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수용이 곧 사랑이다
*내용 누설과 나름의 해석이 있으니 주의
문명의 발전사를 보면, 놀라운 영감을 받은 천재가 등장하여 활약하는 모습이 나온다. 위대한 과학자, 발명가, 사상가 등 많은 천재들은 예기치 않은 곳에서 영감을 받고 그걸 단서 삼아 큰 업적을 이루어내는 것이다. 아르키메데스는 목욕을 하다 유레카를 외치며 부력의 개념에 눈떴고, 아인슈타인은 거울에 닿는 빛의 속도를 탐구하다 영감을 받고 상대성 이론을 만들었다. 케쿨레는 심지어 꿈에 나온 꼬리를 문 뱀을 보고 벤젠 고리를 발견했다.
이런 예를 보고 있으면, 과거의 노력이나 행위의 결과가 현재로 나타나는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다분히 계시적이기까지 한 특정 사건, 그들에게 영감을 준 그 사건은 어디에서 온걸까? 우린 그저 영감이고 우연이라 여기지만, 그게 만일 정해진 미래로 이끌기 위한 자극이었다면? 이미 벤젠 고리를 알고 있는 시간대의 누군가가, 케쿨레의 꿈에 뱀 이미지를 보낸 것이라면? 영화 <인터스텔라>에 이같은 개념이 잘 나타나있다. 주인공이 미래에서 보낸 신호가 현재에 영향을 미치고, 그 현재가 또 미래에 영향을 주는, 비선형적인 시간 속에서 펼쳐지는 사건들. 우리의 사고로는 다소 혼란스럽다.
영화 <컨택트>도 이런 내용을 다루었다. 어느날 세계 각지에 괴비행체가 착륙했다. 전세계적으로 혼란스러운 가운데, 외계인의 방문 목적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언어학자인 루이스가 소통을 시도한다. 그리고 그들의 방문 이유는 훗날 자신들이 인류의 도움을 받기 위해 자기네 언어를 전달하기 위해서였음을 알게 된다.
영화 중반에 사피어 워프의 '언어가 사고를 규정한다'는 가설이 나온다. 꿈이나 환시처럼 아직 있지도 않은 '딸과의 일상'이 자꾸만 떠오르는 루이스가 멍한 채로 있자, 동료이자 미래의 남편인 물리학자 이안이 농담으로 묻는다. 외계 언어를 배우다보니 외계어로 꿈 꾸고 있기라도 하냐고. 그리고 그건 정말이었다.
다리가 7개인 괴이한 모양을 하고 있어 헥타포드라 불리우는 외계 생명체들은 원형을 그려내는 문자를 쓰며, 그 언어에는 시제가 없다.
시제가 없다-과거/현재/미래의 구분이 없다-그들에게 시간은 지나면 없어지는 무언가가 아니라 동시에 존재하고 재생되는 무언가다. 그들의 언어엔 시간이 필요치 않다. 시간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헥타포드어에 빠져든 루이스가 본 딸은 인간의 시점에서는 미래이지만, 동시에 실재하는 딸이었다. 헥타포드어로 사고하게 되면서, 루이스는 시간을 초월하여 미래를 보는, 아니, 다른 차원에서 진행되는 다른 시간대를 경험하는 능력을 갖게 된다.
루이스는 딸에게 바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같은 이름(Hannah한나)을 지어준다. 한나는 훗날 불치의 암으로 죽을 것이었다.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루이스는 딸을 낳아 함께 하기로 한다. 사랑하는 딸의 죽음이라니. 낳지 않는다면, 남편과 결혼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피하고, 또 바꿀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루이스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외계 비행체를 공격하자는 강경파 중국 장성인 섕을 저지하기 위해, 루이스는 또 미래의 환시의 도움을 받는다. 18개월 후 컨퍼런스에 참석한 섕은 그녀에게 '당신이 나에게 한 말이 날 움직였다'고 한다. 루이스는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심지어 섕의 전화번호조차 모른다. 섕은 미래의 그 자리에서 전화번호를 보여준다. 현재의 루이스는 그 번호로 전화를 건다. 미래의 루이스가 다급하게 묻는다. '내가 당신에게 무슨 말을 했죠?' 섕이 알려준다. 현재의 루이스는 그 말을 현재의 섕에게 한다. 공격은 중단되었다.
