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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궁이 Nov 02. 2023

한국에서 온 손님들

아프리카 박물관

가끔 오는 가족과 친구들 메일을 읽다 보면, 내가 엄청난 영웅이 된 것 같다.

죽음의 땅, 오지, 너무 가난하고 힘든 땅에 가 있는 내 친구야로 시작한 편지는 살아서 돌아오라는 건강과 안전에 대한 당부로 끝을 맺는다. 열대과일 특히 망고를 원 없이 먹고사는 내 사진을 보내주고 아무리 잘 먹고 잘 산다고 해도 대단하다 하지 진짜 잘 살고 있는 내 삶이 와닿지 않나 보다.


카메룬에 오기 전만 해도 아프리카에 대한 나의 인식 역시 TV 프로가끔 나오는 문명과 거리가 멀어 보이는 원주민의 모습이나, 물이 없어 얼굴에 흙먼지를 다 뒤집어쓰고 땡볕에 흙집 앞에 모여 앉아 있는 어린아이들 모습 등 월드비전을 비롯한 구호를 위한 NGO에서 광고하는 가난한 아프리카, 척박한 땅, 그리고 에이즈나 알 수 없는 질병이 있는 곳이라는 막연한 짐작이 전부였다.

무지에서 오는 두려움이 컸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이곳에 왔을 때 그 모든 것이 관심이 없도 경험해보지 않았기에 갖게 된 선입견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수도 야운데에서는 외국인도 종종 볼 수 있고 현지인 중에서도 부유층은 우리가 누리는 이상을 누리고 산다. 대형 마트에서 리바이스 청바지와 나이키 매장에 사람이 많은 것만 봐도 가난한 아프리카가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


물론 그들은 1%로 내외이고 대부분은 가난하고 척박하게 산다. 20년 넘은 독재 정부가 부를 분배함에 있어 문제가 있다는 뜻이겠지. 그래서 쿠데타가 내가 있는 동안도 1번 이상 불발했고, 외국인 대상 강도, 살인사건은 늘 일어난다.


현지 생활 중에 한국인을 만나는 일은 거의 없다.

한국분 두 분이 바푸삼에 방문 오시는데 통역과 길안내를 부탁을 받고는 만나기도 전부터 반갑고 설레었다. 오시는 분들은 한국에 아프리카 박물관을 만들고자 하는 분들이라 전통시장과 현지 시장을 둘러보기를 원하고 아프리카 전통 골동품들을 쇼핑할 것이라 했다.

내 역할은 택시(데뽀)를 잡아 그분들 일정에 동행해서 통역을 해 드리고 깔끔한 현지 식당을 소개해드리면 되는 것이다.

한국에 차려질 아프리카 박물관이라, 생각만 해도 설렌다.

임기 마치고 귀국하면 꼭 가봐야지.


병원 근무를 마치고 조금 일찍 퇴근했다.

도깨비시장 같지만 이제는 정겨운 바푸삼 터미널에서 그분들을 만나기로 했다.

한국 전형적인 아저씨 스타일의 두 분을 만나 반갑게 인사하고, 잡아둔 택시로 이동했다. 들은 대로 한국에 아프리카 박물관을 열려고 준비 중이라고 하셨다. 아프리카 각 나라를 다니며 아프리카를 나타낼만한 물건들을 수집해가려고 한다고 방문 목적을 밝히셨다. 전통시장을 찾아가는 택시 안에서 그분들은 카메룬에 와서 겪은 이야기하시며 여기서 살고 있는 나에게 대단하다고 격려해 주셨다. 현지 살이에 대해 이런저런 질문들을 하셨는데, 살다 보니 현지인의 피부색이 보이지 않더라는, 단 100원도 손해 안 보고 장을 보는 실력까지 고작 1년 남짓 살고 있으면서 무용담을 길게도 늘어놓았다. 아직 여행으로는 아프리카 경험이 드물기 때문에 희소가치가 뛰어난 현지살이 이야기에 아저씨들 눈이 반짝거렸다.

내가 안전하게 사는지, 건강한 음식을 먹으라는 등 좋은 말씀을 해 주셨다.


전통시장에서 원주민 장인이 만들어 내는 물건을 거래하시는데 통역을 했고, 은행에서 현지화폐로 바꾸고 계산하는 일을 도와드렸다. 현지 상인들에게 바밀리께 전통이라며 추천을 받고 산 것이 벌써 양손 가득하게 되었다. 현지에 살면서 동네 왕족의 초대나 마을 진료를 다니며 보았던 것들이 어느새 흔하게 느껴져 그런가 내 눈엔 평범해 보이는 데, 두 분은 매우 신비로워하시고 만족해하셨다. 


또한 특이한 문양, 패턴이 있는 천을 사다가 현지 전통 의상을 의상실에 맡기면 며칠 안에 옷도 지어주는데, 시간이 없으니 천만몇 마를 떼어 사가셨다. 쇼핑하다 보니 출출해져서 시장 안에서 파는 꼬치구이나 쁠랑뗑을 권해드렸는데, 길거리 현지 음식에 그리 호감을 보이지 않으셨다. 진짜 맛있는데 결국 맛 보여드리지 못하고 바푸삼 시내 호텔로 갔다.

평소에는 비싸서 가지 못하는 호텔뷔페에 가서 은돌레, 쁠랑뗑, 과일을 양껏 먹었다.

내가 좋아하는 현지 음식은 은돌레인데, 우리나라 곤드레나물밥 같은 고소함과 담백한 그 맛이 너무 좋다. 어딜 가나 난 '은돌레'를 먹는다. 은돌레의 첫인상은 누가 토해놓은 것 같은 리소토 모습이지만, 한입 먹으면 땅콩소스의 고소함에 멈출 수가 없다.


맛있는 식사를 마치고, 두 분을 바멘다 가는 버스까지 배웅해 드렸다.

바멘다를 거쳐 남부지역으로 이동하실 거라 했다. 바멘다는 영어권이고, 남부 림베도 영어권이라 돌아다니기에 불편하지 않으시겠지.

카메룬 동서남북을 다니며 물건을 모으는 두 분의 열정이 아프리카를 소개하는 박물관에  잘 드러날 수 있기를 바라며....


오랜만에 한국 손님들을 만나고 집에 돌아오니

뭔가 그립고 허전하다. 돌아갈 날이 정해져 있고 이제 1년도 채 남지 않았지만, 현지인틈에 끼여 살다가 한국냄새 진한 손님들을 만난 오늘은 당장 한국으로 달려가고 싶다.

엄마~~ 아빠~~~~ 언니~~~ 동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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