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3
오랜 기간 관계에 마침표를 찍은 도구는 '말'입니다. 마지막 한마디는 지울 수 없는 후회의 도화선입니다. 초등학교 시절 배려 없는 말로 친구에게 상처를 입힌 경험이 있습니다. 한쪽 다리가 불편한 친구였는데 그림 그리는 취미가 같아 금방 친해졌습니다. 집도 가까워 함께 만화방을 드나들었고 말하기 힘든 비밀도 털어놓곤 했습니다. 하루는 친구와 하교 중 불량배를 만났습니다. 몇 마디 협박에 가지고 있던 용돈을 모두 빼앗겼습니다. 돈을 잃었다는 슬픔을 위안하고자 친구에게 '도망칠 수 있었지만 뛰지 못하는 너를 위해 함께 남았다'라고 핑계를 댔습니다. 그 말을 들은 친구는 화를 내며 혼자 집으로 가버렸습니다. 우정을 과시하려고 꺼낸 말이었는데 의도치 않은 실수가 친구에게 상처를 입혔습니다. 곧바로 사과했지만 받아주지 않았고 학기가 끝날 때쯤 갑작스러운 전학 소식이 들렸습니다. 인사도 못하고 보낸 친구의 책상을 보며 처음으로 말의 무게를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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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중학교 시절 고운 말을 쓴 것은 아닙니다. 질풍노도의 시기 욕을 하면 박수를 받고 인기가 생기는 이상한 날들을 보냈습니다. 약자로 언어폭력을 당하면서 누군가에게는 강자로 보이기 위해 당한 것을 되풀이했습니다. 비겁한 행동이었고 해선 안될 말이었습니다. 공격이나 방어의 말 밖에 할 줄 몰랐고 고칠 용기도 없었습니다. 상처가 될 줄 알면서 쉽게 나쁜 말을 뱉었습니다. 다행히 서로의 잘못을 보듬어준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각자의 방식으로 의젓해졌고 덕분에 장점을 닮을 수 있었습니다. 충고를 해주던 친구의 선의가 없었다면 지금보다 한참 모자란 어른이 되었을지 모릅니다. 평범한 사춘기의 추억입니다. 하지만 아쉬움이 남습니다. 신중히 언어를 구사했더라면 좋은 추억을 공유한 친구들이 몇 명은 더 남았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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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말은 자신을 입증하는 도구입니다. 언변이 뛰어날수록 주목받습니다. 말에 쌓인 신뢰에 따라 같은 상황에도 다른 결과가 벌어집니다. 자연스럽게 경쟁하듯 말을 쏟아내고 동료를 깎아내리거나 주장을 관철시키려 합니다. 끊임없이 자신을 피력해야 기회를 얻는 사회 속 당연한 과정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온전하지 못한 말솜씨는 인생 곳곳에 박혀 소중한 관계를 갉아먹습니다. 하루 여러 번 저지르듯 던진 말의 모양새에 부끄러워집니다. 분위기를 주도하고자 뱉은 농담은 상대의 입을 통해야 잘못임을 깨닫습니다. 흩어진다고 착각했지만 말은 오래도록 남아서 가장 이해받기 어려운 잘못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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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양이 늘어날수록 지켜야 할 무게가 무거워집니다. 후회 가득한 장면들은 모두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한 순간들입니다. 스스로 책임질 만큼 말하기를 기본 삼으려 합니다. 무게를 느낀다는 작은 기준은 누군가와 깊게 연결되거나 관계를 회복하는 요소가 될 것입니다. 말하는 모습은 내면의 생김새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어쩌면 지금까지 내면에 거울 한번 비추지 않고 살았는지 모르겠습니다. 거울 속에는 분명 기억하기 힘든 과거의 시절들이 있을 것입니다. 오늘에야말로 부끄러운 나의 말과 마주합니다. 무게를 헤아리고 비춰보는 작업은 죽을 때까지 계속될 나의 말을 바꿔 놓으리라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