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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궁이 Mar 30. 2023

등마사지와 실종신고

건장한 40대

아빠하고 나하고


삼 남매 중에 둘째, 나는 유독 아빠를 많이 닮았다.

길쭉하며 갸름한 얼굴이지만 미간이 넓고 눈이 긴 편이다. 다비드상처럼 오똑한 코는 언니가 차지했고 내 코의 반은 아빠, 반은 동글동글 엄마코를 닮았다. 그래서인지 어릴 적 자고 있으면 엄마가 항상 내 코를 집게로 집어두려다 들키곤 하셨다. 큼직한 손에 동글납작한 손톱, 그리고 기차 화통을 삶아 먹은 듯한 발성까지 아빠를 닮았다. 아빠는 왕년에 <신필름 영화녹음실>에서 성우 겸 아나운서를 하셨기 때문에 목소리가 참 좋은데, 그 유전자 역시 안타깝게도 언니에게 몰빵 되었다. 나는 그냥 목소리 큰 것만......(유전자 몰빵 시스템에 대한 연구가 시급하다)

무엇보다 정의로운 성격으로 부당한 것에 항거하는 정신 및 남을 위해 총대 메고 헌신하는 혈기(일명, 오지랖)는 셋 중에 나에게 몰빵 되었다. 그런 바람에 아빠한테 대들며 할 말을 꼬박꼬박 했던 기억과 증언이 많다.

삼 남매 중에 내가 제일 못생겼다며 "너네 엄마 찾아가라"라고 동네 삼촌들이 놀리는데도, 아니라고 하지 않는 아빠 때문에 그게 진짠 줄 알고 유치원 가방에 짐을 싸고 집을 나간다고 했다가 혼나고, 수요예배 가시는 날이면 "왜 맨날 나만 설거지시키냐"라고 집을 나가버린다고 했다가 혼나고, 잠옷 입고 나와서 숨바꼭질하다 걸려서 혼나면 나는 어린이니까 놀고 싶은 게 당연하다고 대들어 혼나던 나였다.

엄마는 특히 이 이야기할 때마다 깔깔 웃으셨는데, 80년대를 대표하는 부부싸움(유형 넘버 1) '밥상 엎기'가 우리 집에도 일어났던 날 언니, 동생은 무서워 우는데, 나는 숟가락을 상 위에 탁 내려놓고 따졌다고 한다. 아빠가 잘못한 거 같은데, 밥상을 왜 엎느냐고.


어린 시절부터 아빠는 나에게 말하셨다. "우리 복순이는 파출소장 해브러라!"


잊히지 않는 어릴 적 순간들이 많지만, 그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아빠와의 그 순간을 빼놓을 수 없다. 내 나이 아홉 살, 아직 오줌싸개였는데, 그날도 여지없이 실수를 하고 말았다. 지금 생각하면 엄마의 신경질이 무조건 이해되지만, 당시 나에겐 웃음끼 싹가신 표정으로 내 엉덩이를 살짝 때리듯이 씻겨주는 엄마는 정말 무서웠다. 씻었는데 맞은 거 같은 오묘한 기분으로 혹시 아빠한테도 혼날까 하며 방에 들어갔는데, 아빠가 환하게 웃으며 이불 아래 따뜻하게 덥혀놓은 내의를 꺼내 입혀주셨다.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며 괜찮다고 얼른 들어와 자라고 이불을 덮어주셨다. 나는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물론 이불 빨래와 나머지 처리를 엄마가 다 하시긴 했지만, 아빠의 사랑과 격려는 향후 내 삶에 든든한 밑거름이 되었다.

내가 실수를 해도 이렇게 사랑받는 존재구나 하는 강렬한 믿음!!


울 아빠 최고!!!




등마사지와 실종된 딸


최고의 아빠가 70세에 들어선 어느 날, 우연히 소변 검사를 했다가 전립선 암이 의심된다는 말을 들었다.


나의 아빠로 말할 것 같으면,

테니스 코치에 태권도 심사위원 등 생활체육회 회장을 역임하고 국제 와이즈맨 회장에 전국체전 이사까지 하신 체육인이시고, 최근까지 정당 사무국장을 하시다 퇴직하셨다. 할머니, 할아버지 두 분 모두 질병하나 없이 90세까지 지내시다 집에서 임종을 치른 건강 하나는 자부하는 집안이며, 그중에서 감기도 잘 안 걸리는 장남 아빠는 일명 깡다구 최고이시다.

