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이렇게까지 계획적인 사람이 되었을까

나는 아이를 키우며, 처음으로 계획 없는 나를 연습하고 있다.

by 완성되지않은어른

나는 계획이 틀어지면 마음부터 불안해지는 사람이다.


약속 시간보다 10분 먼저 도착하지 못하면 하루가 어긋난 기분이 들고,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생기면 생각보다 오래 멍해진다.

사람들은 이런 나를 두고 ‘ISTJ답다’고 말하지만, 사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이렇게 단단한 사람이었던 건 아니다.

어릴 적의 나는 삼자매 중 조용한 여느 한국의 일반적인 가정의 k-장녀였다.


언제나 말을 아꼈고, 시키지 않아도 할 일을 미리 해두는 쪽이었다.

어른들은 나를 두고 “얌전하다”, “믿음직하다”고 말했지만, 그 말들 뒤에는 늘 같은 기대가 따라붙었다.


알아서 잘할 것, 문제를 만들지 않을 것,

어른을 곤란하게 하지 않을 것.


나는 그 기대를 어기지 않기 위해 꽤 오래 스스로를 단속하며 자랐다.

집에서는 첫째였지만, 누군가의 기분을 살피는 일이 자연스러웠다.

상황을 파악하고, 먼저 움직이고, 미리 준비하면 큰 소리는 나지 않았다.

계획은 안전장치였고, 예측은 나를 보호하는 방법이었다.

실수하지 않기 위해 더 꼼꼼해졌고,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감정도 정리해두는 법을 배웠다.

그렇게 나는 ‘준비된 아이’가 되었고, 동시에 쉽게 긴장하는 사람이 되었다.

시간이 지나고, 사람들은 나를 책임감 있는 어른이라고 불렀다.

계획표를 잘 짜고, 약속을 지키고, 맡은 일을 끝까지 해내는 사람.

한창 유행했던 MBTI 검사를 했을 때 ISTJ라는 결과가 나왔을 때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았다.


나는 원칙을 믿었고, 정리는 곧 안정이었다.


계획이 있는 삶은 나를 흔들리지 않게 붙잡아 주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남매를...!!!!


이것또한 나의 외동만 키울꺼야!! 의 계획과는 다른 전개였다.


육아를 시작하며 나는 처음으로 ‘계획이 통하지 않는 세계’에 들어섰다.

수유 시간표, 수면 루틴, 하루 일과를 아무리 정교하게 짜도 아이들은 매번 다른 선택을 했다.

어제 통했던 방법은 오늘 무용지물이었고, 공들여 세운 계획은 울음 한 번에 무너졌다.

이유를 분석해도 해결되지 않는 날들이 이어졌다.

특히 남매를 키우면서 나는 더 자주 흔들렸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자라는데도 아이들은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다.

한 아이에게 맞는 방법이 다른 아이에게는 상처가 되기도 했다.

공평하려 애썼지만, 공평은 늘 이상적인 단어에 가까웠다.

계획은 있었지만, 적용할 수 없는 순간이 훨씬 많았다.

그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묻곤 했다.


‘왜 이렇게까지 불안해질까.’ 그리고 답은 늘 같았다.

계획이 무너지면, 내가 믿어온 방식이 함께 흔들리기 때문이었다.

나는 아이를 키우며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내가 원칙을 사랑한 이유는 효율이 아니라 안전이었음을.

요즘의 나는 여전히 계획을 세운다.


다만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 계획 옆에 여백을 남겨둔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울고 떼쓰고 말을 안들어도, 일정이 틀어져도, 오늘이 어제와 달라도 괜찮다고 적어둔다.

계획 없는 하루를 실패로 정의하지 않으려 애쓴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나를 무너뜨리는 대신, 조금 느슨하게 만들고 있다.


단단함만이 성장은 아니라는 것, 예측하지 못한 하루에도 의미는 남는다는 것을 배우는 중이다.

나는 여전히 ISTJ이고, 여전히 정리를 좋아한다.

하지만 이제는 계획이 틀어지는 날에도 나 자신을 다그치지 않는 연습을 하고 있다.

남매를 키우며 나는 아이들뿐 아니라 나 자신도 함께 키우고 있다.


준비된 사람으로 살아온 시간만큼, 준비되지 않은 나를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면서.

작가의 이전글ISTJ 엄마에게 육아는 시스템이 아니라 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