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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궁이 Mar 26. 2023

참새방앗간

자발적 앗싸,  애미의 삶


서울시 D초등학교 아래 카페 Kick Off(가명)는 동네와 어울리지 않게 이국적이다.

워낙 외진 곳에 학교가 있다 보니, 아이들을 등하교하러 나온 엄마들에겐 오다가다 쉬어가기 좋은 참새방앗간이다. 게다가 주인아저씨가 한 번씩 커피콩을 로스팅할 때면 고소한 향이 동네 가득해져 더 방앗간 같다. 

스팀이 빠져나갈 통로가 설비의 문제인지, 환풍기가 약한 건지 카페 공기는 대체적으로 습하고 공기가 답답한 편이지만, 한쪽 벽은 통유리라 하루종일 볕이 들어 고슬고슬 따스한 햇빛과 함께 커피를 즐길 수 있다. 물론 테이블이 그쪽엔 딱 3개뿐이라 등하교시간을 피해서 가야 그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는 점.

뮤직 특히, 콜드플레이를 좋아하는 주인아저씨는 주문이 없으면 인디언 문양이 진하게 프린트된 캠핑의자를 카운터 옆에 꺼내 놓고 모자를 눌러쓴 채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거나, 책을 읽거나, 살짝 졸다가 손님이 나가면 꼬박꼬박 인사를 하시는데, 난 가끔 그것도 부담스러울 때가 있어서 살금살금 나올 때도 있다. 아무튼 여기는 아저씨의 성향이 구석구석 묻어나는 엔틱 한 분위기가 미국 <동네 카페> 같은 곳이다. 


분위기는 딱 내 스타일인데 초등학교 등하교 시 간만 되면 몰려드는 인파*(엄마들)에 순식간에 도깨비시장이다. 콜드플레이가 아무리 목청껏 노래해도 괄괄한 엄마들의 고성에 묻혀 자연 음소거 되는 비참한 일이 매일 일어나는 이곳에서 나는 가끔 커피를 마신다. 


어느 모임을 가도 분위기 메이커 노릇을 하고, 낯가림도 없고 새로운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내가 12년을 지내고 있는 이 동네에서 편한 동네 친구하나 없이 산다는 게 반전이지 않은가? 가끔은 쓸쓸하지만, 이제 나이 들어 그런지 내 삶에서 이런 영역이 있다는 것이 자유롭고 좋다. 엄마들과 친해지려면 첫째 1학년 때부터 모임에 적극적으로 살았어야 했는데, 미국에 다시 돌아갈 것이라, 나그네처럼 모든 짐을 최소화, 관계도 최소화하는 것을 철칙으로 지냈다. 결국 미국은 안 가고 그저 엄마들 사이에서 '자발적 앗싸'가 되어 있다. 


워킹맘 내 삶은 늘 바빴다. 

(8 to 5) 8시간은 계약서에나 쓰여있는 근로시간이고, 사실 12시간은 기본으로 일했으니까. 

재택으로 일하고 있는 회사의 업무 강도나 스트레스가 너무 강해서 다른 여유를 갖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등교시키고 도망치듯 집으로 가고, 납치하듯 애를 하교시켜 집으로 오기 때문에 이 시간에 카페는 물론 동네 시장에도 나를 노출시킨 적이 없다. 이렇게 애가 5학년이 되도록 앗싸가 되었더니 이젠 카페에 앉아 몇 시간을 글을 써도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 웃픈 현실. 


콜드플레이 음악을 즐길 수 없을 바에야 이렇게 혼자가 낫다고 합리화하며 후딱 한 잔 마시고 오후 일을 하러 집으로 들어간다. 하하 호호 웃는 그녀들의 대화에 끼고 싶은 진심을 숨긴 채 쿨하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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