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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궁이 Apr 24. 2024

아홉 살 암산의 비밀

소싯적에 미국, 캐나다에서 유학을 경험해서 그렇다. 근데, 한국에서 살려면 그건 불가능해. 

교육에 대한 내 소신을 밝히면 늘 듣는 소리다.

 

공부가 아직 뭔지도 모르는 애들한테, 부모가 세운 일방적인 공부계획에 따라 아이를 이리저리 끌고 다니는 작금의 한국 '교육'이라는 것은 때론 폭력처럼 보이기도 하고, 꾸역꾸역 그 뜻을 따르는 우리나라 아이들이  안쓰럽기 그지없다.


그래 나도 안다. 현실은 SKY여야만 이 나라에서 뭘 하든 된다는 것도. 

물론, 우리 아이들과 비슷한 또래를 키우는 부모들이 입을 모아 이야기하는 것은 너무 공감된다. 

20세기에나 개천에 용이 났지, 지금 시대는 사교육 여부에 따른 실력차이가 너무 크다는 것. 

공교육은 사교육을 근절하자는 모순된 슬로건을 가지고 어느 정도 사교육에 기대어 직무유기 중이라는 것도. 실력이 뒤처지는 아이들은 사교육으로 보충시키지 않은 부모의 책임이 되는 현실도.


고로, 부모가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 자녀의 포트폴리오를 채우는데 기여했느냐에 따라 용은 만들어지는 것이다. (굳이 따지자면, 고작 70억 인구 중 5천만 남짓 한국사회에서의 용이 되려고...)


공부는 인생을 살아가는데 중요한 도구,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의 주체인 아이가 무엇하기를 원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세상은 변하고 있고 변할 것이다. 


길들여진 공부 습관에 따라 습득한 지식을 줄줄이 내뱉는 인간이 아니라, 

좀 더 나은 것을 생각해 낼 줄 알고, 더 나아지도록 이 세상과 사회를 걱정할 줄 아는 인간이 되기 위해 공부하는 쪽으로 변해라... 좀 변해라... 


이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넓고 크고 깊다. 

아름답고 신비롭고 광대하며

다양하고 끝이 없는 

때론 재미있고 신나며 열광하고

슬픔과 분노도 가득하며

고독하고 외롭다가도 

함께 행복한

한 번뿐인 이 삶은 '공부'에만 매여서는 다 알 수가 없다. 

보고 들을 수많은 새로운 것들이 펼쳐져 있고, 이 넓은 세상에 정해진 인생의 답은 없다. 


우리나라의 SKY는 

학창 시절의 하늘을 다 뺏아버린 무시무시한 SKY다. 

우리나라의 SKY는 

한국에서 어떤 삶을 살든 미래가 보장된 보증수표다. 졸업하지 않고 입학까지만 성공해도 

고액연봉을 누리는 게 가능하다. 그게 한국에서만 그렇다. 


난 우리 아이들이 이 좁은 나라, 이 좁은 사회에 갇혀 있지 않기를 원한다.






이제 2학년이 되는 둘째 녀석은 꽤 수학적 사고가 뛰어나다. 선입견 없이 5학년 언니의 수학도 해결의 실마리를 생각해 낸 적이 있을 만큼 기특하다. 첫째와 다른 둘째를 보며 그래 공부도 재능이구나 싶다. 


신기할 정도로 둘째는 초등입학 앞두고도 입학한 후에도 뭘 가르친 적이 없는데, 

받아쓰기도 다 맞아오고 수학도 늘 100점이라 정말 신기했다. 


어느 날인가

두 자릿수 +한 자릿수 덧셈을 할 때였는데, 

문제를 보고 난 둘째는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렇게 한참 내 얼굴을 바라보고 고개를 푹 숙이곤 했는데, 

조금 지나서 고개를 번쩍 들고 암산한 결과를 쓱쓱 써냈는데, '오~ 두 자릿수도 잘하네'

참 기특했다. 


암산을 가르쳐준 적이 없는데, 

머릿속으로 계산을 저렇게 해내다니 하며 내가 천재를 낳았나 감탄한 적도 있다. 


암튼 이렇게 기특한 둘째의 암산은 그 뒤로도 계속되었는데 

어느 날이었다. 

옆에 앉아 문제 풀이를 봐주고 있던 내 다리를 포개지 말고 바닥에 내려두라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수를 세는 거다. 

자기 손발가락을 다 세고, 모자라 엄마의 손가락 발가락까지 수를 세어 덧셈 중이었던 것이다. 


앗! 그래... 한참 나를 바라본 게 암산이 아니고 

턱에 괸 내 손가락을 보며 수를 센 거였고, 

고개를 푹 숙여 암산을 하는 게 아니고, 

고개 숙여 책상아래 제 발가락 내 발가락을 센 것이었다. 


아홉 살 

암산의 비밀.....

창의적이라고 생각하자. 기특한 것 창의적이네. 


신이시여, 그때 내 눈을 좀 가려주시지 그러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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