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은 나뉘지 않는다 (II)

12. 책_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by 기린

1부에 이어 2부를 시작하면서,


어떤 책으로 이야기를 열어갈지 오래 고민했습니다. 이미 마음속으로는 정해두고 있었지만,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을 다루는 일이 혹여 그분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누가 되지 않을까 조심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이 책이 던지는 질문과 울림은 지금 이 시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은 암 투병 중이던 이어령 선생과 김지수 기자가 나눈 긴 대화를 기록한 책입니다. 단순한 인터뷰가 아니라, 죽음을 가까이 둔 한 지성이 삶의 끝자락에서 붙잡았던 질문과 사유를 담은 고백에 가깝습니다. 선생은 죽음을 병실의 커튼 뒤에 숨겨두지 않고, 조심스럽게 현실의 테이블 위로 올려놓습니다. 과장하지도 숨기지도 않은 채, 우리의 오늘과 마주 앉히려 합니다. 저는 이어령 선생을 직접 뵌 적은 없지만, 그의 딸 故 이민아 목사님의 삶과 신앙을 통해 먼저 그분을 만났습니다.


사랑하는 목사 딸이 소원이라고 말한 ‘예수님 믿는 것’에 대한 사유, 무신론자의 회심, 그리고 너무나 오래전 선생의 청년의 때에 네 살배기 어린 딸이 낯선 곳에서 잠들었다가 잠에서 깨어 아빠를 찾던 순간을 통해 하나님을 ‘아버지의 대역’으로 고백했던 이야기 등, 어쩌든 그 인연은 지성과 영성이 만나는 자리로 저를 이끌었습니다. 이후 제가 속한 교회에서 진행된 이재철 목사님과 이어령 선생의 대담을 에서, 두 분이 서로에게 묻고 경청하던 장면은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책 속 대담은 사랑과 종교, 과학과 예술을 넘나들지만 결국 하나의 물음으로 돌아옵니다. “삶은 무엇인가.” 선생은 삶을 소유의 문제가 아니라 이야기의 문제라고 말합니다. 얼마나 가졌는가가 아니라 어떤 이야기를 남겼는가가 중요하며, 인간은 관습과 체면, 물질이라는 보이지 않는 중력에 눌려 살지만 생각하는 사람은 그 중력을 거슬러 떠오를 수 있다고 말합니다. 죽음을 곁에 둔 사람이 건네는 말이기에 더욱 실존적으로 다가옵니다.


암 진단 이후 그는 죽음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죽음을 두려움이 아니라 삶을 비추는 거울로 삼으라고 말하며,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보다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묻습니다. 삶은 소유가 아니라 이야기이며, 우리는 매 순간 그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존재라고 강조합니다. 특히 신앙 안에서 가장 깊은 울림을 준 대목은 딸 故 이민아 목사님과의 마지막 시간이었습니다. 연명치료를 거부하고 죽음을 받아들인 딸의 결정을 통해 그는 인간다운 죽음과 삶의 품위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암에 걸린 뒤 오히려 딸과 함께한 1년이 가장 충분한 시간이었고, 그 시간을 ‘행복하게 썼다’고 말합니다. 그 고백은 죽음이 삶을 파괴하는 사건이 아니라, 삶을 완성하는 또 하나의 방식일 수 있음을 조용히 일깨워 줍니다. 책의 마지막에서 선생은 말합니다.


“끝이란 없어요. 이어서 또 다른 영화를 트는 극장이 있을 뿐이지요.” 그리고 덧붙입니다. 한국어의 표현을 빗대어 말하고 있지만, 오래도록 울림이 있습니다. “죽는다고 하지 않고 돌아간다고 합니다. 애초에 있던 그 자리로 나는 돌아갑니다.”


이 책은 죽음을 말하지만 결국 삶을 말합니다. 죽음을 거울삼아 오늘을 더 깊이 살라고 말합니다. 남은 시간을 알 수 없지만, 지금 이 순간을 진실하게 살아내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라고 조용히 일러줍니다.

지금,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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