”


이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그게 정상이지. 얼마나 걱정되었을까?

자신만만해서 저세상 자신감을 타고났구나 했는데, 역시 내 딸이다.


"괜찮아. 다들 배우면서 잘하게 되는 거야."

"엄마는 영어 잘하잖아."

"아니야. 엄마도 처음엔 영어 못했고 싫어했어. 그러다 나중에 좋아하게 되니까 일할 정도가 된 거지, 엄마가 늘 말하잖아. 영어는 기세야. 자신감이야."

"근데... 학교 갔는데, 하나도 못 알아 들어서 나만 아무것도 못하면 어떻게 해?"


"그런 날도 있겠지. 근데, 영어를 하나도 못하니까, 너를 이제 갓 태어난 아기라고 생각해 봐. 아기들이 1년 동안은 듣기만 하잖아. 말을 들려주는 엄마, 아빠, 언니 입을 빤히 보면서 관찰을 하는 거지. 그러다가 때가 되면 엄청 잘하게 되잖아. 너도 그랬어. 말싸움해서 언니를 이길 정도잖아(피식 웃음).

그러니까 한동안은 듣는 시간이다 생각하면서 항상 웃고 있으면 친구들이 다가와서 말을 걸고 같이 놀자고 할 거야. 그리고 너만 아무것도 못하는 상황이 온 것 같으면 손을 들고 선생님께 말해. Help me라고"


"그냥 웃기만 해?"

“응. 이렇게 미소를 짓는 거지. 누구든 편하게 다가와도 좋다는 표시로. 자, 봐봐. 씨익.”

긴장으로 굳어 있던 그 사랑스러운 얼굴에 이제야 천천히 미소가 번진다.


비행기 창에 우리 둘 얼굴을 비추어 웃어보았다.

"히히, 알았어. 엄마~"


초등학교 놀이터


집을 구하고 바로 시작한 것은 주소지와 함께 밴쿠버 교육청에 아이들을 등록시키는 것이었다.


신청하면 당연히 집 가까운 학교로 배정이 될 것이라 믿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요새 international student가 늘어서 종종 한 학기에서 1년도 기다리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그리고 여기 행정이 말도 안 되게 실수도 많고 느려서 신청만 해놓지 말고 적극적으로 알아보라는 조언을 들었다.

이 집으로 결정한 이유가, 아이들 학교가 걸어서 5분, 10분 이내 거리였기 때문인데 다른 학교로 배정되면 정말 큰 낭패다.


서명 완료된 집 계약서로 서둘러 교육청에 등록을 마치고, 집 앞 초등학교와 secondary에 전화를 걸었다.

8월이라 아직 방학 기간이기 때문에 mail을 보내달라는 자동응답이 있었고, 남편은 자세한 내용을 메일로 문의했다.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은 우리는 학교를 찾아가 보기로 했다.

아직 8월이긴 하지만, 혹여 미리 신청해 놓은 아이들이 자리를 다 차지해 버리면 다른 학교로 배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 간에는 교육청에 한인 advisor가 있다는 소식이 있어 수소문 끝에 그분의 연락처를 얻고 구구절절 메일을 보내고 전화번호도 남겼지만, 연락은 없었다.


나는 근무를 해야 해서 남편이 아이들을 데리고 직접 학교를 찾아갔다.

둘째의 초등학교가 집에서 뛰어가면 5분 거리인 만큼 정말 가깝고, 아파트 거실 큰 창에서 내려다보면 등하굣길이 다 보이는 최적의 학교였다.

꼭 자리가 있기를 기도하며 기다렸는데, 아이 이름이 본 학교로 리스트업 되어 있다고 개학할 때 학교로 오라는 안내와 함께 남편에게 메일로 학교 일정 메일을 보내준다고 했단다.

너무나 감사하게도 첫째가 다닐 중학교도 같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아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당연하다 여겼던 일이 뜻대로 안 될 때, 그 일은 진정 특별해지고 너무나 간절하다.

