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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궁이 Nov 24. 2023

여행

가지 않으면 경험할 수 없는 것들

 매주 임지를 이탈해서 여행 다니는 미국 Peace corp친구는 임기 1년 중에 3개월을 여행만 다니다, 비워둔 집에 현지 강도가 들어 중도 귀국을 했다. 그가 귀국하면서 나에게 했던 말이 우리 동네 small village를 돌아다니며 상처소독과 약을 나눠주는 봉사도 좋지만, 여기 있는 동안 이곳저곳 다른 생활과 문화를 보고 경험하고, 여행을 많이 다녀보라고 강조했다. 그는 3개월 동안 카메룬의 동서남북 안 가본 데가 없단다.

살면서 그런 자유로운 이탈을 아직까지는 해 본 경험이 없는 나는 그가 대단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학교에 들어갔으면 반드시 졸업을 해야 하고, 

직장에 들어갔으면 아무리 괴롭고 힘들어도 그만두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나였으니 말이다. 

평생 한 번뿐일지 모르는 아프리카 살이인데, 바푸삼 이외 여행한 도시는 수도 '야운데' 말고는 아직 없었으니, 그의 충고는 나의 단원생활에서 꽤 큰 변곡점을 만들었다. 

'그래, 난 지금 아프리카에 와 있고, 돌아갈 시간도 정해져 있는데 왜 그동안 여행을 다닐 생각을 못 했을까?'


카메룬 남부지역 림베 단원이 빅토리아 호수를 가보자고 예전부터 제안을 했었는데, 때마침 이번에 한 번 더 제안하기에 나와 바함 동기 그리고 림베 단원 셋은 함께 가보기로 했다. 

빅토리아 호수는 우리 동네에서 얼마 안 떨어진 <거대한 쌍둥이 호수>라는데 난 전혀 모르고 있었다.


우리는 토요일로 날을 정하고 함께 모여 출발했다. 당일로 다녀오는 일정이라 주말 하루 부담 없겠다 싶었다.

아침 7시로 예약해 둔 오토바이 택시를 한 대씩 타고 드디어 출발~~

신난 우리는 그 옛날 오렌지족이 된 것 같았다.

맑고 푸른 하늘, 우거진 초록 나무들 사이로 델리스파이스 노래가 짙게 버무려져 흥을 돋웠다.


동네에서만 타고 다니던 오토바이 택시를 고속도로에서 타고 달리니 좀 무서워서

"살살 갑시다~두스망"(Allez-y doucement!)하며 어깨를 동동 두드리니

친절한 기사가 "오케이 오케이 (Oui~oui)"하며 천천히 달려주었다.


조금 지나지 않아, 익숙해진 내가 두스망 하는 횟수가 잦아들고

음악과 풍경을 만끽하는 나만큼, 나를 태운 오토바이 기사도 신나게 속도를 올려 달렸다.

고속도로를 거침없이 한 참을 달리던 오토바이는 비포장 숲길을 능숙하게 달린다.

길이 딱 하나뿐인 길을 달리는데 이 장면이 영화 같기도 하고 CF의 한 장면처럼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지금 나는 아프리카 깊은 숲 길을 달리고 있다.

우거진 숲길을 지나 눈앞에 펼쳐진 이 초원은 또 다른 별천지 같다.

오토바이는 길이 없는 초원 위를 달리다 좁게 뻗어 나있는 길에 올랐다.


달리는 곳이 길이 되는 이 순간도 왠지 짜릿하다. 


비포장 산길, 숲길을 달리다 내려서 걷기도 하고 한참을 가다 보니 어느새 정상만큼 고도가 높아져 있었다.

우와~~~ 내 눈앞에 웅장하고 넓은 호수가 보인다. 그 옆으로 초원이 펼쳐있고 말도 보였다.

거대한 쌍둥이 호수는 정말 너무 커서 전체를 사진에 담을 수가 없다.

화산 분화구에서 생겨난 호수는 마치 커다란 대접에 물을 받아둔 것처럼 2개가 나란히 있었다. 

야트막한 산등성이 길게 펼쳐져 그 길을 중심으로 양 옆에 호수가 생겨나 있었다.  


가만히 서서 넓게 펼쳐진 이 광경에 넋을 놓고 서 있는데, 호수에서 '우우우~~~~~~~~~~~~'소리가 난다.

깊고 넓은 호수에서 'Bon Jour, Mon ami~~~'하며 말을 걸어오는 것 같다.

호수에서 소리가 난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는데, 정말 소름 끼치게 무서운 자연의 소리다.

광활하고 거대한 자연 앞에 작고 유약한 내가 서 있다.