그런 아빠가 전립선 암이 의심된다는 소견을 듣고 적잖이 놀라신 듯하다. 신속하게 병원을 알아보았고, 세브란스 진료를 위해 두 분이 함께 서울로 오셨다. 내일 진료일을 앞두고 긴장도 되고 걱정도 많이 되시겠지만 워낙 긍정적인 아빠는 종일 '감사'를 연발하며 콧노래를 흥얼거리신다. 우연히 발견된 것에 감사, 딸이 서울에 살아서 세브란스 같은 큰 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음에 감사, 지금 그 어떤 자각증상도 없다는 것에 감사, 밥이 맛있게 넘어간다는 것에 감사...... 넘치는 감사를 연발하시며 불안을 달래시는 것도 같았지만, 역시 우리 아빠는 긍정의 왕이다.


아빠 병원진료를 위해 휴가를 내서 오늘은 좀 늦게 까지 일을 하느라, 허리가 너무 아팠다. 동네에서 가끔 가는 피부관리숍에 '등마사지' 예약을 했다. 나보다 한 참 언니인 것을 알지만, 늘 '언니' 하시는 호칭이 어색한 피부숍 원장은 언제나처럼 친절하게 마지막 손님으로 내 자리를 예약해 주며 시원하게 해 줄 테니 일 끝나고 어서 오라 하였다. 8시 20분에 랩탑을 덮고 부리나케 집을 나오면서, "엄마 나 허리 마사지 좀 받고 올게. 먼저 주무세요." 했다. 열심히 달려서 9시 전에 족욕 및 준비하고 9시부터 본격 마사지를 받았다. 원장님은 경력이 30년 차라서 그런지 손악력이 엄청 센데도 안 아프고 시원하게 마사지를 참 잘해주신다. 해부학적인 근육 구조까지 설명하면서 앉아있는 자세도 지적하면서 적절한 충고와 함께 뭉쳐진 근육을 시원하게 풀어준다. 마사지를 받고 나면 순환이 잘 돼서 그런지 신기하게 피부가 밝아진다. 운동은 거의 안 하고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서 일하면 혈액과 림프순환이 안돼서 더 몸이 굳고 피곤해진다며 자주 와서 마사지를 받으라고 한다. 그렇게 1시간 40여분 마사지를 받고 따뜻한 차를 한 잔 얻어마시고 있었다.

그제야 휴대폰을 켰는데, 엥? 45통? 이게 무슨 번호지? 하고 있는데 같은 번호에서 또 전화가 온다. 보이스피싱일까 봐 모르는 번호는 받지 않지만, 이건 무슨 일이 있어도 단단히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여보세요?"

"아! 이제 받으시네요. 000님 되십니까?"

"네, 맞는데요? 무슨 일이시죠?"

"000 씨, 아버지께서 애타게 찾으십니다."

"네에? 저를 애타게 찾으신다고요? 우리 아빠한테 무슨 일이 생겼나요? 어딘가요?"

"아니 아버지께서 따님이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실종신고 하셨습니다. 어디 계십니까?"

"네에?실종신고요?! 저는 지금 집 근처 마사지샵에 있는데요!" 하며 마사지샵 창밖을 내다보았다.


길건너에 경찰차가 세워져 있고, 경찰 두 분이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다. 나는 통화를 하면서 문밖을 나서 경찰차 가까이 다가갔다. 한 분이 나를 보시더니, 000시지요? 하며 안도의 눈빛으로 웃으신다. 나는 신고하면서 내 사진까지 전송한 건가 의심했지만 물어볼 수는 없었다. 나는 저 앞 마사지샵에서 마사지를 받고 있었고, 엄마께 말씀을 드리고 나왔노라고 설명을 드렸다. 바쁘실 텐데 번거롭게 해 드려 죄송하다며 마사지샵 원장님이 늦어서 집까지 차로 태워다 준다고 하셔서 그 차로 지금 바로 집에 가겠노라고.

"실종신고가 들어오면 저희가 찾고 반드시 인도해야 합니다. 뒤에 타시죠."

건너편에서 무슨 일인지 놀란 눈으로 보고 있는 원장님께 먼저 가겠다고 인사하고 경찰차 뒷좌석에 올라탔다. 운전석과 뒷자리 사이에 철조망 같은 것으로 막혀있고, 영화에서 본 그런 경찰차? 내가 경찰차에 타다니! 뭔가 있어 보였다. 뒷좌석엔 손잡이가 없다더니 정말 없구나, 이것저것 차 안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금세 정신이 들었다. 집에서 10분 거리, 이 가까운 거리를 경찰차로 귀가하는 이 순간이 너무 민망하고 창피했다. 민중의 지팡이들께서 더 중요한 일을 하셔야 할 시간인데 민폐를 끼치는 것 같았다.