그리고 다시, 감사했던 그 순간을 쉽게 망각하는 것 같다.

캐나다에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당연했던 일들이 지금은 불가능한 상황에 있다.

어학원이든 college프로그램이든 부모가 유학을 하게 되면 배우자에게 워크퍼밋(work permit)을 주었는데, 이제는 4년제 대학과 대학원 과정이 아니면 배우자에게 동반 비자도 주지 않는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정착을 기대할 수 있었던 남편 학교가 폐교조치 되고

너무 싸서 후덜 거리는 자동차.

그리고 나를 흔드는 회사 본부장 교체로

앞으로 어찌 될지 모르겠지만

오늘에 감사한다.


어쨌든, 아이들이 공백 없이 9월 학기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야호~!!




이곳에 와서 만나게 된 가족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우리 아이들의 등교 첫 소감이었다.

어떤 아이들은 첫날 학교에 다녀온 뒤 한국에 가고 싶다고 울었다고 했고, 어떤 집은 1년이 넘도록 적응을 하지 못해 여전히 애를 먹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다들 “아이들만 잘 적응해도 반은 성공한 거다”라는 말들을 했다. 그런 이야기들을 듣고 나니, 아이들의 첫날 소감이 더욱 궁금해졌다.


10살, 3학년 1학기를 마치고 왔는데, 9월에 4학년(Gr4)이 된 둘째의 초등학교 등교 첫날.


오후 3시가 되니 학교 건물 밖으로 종이 울리고, 아이들이 쏟아져 나왔다.

교실 문이 보이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책가방을 멘 채로 어색하게 여기저기를 둘러보던 둘째가 나를 찾았다. 평소 같으면 깡총깡총 뛰며 손을 크게 흔들고 엄마를 부르며 달려올 텐데, 갑자기 요조숙녀가 돼버렸다. 점점 가까워지니 쑥스러운 듯 달려와 안겼다. 꼭 안아주고 집으로 향하는데, 뒤에서 "Rael~" 하며 한 아이가 달려왔다. 그 아이도 수줍은 듯 손을 흔들어 보이며 인사를 했다. 자기는 아빠가 차를 세워둔 곳으로 가야 한다며 한 동안 같이 걸었는데 둘째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나에게 시키며 친구와 대화를 했고, 얼굴에는 하루 종일 연습했을 것 같은 자상한 할아버지 미소를 띠고 있었다.


계속 웃고 있으라고 했더니, 정말 이렇게 하루 종일 미소 지었던 걸까.

웃음이 나와 혼났다.


친구는 아빠를 만나 가고, 둘째는 다시 수다쟁이 한국 꼬맹이가 되어 재잘거렸다.

"엄마, 나 여기 너무 좋아. 너무 행복해~~."라고 외쳤다.

"오~~~ 행복하다니. 최고다. 첫날인데 힘들지 않았어?"

"아니! 진짜 재밌었어. 공부하다가 밖에 나가서 놀고, 또 공부하다가 놀이터 가서 놀고, 점심 먹고 또 놀고 왔어. 그리고 선생님이 뭐 하라고 할 때는 번역기를 보여줘서 어렵지 않았어. 친구도 사귀었어. 행정실 선생님이 한국 언니도 소개해 줬는데, 영어도 잘하고 한국말도 잘해서 날 도와줬어." 쉬지 않고 이야기가 이어졌다.


서울에서도 ‘뽀로로 생활’을 하던 아이들이었다. 노는 게 제일 좋고, 동네 놀이터에서 매일 놀아야 직성이 풀리던 아이들. 그런데 마치 꽉 막힌 제도에서 풀려난 자유인처럼 말하는 모습에 웃음이 났다.

한국에서도 충분히 잘 놀던 아이들이었지만, ‘행복하다’고 말한 적은 없었다.

첫 등교 소감이 행복이라니, 놀라웠다.


캐나다 학교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쉬는 시간에는 무조건 밖에 나가 놀게 한단다.


