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바람 사이사이로 따뜻하게 비추는 햇살이
기분 좋았던 오후.
키가 큰 은행나무길을 걷다가,
열매를 다 내어주고 이제는 떠날 때가 되었다고
우수수 떨어지는 노오란 은행잎을 보니 문득.
계절이 깊어갈수록
자신의 아름다움이자 전부를 다 버려야 하는
은행나무 너의 운명에
내가 부끄러워졌지.
그 어떤 반항 없이 창조주의 섭리와 계획 앞에
겸손히 순응하는.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나야 싹이 움트는
결국 버려야 새로운 삶을 얻는 비밀스런 축복.
너의 고요한 순종을
닮고 싶구나.
가을이 깊어가는 서울의 서쪽언저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