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휴직러의 퇴사고민 1
2012년 대기업 경력입사에 성공했다.
졸업하기 전 학교, 학과, 전문성, 영어 모두 갖추고 있지 않았기에 대기업 취업은 남의 나라 이야기였다. 대학교에서 함께 엘리트 취업프로그램에 참여했던 타과 동기들은 초임연봉이 3천 3백이 되는 대기업에 입사했다. 나는 세금을 떼고 나면 86만원이 입금되는 보너스도 없는 지방 중소기업의 해외영업 사원으로 입사했다. 그러니까 연봉초임이 약 1천2백 정도되는 곳이었다. 시작부터가 달랐다.
10년동안 잦은 이직과 해외경험등 중간에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대기업 경력입사에 성공했을 때 모든 것을 이룬 기분이었다. 과장직급일때라 일에 대한 열정도, 회사에서 대한 애사심도 불타올랐다. 이제 내 인생에 이직은 없다고 못박았고, 복지 좋고 네임벨류 있는 회사에서 뼈를 묻어 임원이 되고 싶다는 상상도 했다. 일만 열정적으로 하면 될 것 같았던 회사생활은 그리 녹녹치 않았다. 10년동안 조직개편을 매년 하는 회사였다. 부서장은 매년 바뀌었고, 한 해에 3번이 변경될 때도 있었다. 그러니까 조직개편 때문에 회사 생활이 녹녹치 않았다는게 아니라 회사생활에 꼭 필요한 사내정치에 끼어들지 못했다는게 문제였다.
나의 줄은 왜 항상 썩은 동아줄일까. 존경하고 좋아하는 부서장님들은 금방 다른 곳으로 떠나셨다. 경력입사 초기부터 악명높았던 타부서의 부서장은 승승장구하여 저기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하늘 높은지 모르고 승승장구하는 그 사람을 잘 피해다녔다고 생각했는데 코로나와 함께 서서히 나의 턱밑까지 존재했다. 다른 부서장이나 팀장들에 대해서는 뒤로 욕하며, 힘들다 말하면 그만이었는데, 이번에는 그걸로 끝나지 않았다. 내가 점점 날카로워지기 시작했다. 분명히 퇴근시간이 훨씬 지났는데도 항상 긴장하고 사내 메신저를 주시하고 있어야했다. 회의 시간에 그의 질문에 "저희가요..'"고 말했다가, "저희가 누구죠? 회사가 개인입니까?" 라며 업무의 본질 대신 인신공격을 하는 그 사람을 피하고만 싶었다.
나의 휴직 결정은 어렵지 않았다. 그 사람이 우리 부서를 본인의 팀으로 끌고 들어가 팀장이 되는 순간에 바로 휴직결정을 했다. 휴직을 결정하고 1달의 시간이 남아있는 동안, 재택근무를 하며 그 사람이 시키는 일에 즉각즉각 반응했다. 그 일을 하기 위해서 유치원에서 돌아온 아이를 챙겨주지도 못하고 오히려 아이에게 말시키지 말라며 화를 냈다. 정신을 차렸다. 내가 무얼 위해 일하고 있는지 알아야했다. 오랜동안 생각해온 휴직에 대한 망설임을 확신으로 결정한 나를 칭찬했다. 나는 그 밑의 다른 사람들처럼 매일 밤 12시까지 남아서 일하고 싶지 않았다. 조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그 사람밑에서 온몸의 세포를 쭈뼛쭈뼛 세우며 긴장하며 매일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독서를 통해서 무엇이 중요한지 알아가고 있는 과정이었다.
무엇보다 나의 아이와 나의 마음을 돌보아야했다.
휴직하자마자 제주로 왔다. 휴직 1년이 다 되어가는 동안 나는 이직이 아닌 퇴직을 염두해두며 꿈지도를 그리고, 점을 찍었다. 월천퇴사라는 목표를 세우고 달리고 있는데, 점검이 필요했다. 나는 돈 때문에 회사를 다녔나? 퇴사 전 월천을 만들고 퇴사를 하면 나는 충분히 만족한 선택을 한 걸까?
시간이 많이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복직의 시간까지 얼마남지 않았다.
1년동안 몇 번이나 퇴사하는 꿈을 꿨다. 어느 날 나는 낯선 회사에 출근해있다. 아! 그러고보니 내가 다니고 있던 대기업에 사표를 냈지. 그리고 난 지금 5명의 직원이 일하는 소기업에 출근을 했네.. 다시 돌아갈 수도 없는 상황이구나.. 후회하는 마음..대충 그런 꿈들을 자주 꿨다.
그래서 속으로만 이럴까 저럴까 생각하지 않고 읽고 기록하며 내 마음을 더 들여다보기로 했다.
대기업 경력입사한지 11년차 직장인, 세번째 휴직, 프로휴직러, 과연 퇴사하게 될까?
오늘 <퇴사는 여행>과 <무작정 퇴사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두 권의 책을 읽었다. 그러면서 나의 생각을 기록하고 있다. 앞으로 관련된 더 많은 책을 읽고, 나에게 질문하고,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충분한 시간을 가져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