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궁이 Jan 18. 2024

자네, 카메루니안인가

풍토병

대건기에 사하라 사막에서 불어오는 모바람은 입자가 너무 고와서 손으로 만지면 보드랍지만,

길 위에 오토바이 한 대 지나가면

눈, 코, 입으로 위이잉~~ 모바람과 함께 붉은 파우더가 순식간에 얼굴을 덮친다.

어린 시절 운동회 때 과자 따먹기에서 밀가루 가득 부어놓은 쟁반 속에 사탕을 손 안 대고 먹다 보면

콧바람에 밀가루가 훅 들어오는 것처럼 내가 생각 못한 타이밍에 먼지가루가 훅 하고 들어온다.

"에에취이~!!" 비염이 도졌다.


하얀 크리넥스 티슈 한 장 뽑아서 얼굴 탁본을 찍으면 갈색 마스크가 찍혀 나오고,

'이렇게나 묻는다고?' 하며 클렌징 티슈로 벅벅 닦아내지만

어쩐지 닦아진다기보다는 점점 진갈색으로 발리는 기분이다.


나도 모르게 카메룬에 스며드는 시간이 지나고 진정 카메루니안이 되어가나 보다.


결국 현지 파견 1년을 경과하는 시점에 이질, 옴, 말라리아에 이어 장티푸스까지 다채로운 풍토병을 차근차근 앓았다. 장티푸스로 진단받기 전엔 마지막 말라리아를 앓으며 갑자기 살이 7킬로 빠지고 구토와 설사가 동반되었고 원인 모를 미열이 지속되었다. 현지에서 내린 진단명은 (unknown fever) 원인 모를 열, 말라리아, 장티푸스였고 검사결과지와 현지진단서를 들고 나를 후송하기 위해 온 프랑스인 남자 간호사와 함께 국제 SOS를 통해 대한항공 국적기에 몸을 실었다.


한 시간마다 vitial을 측정하던 프랑스인 동행 간호사는 내 혈압과 맥박 그리고 체온이 "Tres bien"( very good)이라고 하면서 구토와 설사 때문에 수액을 맞고 누워있는 나에게 vital sign결과를 보고했다. 그리고는 쉬지 않고 떠들어댔는데, 한국을 간다는 사실이 너무 설렌다며 끊임없이 질문을 해댔다.

"서울은 어떤 곳이냐? 한국은 처음 가본다. 너무 설렌다. 2박 3일 동안 어디를 가보면 좋으냐?" 등등.

앉아있을 힘도 없는 자꾸만 눈이 감기는데, 그의 질문은 쉬질 않았다. 그의 설렘을 방해하기 싫어 최대한 알려주었는데 그것도 내가 가본 곳 위주의 정보였다.  평생 타볼까 말까 한 비즈니스석 비행이 아픈 바람에, 기내식도 물리고, 그저 잠만 자다 끝나버렸다.  


드디어 인천 공항 도착.


대기해 있던 129(사설구급차)를 타고 신촌 세브란스병원 응급실로 실려갔다.

임기 2년 중에 1년 조금 넘는 시간을 카메룬에 살면서 고국의 냄새와 풍경이 그리웠었지. 떠나기 전엔 몰랐다.

대한민국의 냄새, 고향의 냄새 말이다.

아파서 후송되어 돌아왔지만, 역시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이 나라가 말을 하는 것도 아닐 텐데, 분명 바깥 풍경들이 나에게 말을 거는 것 같았다.

'고생했어. 좀 쉬어가.'


정신이 하나도 없는 시장통, 전쟁통 같은 사람 살리는 응급실이다.

나를 stretcher car에 눕혀두고 프랑스인 간호사는 프랑스어 반 어설픈 영어 반으로 응급실 주치의에게 검사결과지 진단서 등을 인계하였다. 너무 기운이 없어 제대로 쳐다볼 수는 없었지만 인계를 받는 그가 매우 당황해하는 건 보였다. 심각해지는 응급실 주치의에 반해 미소를 잔뜩 머금었던 그 프랑스인 간호사는 인계를 주고는 바람처럼 사라져 버렸다.


그새 잠들었던 것 같은데, 응급실 한 자리 커튼이 쳐진 구석에 내가 누워 있었고 사람들이 침상을 둘러싸고 서 있었다. 두꺼운 내 기록지를 들고 있던 1년 차가 2년 차에게 2년 차가 3년 차에게 그리고 4년 차가 진료과 교수님에게 순차적으로 내 상태와 함께 인계내용을 설명을 했는데, 결국 진단명과 관련된 과(감염내과, 내과, 소화기 내과)가 한 번씩 몰려내려와 나를 보고 가는 것이었다.


눈을 감고 있었으니 내가 자는 줄 알았을 것이다.

" 난 아프리카 환자는 처음인데, 누구 아프리카 말하는 사람 있어?"

" 아까 그 외국인이 설명하던데,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들었어요. 영어는 아닌 거 같은데."

" 아하 큰일 났네, 이거 기록지도 영어가 아니잖아. 아프리카 말하는 사람 누구 좀 찾아봐."


피부는 새까맣고 옷차림도 카메룬 건기 먼지 잔뜩 묻혀온 운동복 바지에 늘어진 면티셔츠.

소지품이라고는 여권, 현지에서 쓰던 핸드폰 그리고 지갑이 전부였으니.

현지인 버금가는 모습이니 그들 중 아무도 내가 한국인이라고 짐작 못할 수밖에.


너무 말해주고 싶은데, 말할 기운이 너무 없었다. 겨우 손을 들었다.

"저... 한국인이에요."

"어우 깜짝이야."

깜짝 놀라더니 자기들이 내 주위에 서서 했던 말이 창피했는가 다행이네요."를 연발하며 총총총 사라졌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감염내과 병실로 나는 입원하게 되었다.


신촌 세브란스 본관은 신축이었는데, 고급 호텔 같은 로비와 깔끔한 병실 그리고 편안한 분위기가 참 좋았다.

6층 병동에서 바라다보이는 신촌 그리고 저 멀리까지의 풍경이 분명 그리웠던 한국이었지만, 왠지 실감이 안 났다. 바푸삼에 있어야 내가 어느새 이곳에 있다니, 수액이 주렁주렁 달리고 절대안정 푯말이 걸려있다.


R/O) Gastric cancer

가진단이 위암?!

내가?




  


매거진의 이전글 진단명 'scabies'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