 저 아래 집은 뭘까? 말들이 있네? 가까이 가보자며 호수로 내려가는 길로 함께 걸었다.

내려가는 길에 우리 앞을 한참을 지나가던 불개미 떼는 야생에서 볼 법한 왕불개미들이었고, 그 무리가 얼마나 크고 길었던지 멋 모르고 밟았다 내 온몸에 개미가 순식간에 타고 올라올 것이 상상되어 몸 서리 쳐졌다.

작지만 군대 같은 개미행렬은 무시무시했다.

더 걸어 내려오니 바로 옆에 넓은 호수가 펼쳐진다. 

고요한 호수 기슭에서 낚시하는 아버지와 아들이 그림처럼 평화롭다. 와~ 여기에 텐트 쳐놓고 며칠 캠핑해도 정말 좋겠다며 우리 셋은 자연이 주는 자유를 만끽하며 걸었다. 

현지인은 많지 않은데, 이 호수를 보러 오는 여행자들은 많은가 보다. 배낭을 메고 걸어가는 우리셋을 보며 

"Bon Jour, Bon voyage~(안녕하세요, 즐거운 여행되세요)"한다.  


살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현지인들이 낯선 우리를 만나면 친근하게 인사를 하고 잘 웃어주는 게 참 좋다. 우리나라 사람들이었으면, 말 걸까 봐 모르는 척 지나가기 바쁠 텐데 나는 카메룬 사람들과 이런 넉살이 잘 맞아서 좋다. 


점심때가 훨씬 지난 시간이라 근처에 음식을 파는 곳을 찾기로 했다. 식당을 찾기에는 우리 있는 곳이 너무 깊고 외져서 못 찾겠고, 현지 길거리 음식을 파는 아주머니가 보여 우리는 그 옆에서 음식을 주문하고 나오기를 기다렸다. 마침 커다란 바위들이 앉아서 먹고 쉬어갈 만하게 펼쳐져 있어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오토바이 기사들과 다시 만날 시간을 약속하고 돌아가서 나머지를 주기로 하고 왕복비용의 절반을 지불했다.

평소 우리가 아는 비용보다 훨씬 바가지 비용임을 알면서도 우리는 그 조건을 수락했다. 이곳에 오는 대중교통이 많은 것도 아니고 낯선 곳에 처음 가는 것이라 안전을 위해 투자를 한 것이다. 그리고 왕복 비용을 전부 선불했다가는 들고 튀는 일이 다반수이기 때문에 현지생활 1년 차답게 우리 셋은 누구랄 것 없이 편도 비용만 지불했다. 


깊고 고요한 빅토리아 호수 위로 나부끼는 솔바람이 뜨거운 적도의 볕을 식혀주었다. 

사람 없는 드넓은 이곳에서 마음껏 "야호~봉주흐~꼬망사바"를 외치고, 돌멩이를 주워다가 "스킴바"도 했다. 

포물선을 그리며 퐁퐁퐁~튀어나가는 돌멩이가 너무 귀여워 우리는 깔깔거리며 한참을 놀았다. 


순간 오토바이 기사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불안이 몰려왔는데, 편도만 벌어가도 꽤 많은 일당이 되었을 것이라 그냥 가버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 생각이 드는 순간부터 즐거운 시간을 온전히 즐길 수가 없었다. 


우리 셋 중에 림베 단원이 제일 자유로웠는데, 그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다고 굳게 믿는 스타일이었고

나는 경험에 의한 합리적인 의심을 제기하고 적당히 불안해하는 스타일, 

바함단원은 내가 제기한 의심을 들은 후부터 기사들이 다시 올 때까지 극도로 불안해하는 스타일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보완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지만, 우리 셋은 각자가 모두 고집이 세서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 믿고 아무리 말해도 불안해할 사람은 여전히 불안했고, 걱정을 좀 같이 했으면 하는 사람은 추호도 걱정이 없어 보였다. 


약속 시간을 딱 맞춰 나타날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초조해지고 부글부글 화가 났다가 다시 제발 와달라고 애가 탔다. 카메룬 타임으로 약속시간보다 1시간이 지나서야 기사들은 나타났고, 오기만 하면 욕을 한 바가지 해 주겠다던 우리는 와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시간에 대해서는 아무도 그 어떤 말도 하지 않고 올라탔다.  


해지는 노을을 보며 우리는 다시 산길을 달려 나왔다. 

바푸삼 시내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캄캄한 저녁이 되어 우리 집에서 하루 쉬어 가자고 시장에서 먹을 것을 잔뜩 사서 집으로 왔다. 


와~ 오늘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이라니 꿈을 꾼 것 같은 하루다. 

천국의 앞마당을 다녀온 기분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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