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그렇더라~
3억대 1 경쟁률을 뚫고 우렁차게 태어나서부터
돌 무렵 직립보행을 시작으로 세상을 탐험하고
초등학교 입학해서 중, 고등학교를 거쳐
대입 완료 후 취업까지
인생의 큼직한 과업의 산을 넘고 넘어
나이 스물아홉에 접어들 즈음부턴가
약속이나 한 것처럼 나를 보는 어른들마다
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
그러니 해보고 후회하는 게 낫지 않겠냐
보통의 사람들이 해왔고, 하고 있고 , 할 것이고
그러니 나도 결혼이라는 것은 해야 한다고
한 치의 의심 없이 살았던 것 같다.
생각해 보면
누구나 다 한다는 그 '결혼'은
나중에 커서 뭐가 되겠다는 장래희망만큼 막연한 것이었는데,
그 어떤 인생의 과업보다 준비 하나 없이 뛰어들고 말았다.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도 잘 모르면서
인생을 같이 살아갈 배우자를 찾는 것은
고민 한번 안 해본 나에게는 너무 어려운 것이었다.
누가 가르친 적도
강요한 적도 없는
알 수 없는 무의식이 지키고 있던 '순결' 정신이 아니었다면
호기심 많고 새로운 것 좋아하는 나는 분명
수백 명의 남자를 사귀고 만나봤을 것이다.
거창하고 대단한 뜻은 아니었고
그저 내 인생에서 의미 있는 남자는 한 명, 결혼할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뿐.
모든 과정을 생략하고 지금의 현실만 이야기하기엔
억울한 점이 없지 않다.
처음엔 이 결혼을 위한 시작도 핑크빛이었다.
14년 동안
반복되는 싸움과 냉전, 분열 그리고 거기서 오는 피로감과 인생에 대한 후회들이
이제는 크게 싸우지 않아도
세월 짙은 감정의 찌꺼기가 되어
봄바람에도 재를 날린다.
언제나 그는, 나는 관심 없는 이야기를 하고
언제나 나도, 그는 관심 없을 이야기를 쏟아놓는다.
서로 이야기할 뿐 듣지 않는다.
매년 푸르른 녹음 짙은 봄이 오면
그 푸르름과 대비되는 내 마음색을 들여다본다.
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
안 하고 후회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아니 난 그것을 강추하련다.
어차피
'인생은 연기 속에 재를 남기고 말없이 사라지는 모닥불 같은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