이 현재는 존재했는가? 이것이 미래에 영향을 주었나? 무수한 미래 중 하나가 현재에 힌트를 주어 자기 자신을 실재하는 미래로 만든 것인가?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루이스는 이것을 경험하고, 자신의 미래와 딸의 미래가 정말 '있을 수 있는' 무언가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것이 점점 실재하는 강한 미래로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살아가기로 한다.
외계인이나 외계어는 어찌 보면 이 영화의 주제가 아닌지도 모른다. 핵심 주제는, '삶이 어떻게 짜여지는가'다. 인간은 정해진 시나리오를 따라 희로애락을 경험하며 성장 발전하는 존재인가? 현재의 선택으로 무수한 미래 중 하나를 끄집어내는 현실창조적이고 가변적인 존재인가?
루이스가 결혼을 거부한다면, 그래서 딸을 아예 낳지 않는다면, 다른 미래가 펼쳐질까? 루이스는 왜 자기가 본 미래를 받아들여 현실로 만들었을까? 내가 엄마여서 그런지 몰라도, 루이스가 택한 것은 사랑인 것 같다. 헤어짐이 예정되어 있어도 함께 하는 순간만큼은 한껏 서로를 느끼고 사랑하며 행복해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딸을 아예 만나지 않는 것보다, 만나서 최선을 다해 사랑하기로 선택한 것이다. 그녀가 본 환시 속 미래인지, 현재진행형인 장면인지 모를 광경에서, 남편이 '아이 갖고 싶어?'라고 할 때 잠시 멈칫하던 루이스, 그런 그녀가 남편의 목을 감으며 아이를 갖겠다고 할 때 울컥 뭔가가 치미는 것 같았다. 그녀는 괴롭지 않았던걸까. 외계언어가 그녀의 사고를 바꾸고 우주적 사고가 가능케 해서, 인간의 감정을 초월해버리기라도 한걸까.
미래를 모르기에 우린 축복 받은 존재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내 딸이 십몇년 후에 병으로 죽는다는걸 안다면, 어떤 심정일지 상상도 안간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아는 미래가 딱 하나 있다. 언젠가 죽는다는 것이다. 시점과 방법을 모를 뿐, 누구나 아는 미래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이들은 삶을 새롭게 각색한다고 한다. 소중한 것에 집중하고, 하루를, 매시간을 다시 오지 않을 무언가로 받아들여 최선을 다해 느끼고 경험한다. 숨 한 자락도 귀하게 들이쉬고 내쉰다. 우리에게 필요한건 이거다. 매순간을 귀하게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 수년 후 죽을 딸을, 루이스는 전력을 다해 사랑했을 것이다.
인터스텔라나 컨택트의 감독에게 미래의 누군가가 영감을 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비선형적 시간을 이해하는 우주적 사고를 가능케 하도록 사람들을 자극하라고, 어떤 식으로든 신호를 준 것이 아닐까.
죽음이 자명한 결말임을 알고 있음에도, 영원히 살기라도 할 것처럼 욕심에 휘둘리며 살아가는 유아적 존재인 인간에게 보낸 메세지. 우주 시대에 걸맞는 보다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하려면, 매순간을 소중히 여기고 충실히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려는 누군가가 있는 것만 같다. 마치 애봇과 코스텔로가 루이스에게 헥타포드 언어를 전해준 것처럼 말이다.
문과판 인터스텔라라는 별칭이 있다던데, 정말 그렇네. 인상 깊게 잘 봤다. 멋진 울림을 주는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