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의 역사

01. 나는 '살아 있음'을 점검받았다

by 기린

이 글은 국제개발협력 프로젝트 수행자로 한동안 팔레스타인을 드나들면서 경험한 일들을, 오랜 세월이 지나 '웰다잉을 위한 웰빙의 삶'을 전하는 몫으로 삶의 방향을 다잡아 가면서 다시 정리하는 글입니다.


살아 있다는 것을 점검받는 국경


그들의 역사, 그들만의 역사~!

어쩌다 ‘땅’을 중심으로 갈등과 반목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며 전쟁과 평화를 반복하는 몇 나라들 중 가장 심각한 곳! 자유롭게, 또는 자유의지로 이동할 수 없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일일까, 살아오면서 분명하게 정리해 보지 못한 부분임에 틀림없었다.

국경은 늘 긴장된 공간이다. 라오스 국경 근처에서 오토바이 여행 중 스타벅스를 찾았더니 국경을 너머 태국 땅에 위치한 사정을 알고, 일행 중 여권미소자로 인해 다시 되돌아왔던 그런 우스꽝스러운 경험을 제외하고, 지금이야 자유롭다고 하지만, 슬로바키아를 넘어 오스트리아 빈으로 갔을 때, 오래전 베트남과 캄보디아 국경에서의 일, 하물며 중국을 경유한 백두산 경계 어디메쯤, 그리고 지난해 겪은 우간다와 콩코의 경계의 땅,

어느 기점의 국경이어든 긴장되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 텔아비브 공항에서 팔레스타인으로 넘어가던 그 밤의 국경은,

내가 알고 있던 긴장과는 사뭇 달랐다. 이미 다양한 경로를 통해 학습하고, 예행연습? 까지 마쳤지만, 칠흑 같은 밤에 기관에서 마련한 이스라엘 번호판을 단 대절차량을 통해 경계를 넘어가던 그 기억은 한동안 잊히지 않는다. 또 세월이 흘러 이제쯤의 팔-이/이-팔을 넘나드는 방식이 달라졌는지 모를 일이나, 당시 약 3년여 가까운 시기에 이뤄진 여러 차례의 방문에서는 늘 긴장을 달고 다녀야 했었다.


그보다 먼저, 우리가 택한 인천-텔아비브-라말라행의 경로는 무엇보다 비행기에서 내린 뒤 입국절차 중 가장 까다로운 질문은 생각보다 길고 오래 이어졌다.
어디서 왔는지, 왜 왔는지, 누구를 만나는지 등을 반복적으로 묻고, 질문자만 다를 뿐 같은 질문이 반복되었고, 답은 이미 충분했지만 또다시 요구되었다. 그 순간 나는 여행자 혹은 부여된 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출장자가 아니라, 반복되는 질문에 답을 해야 하는 존재, 정해진 틀 안에서 검증받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팔레스타인으로 들어가는 길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어느새 아주 잠시, 그곳에 정말 왜 가야 하는지를 의무적으로 명확하게 정리하고(필시 그 대답은 우리를 검증하기 원하는 자들에 맞게 각색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언제든, 누구든 사실을 확인하기 원하면 녹음기애 녹음된 내용처럼 분명하고 명확하게 전하는 훈련을 제대로 검증받고 1차 목적지에 도착한 것으로 이해되었고, 호텔에 도착해 체크인하는 동안 아주 잠깐, 공항, 공항에서 국경에 이르는 순간까지 눈 빛으로 그 긴장감을 나누고, 각자의 주어진 공간으로 향하게 되었다.


우리는 늘 이동을 당연히 자유롭게 여기고, 언제든 어디로든 정하는 그곳으로 향할 수 있었고, 또 언제든 어디서든 그곳을 정리해 떠나왔던 일상이 이어졌었는데, 그것이 얼마나 자유로운지 생각이라도 했었던가?


그 밤 국경을 지나던 나는 처음으로 ‘이동할 수 있음’이 얼마나 큰 권리인지 실감했다.

이동은 단순한 물리적 행위가 아니다.

이동은 선택이고, 가능성이고, 삶의 확장이다.

어디로 갈 수 있는가 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갈 수 있는 선택권을 가지고 있는가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국경은 일상이었다. 검문소는 특별한 사건도 아니고 특별한 장소도 아닌 하루의 일부였다. 사람들은 지위나 권력이 있다고 여겨지는 자들, 제복 입은 자들에게 질문받는 일은 누구에게 든 예외가 아니라 반복되는 삶의 루틴이었다. 질문에 답하는 그들은 분노하지도, 항의하지도 않았다. 그저 기다렸다. 기다리는 법을 배운 사람들처럼 유순하게 기다리던 그들의 모습을 보며 닮지도 않은 나만 불편해졌던 것이다.

그들의 침착함 때문이 아니라, 그 침착함이 필요한 삶의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유를 잃었을 때 비로소 자유를 인식한다. 그전까지 자유는 공기처럼 존재하다가, 막히는 순간 비로소 무게를 드러낸다.


국경은 그 사실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장소였다. 그날, ‘나는 어디까지 갈 수 있는 사람인가’를 생각했다. 그리고 동시에, ‘끝까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있는가’를 자문했다.


삶은 결국 끊임없는 이동의 연속이다. 장소를 옮기고, 역할을 옮기고, 관계를 옮기며 우리는 조금씩 다음 단계로 이동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그 이동이 처음부터 제한된다. 의지와 상관없이, 그곳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국경을 통과한 뒤에도 한동안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그날 이후, 나는 이동할 때마다 보이지 않는 질문 하나를 함께 들고 다닌다.

나는 지금, 얼마나 존엄하게 움직이고 있는가.


이 질문은 여행에 관한 것이 아니다. 삶에 관한 질문이다.



#국제개발협력 #팔레스타인 #팔레스타인취창업지원 #인간의존엄성 #삶의현장


수,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