듣고 말하기는 물론 영어 단어도 아직 쓸 줄 모른 채로 설레는 마음만 가득 안고 온 그녀, 막상 실전을 앞두고는 긴장하는 모습을 보였던 우리 집 귀염둥이.

영어가 아직 들리지도, 말하지도 못하지만 행복하다고 말하는 아이를 보며 나도 덩달아 행복해졌다.

"엄마는 천재야, 그런 걸 어떻게 아는 거야? 진짜 웃고 있으니까 친구들이 말을 걸고 같이 그네도 탔어."


언어를 쉽게 습득하는 재능을 타고나는 사람도 있지만, 언어는 학습보다는 체득되는 것이기에 문화, 환경적인 노출에 의해 자연스럽게 몸에 베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적응을 위해서는 개인이 외국어 능력, 외국어 실력이 엄청 뛰어나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소통할 수 있는 공감과 센스가 있다면 발음이 좀 아쉬워도 문법이 틀려도 시간이 흐르면서 생활화되는 것이 언어고, 그보다는 사람 간에는 꼭 말이 아니라도 뜻이 전달되는 비언어적 표현도 있으니까, '미소' 전략은 꽤 잘 먹혀들어갔던 것이다.


긴장이 좀 풀린 둘째는 오늘 말을 걸어준 친구들에게 고맙다는 편지를 번역기를 돌려 정성껏 썼고,

내일 학교 가서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말도 번역기에게 묻고 답을 들으며 준비했다.

온 가족이 작심한 영어일기를 둘째 혼자 그날부터 쓰기 시작했다.


스스로 말하고 싶은 동기가 학습으로 그리고 성취로 이어질 것이다.

Good luck, my sweetie.

Town centre park


중학교에 입학해 겨우 마음이 맞는 친구들이 몇 생기며 1학기를 적응해 가고 있었기에, 캐나다로 가는 것을 싫어했던 첫째가 더 걱정됐다.

가족 모두가 함께 내린 결정이었으니 고집을 부리거나 심통을 내지는 않았지만, 또래 무리에 섞이기 전 한참을 주변에서 살피는 소심한 성격 탓에 첫째의 긴장감은 고스란히 전해졌다.

친구를 사귀는 데 시간이 필요한 아이라는 걸 알기에 마음이 더 쓰였다.


그런데, 첫날 학교에 다녀온 첫째 역시 환한 얼굴로 쉬지 않고 소감을 이야기했다.

“엄마, 엄마. 오늘 재밌었어.”

"엄마, 여기는 반이 따로 없어. 내가 들어야 하는 수업 교실을 찾아가서 듣는 방식이야. 그게 너무 좋은 거 같아."

"그리고 과학 시간에 내 옆에 히잡을 쓴 친구가 있었는데, 말을 한마디도 안 하고 선생님이 뭐 하라고 하면 어쩔 줄 몰라해서 내가 도와줬어. 잘했지?"


초등학교 내내 한 반에 한정된 친구들 속에서 마음과 속도가 맞는 친구를 찾는 일은 늘 어려웠기에, 반 없이 여러 수업을 여러 학년이 섞여 듣는 방식이 신선했나 보다. 게다가 남을 도와주는 일로 늘 칭찬을 들었지만 주류무리에 섞이지 못했는데, 자기보다 더 소심하고 어려워하는 친구를 도울 수 있었으니 첫날의 보람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수업 시간마다 새로운 친구나 언니, 오빠를 만나는 재미도 있을 테고, 다양한 인종의 친구들과 어울리며 자연스럽게 다문화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참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아이들에게 매일 이야기해 주었다. 한국인이 영어를 못하는 것은 너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하지만 공부하기 위해서는 영어가 기본이 되어야 하니, 매일 조금씩이라도 책도 읽고 영어 일기도 쓰면서 노력하다 보면 어느 날 잘 들리고 또 나도 모르게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게 될 거라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어디에 살든지 내가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한다면, 좋은 친구를 만나는 것이라고.


영어와 어울림, 우리 가족 모두의 미션이다.

블루베리 농장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