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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궁이 Jan 24. 2024

그래도 난 카메루니안

T'en vas pas


조용하다 못해 고요한 내시경 검사실 앞 의자에 환자복을 입고 링거 폴대를 붙잡은 채 앉아있었다.

외래 환자들이 모두 빠져나간 후 병원 공기는 쌀쌀했다.

한국은 추석 무렵 완연한 가을 날씨지만, 실려올 때 반팔 말고는 옷가지를 챙겨 오지 못했다. 


그래서 떨리는 건지, 생전 처음 하는 내시경이 무서워 떨리는 건지 알 수 없다. 

물약을 마시라 하니 마시고, 

팔뚝에 정맥주사를 하나 꽂고 검사실 침대에 올라 누웠다. 

플라스틱 마우스가드를 입에 무니,

"검사 시작합니다"하는 말을 들은 것까지 기억난다. 


눈을 떠보니 천장에 사람이 붙은 건지 사람에게 천장이 내려앉은 건지 어지러웠다. 

다 끝났다고? 이렇게 빨리? 간호사는 헤롱거리는 나를 깨우고 앉히더니 조금 있다가 병실로 올라가라 했다. 

짜증 나게도 휘청거리는 나는 정말 환자 같았다. 


한 달도 안 되는 사이에 말라리아에서 장티푸스가 되더니 7kg 이상의 체중감소, 식욕부진, 구토와 설사, 미열.

가능성은 매우 낮지만,  위암은 아닐 것이다. 가족력이 없으니....


주치의 이정명 선생은 다른 건 잡혀가는 데 지속되는 원인 모를  열 때문에 늘 내 앞에서 머리를 쥐어뜯었다. 

매일 아침 한 사발씩 뽑아가는 피는 대체 어디에 쓰는지, 검사결과는 특별한 진단명이 나오지 않나 보다. 

범인을 못 찾고 있을 뿐 검사수치가 그다지 나쁜 의견은 없다는 것이니 얼마나 다행인가.

입원 일주일째 37.8도에서 38도의 열이 내려가지 않아서 확진을 아직 못하는 지금 

내 진단명은 Unknown fever로 바뀌었다. 

현지에서 그동안 걸린 풍토병, 에이즈 환자 바늘에 찔렸던 일, 오기 전에 말라리아와 장티푸스 치료제를 몇 번 투약하고 왔다는 게 전부인데, 내 몸은 답을 얼른 알려주지 않았다. 


필수아미노산부터 지방 그리고 TPN이라는 기아상태의 환자에게 주는 영양제를 주렁주렁 걸린 수액, 시커멓게 탄 몰골에 현지음식으로 찌운 살이 다 빠져서 나름 야윈 내 모습. 

연락도 제대로 못하고 오느라, 병원에서는 걱정할 텐데 선교사님께 부탁해서 교회 안에 우리 병원 다니는 직원분께 전달을 좀 해달라고 했는데 그게 잘 전달이 되었을지 모르겠다. 

내가 어쩌다 여기 이렇게 와 있지? 패잔병이 된 기분이었다. 


벌써 입원 1주가 지나 2주 차이다. 

잠을 못 자고 산 것도 아닌데 하루종일 자고 또 잔다. 

아프리카에서 왔다 하니 좀 쉬라고 수면제를 주는 건가?

시차 적응 중인가? 

잠은 원 없이 자는 중이다. 


오늘은 아침 회진 때 병동 수간호사 선생님이 내가 있는 병실에 들어오시더니, 다른 환자분들께 광고하듯 큰 목소리로 나를 소개하셨다. 여기 이분은 간호사인데, 아프리카에서 살다가 아파서 잠시 오신 분이라고 정말 대단하시다고 응원과 격려를 많이 해달라고 하시며 나를 안아주고 가셨다. 

이렇게 입원해 있는 것이 마음이 편치 않은데, 응원을 해주시니 그동안 쌓인 눈물이 터질 것 같았다. 


부모님께는 건강검진을 받으러 온 거라고, 애써 아무렇지 않게 짧은 통화로 귀국 보고를 했다. 

부모님은 언제 집에 오느냐고 물었고, 검진 이후 국내 훈련을 좀 더 받을 예정이라고 둘러댔다. 퇴원할 때쯤 이제 훈련을 마쳤다고 해야지. 


빨리 퇴원하고 바푸삼으로 가고 싶다. 

우리 병원 사람들과 마을 가면 만나는 친구들이 그립다. 


오늘도 난 바푸삼에서처럼 Elsa의 노랠 듣는다. 

이 노랠 들으면, 카메룬 냄새가 난다. 현지에 있는 것 같다. 


T'en vas p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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