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TJ 엄마에게 육아는 시스템이 아니라 사건이었다

여전히 나는 ISTJ 엄마이고, 여전히 정리와 구조를 좋아한다.

by 완성되지않은어른

아이를 낳기 전까지 나는 대부분의 일을 시스템으로 해결해왔다.


문제에는 원인이 있고, 원인을 찾으면 해결책이 나온다고 믿었다.

육아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수유 간격, 수면 시간, 놀이 루틴만 잘 정리하면 아이도, 나도 안정될 수 있을 거라고. 그래서 나는 노트에 시간표를 적고, 체크리스트를 만들며 엄마가 될 준비를 했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난 첫날부터 그 믿음은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분명 책에서 본 대로 했는데 아이는 울었다.

이유를 분석하려 애썼지만 울음에는 항상 새로운 변수가 붙어 있었다.

배가 고픈 것 같아 먹였더니 졸려 했고, 재운 줄 알았더니 다시 울었다.

계획표는 그대로였지만 현실은 한 줄도 맞지 않았다.


나는 당황했다.


시스템이 통하지 않는 상황 앞에서, 그동안 내가 의지해온 방식이 무력해지는 기분이었다.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 앞에 서 있으면 마음부터 조급해졌다.

‘왜 안 되지?’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육아는 문제 해결이 아니라, 문제와 함께 버티는 일이라는 걸 그때는 몰랐다.


둘째가 태어나면 조금은 나아질 줄 알았다.

경험이라는 데이터가 쌓였으니, 이번에는 더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남매 육아는 또 다른 세계였다.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났지만 아이들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반응했다.

첫째에게 효과가 있던 방법은 둘째에게 통하지 않았고, 어제의 성공은 오늘의 실패가 되었다.


특히 힘들었던 건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늘 다음 단계를 생각하며 움직이는 사람인데, 육아에서는 ‘다음’이 거의 의미가 없었다.

아이들은 지금 이 순간의 감정으로 행동했고, 그 감정은 순식간에 바뀌었다.

나는 자꾸만 뒤처지는 사람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스스로를 많이 탓했다.

더 공부하지 못해서, 더 철저하지 못해서 이런 결과가 나온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알게 되었다. 이건 내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육아라는 영역 자체의 특성이라는 것을. 육아에는 매뉴얼이 없고, 정답도 없었다.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육아는 시스템이 아니라 사건의 연속이라는 것을. 계획할 수 없는 일들이 계속해서 발생하고, 그때마다 즉각적인 반응이 필요하다.

사건은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고, 다음 사건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나는 그 사이에서 아이를 안고, 울음을 달래며, 하루를 넘긴다.


이 깨달음 이후로 나는 조금 달라졌다.

계획을 세우지 않게 된 건 아니다.

다만 계획이 무너졌을 때 나 자신을 덜 비난하게 되었다.

오늘의 실패를 내일의 교훈으로 정리하지 못하는 날도 있다는 걸 인정하게 되었다.


여전히 나는 ISTJ 엄마이고, 여전히 정리와 구조를 좋아한다.


하지만 육아 앞에서는 그 성향을 잠시 내려놓는 법을 배우고 있다.

모든 것을 이해하려 애쓰는 대신, 이해되지 않는 상태로도 하루를 살아내는 연습을 한다.

육아는 나를 더 효율적인 사람으로 만들지 않았다.


대신 더 유연한 사람이 되게 했다.

시스템을 믿던 내가 사건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어가는 중이다.

그리고 그 변화는 생각보다 느리지만, 분명 나를 조금 다른 엄마로 만들고 있다.



“이 글은 ‘부모가 되며 버린 것들에 대하여’ 연재의 일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