"여보세요. 네네~어르신 지금 따님 모시고 집으로 가고 있으니까요 걱정하지 마십시요이."

조수석에 앉아 넉살 좋게 농담을 하시던 경관님은 충청도 사투리로 아빠께 현재 상황을 알려주셨다. 운전석에 각을 잡고 앉은 젊은 분께 운전지적을 하시며 잔소리가 좀 많으셨는데, 그 잔소리는 나에게로 이어져 "다음부터는 부모님 걱정하시지 않게 잘 설명드리고 나오세요. 아무리 40대여도 여성 실종이 종종 있는데,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잉" 하신다. "네네, 죄송합니다. 수고 많으십니다" 하며 꾸벅 인사를 했다.


집 앞에 다 왔다. 11시가 넘어가는 시간에 아빠와 첫째, 그리고 엄마까지 모두 나와 서서 목이 길게 빠진 채로 경찰차를 반갑게 맞이한다. 뒷문을 열어주셔서 내렸는데, 나를 보고 긴장이 풀려 이제야 웃을랑 말랑 하는 아빠 표정이 너무 웃겨서 "와하하하하" 웃고 말았다. 아빠는 경관님들께 음료수라도 사 드시라고 얼마를 찔러주시려고 하시다가 충청도 경관님이 "아유~큰일 나유~!! 안됩니다. 어르신 마음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하시고 얼른 자리를 뜨셨다. 첫째는 내 목에 매달려 "엄마~~,돌아와서 다행이야. 납치당한 줄 알았어." 하며 한참을 꼭 안아주었다. 크게 잘못한 건 없는데, 뭔가 큰 잘못을 하고 돌아온 것 같은 이 분위기를 어쩌면 좋으랴.....


집에 들어오신 아빠는 식탁에 앉아, "아이고 이제 좀 살겠네. 아이 내일 병원 못 가는 줄 알았다." 하시며 단숨에 물 한 잔을 들이켜고 단팥빵을 뜯어 드시기 시작했다.

"아니, 엄마 나 마사지받으러 간다고 했는데, 이게 무슨 일이야? 이게 뭐냐고오" 웃음이 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말이다. 난 괜찮을 거시다 했는데, 네 아빠가 너무 늦었는데 안 온다고 사방군데 찾으러 다니다가 신고한 거야."엄마 말씀에 아빠가 "하하하" 웃으신다. 이제야 긴장이 풀리신 것 같다.  

"00는 학교 가야 하는데, 자는 애를 깨워서 엄마 마사지받으러 어디로 가느냐고 묻고, 할아버지랑 같이 찾으러 갔다 오자고 깨워서 동네를 다 뒤지고 다녔단다. 유난을 떨어요." 엄마도 말은 그렇게 하시면서도 시간이 갈수록 걱정이 되더란다.


그러자 아빠가,

"네가 8시 좀 넘어서 나갔으니까, 아무리 오래 받아도 1시간이면 끝날 텐데 10시가 넘어도 안 오고 하니까 걱정돼서 그랬지. 00가 엄마가 가는 지압안마 안다고 해서 거기 가봤지, 물리치료받는 병원 가봤지. 아이 그 똑순이가 여기저기 엄마가 다니는 곳을 잘 알고 있더라니까." 하시며 시간순으로 설명을 하셨다.


"아빠, 서울에서 11시는 대낮이여 대낮. 내가 미쳐. 그리고 이렇게 등치 크고 야무진 여자를 누가 잡아간다고."

"안 그래도 신고를 하니까 인상착의를 물어보더라. 키는 170이 넘고, 딱 봐도 건장한 40대 여성이라고 했지.염려마시라고 금방 찾는다고 하시더라 참말로 고맙더라"

"와하하하하하하하하, 진짜? 진짜 그렇게 신고를 했다고? 건장하다고? 아니 신고를 하려면 건장한은 뺐어야지 아빠아~~~~~~~~~~~~~~~그래서 그 경관님이 날 보자마자 확신의 눈으로 000 씨죠? 했구나!!"


똑순이 첫째는 다시 들어가 자고, 긴장이 풀린 엄마,아빠는 찾고나서 생각하니 너무 웃겼는지, 우리 셋은 오밤중에 배가 아프도록 웃었다.

건장한 40대 딸을 신고한 시골사람 우리 아빠, 내일 병원 진료 못 가게 될까 봐 그것도 걱정이 많이 되었다며 든든한 단팥빵 하나 다 드시고, 평안히 잠자리에 드셨다.


그냥 40대라고 하지... 건장한은 빼지.... 아빠 너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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