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쓰는 뒤죽박죽 세계여행기
기억하라. 우리는 모두 죽는다. 당신도 죽고 당신이 화를 내는 상대방도 결국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이렇게 생각하면 당신의 분노가 일시적이고 덧없다는 사실을 올바로 볼 수 있게 된다. 우리를 화나게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판단이다. (죽음은 통제할 수 없지만, 인생은 설계할 수 있다/비탈리 카스넬슨/p249)
말레이시아 페낭에서 한국으로, 한국에서 다시 싱가포르로 취업해 30대 초반을 해외에서 보냈다. 하지만 싱가포르에서는 3개월 짧은 직장생활의 종지부를 찍었다. 20대 중반 6개월 캐나다 어학연수에서 만났던 동생이 나에게 딱 맞는 업무가 있다며 추천한 회사의 대표와 30분 전화인터뷰를 한 후 바로 짐을 싸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 달 치 월급을 뱉어내고 싱가포르 탈출 성공이었다. 국내 대기업이 약 2년에 걸쳐 전 세계의 각기 다른 시스템을 하나의 물류 시스템으로 통합하는 프로젝트에 협력사 직원으로 참여했다. 국내 프로젝트를 어리바리 마치고, 유럽 프로젝트 영국, 독일, 슬로바키아 세 개의 거점 중에 독일팀에 배정되었다. 200명 이상 본사 직원들은 세 개 나라로 흩어져 3개월간 호텔과 거점을 오가며 시스템을 셋업하고 유럽 직원을 교육하는 업무를 했다. 하루 세끼가 완벽하게 제공되는 곳에서 사육당하며 독일 3개월 프로젝트가 끝나고, 프로젝트 인원이 주요 거점인 영국에서 만나 3주간 결산을 해야 했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영국 런던 공항으로 가기 전날 유명한 독일의 압력밥솥과 쌍둥이 칼을 사기 위해 독일 시내로 갔다. 결혼한 남자 직원은 휘슬러 압력밥솥을 샀다. 나는 당시 싱글이었고, 부모님은 말레이시아 페낭에 계셨기에 압력밥솥은 필요 없었다. 대신에 이모네 얹혀서 살고 있으니 쌍둥이 칼 두 세트를 할인된 가격으로 싸게 샀다. 이날 영국으로 이동할 팀은 출발 전날 프랑크푸르트 시내 호텔에서 술을 엄청 마셨다. 새벽에 호텔 방에 들어가서 정신없는 상태에서 짐을 쌌다. 독일에서 겨울의 끝과 봄 사이인 3개월을 머물렀기 때문에 짐이 많았다. 하지만 같은 유럽 국가 안에서 비행기에 탑승하는 거라 기내 수화물 한 개, 붙이는 수화물 한 개만 허용되었다. 붙이는 수화물 무게가 한도를 넘지 않는 한도에서 최대한 짐을 싸고, 들고 들어가는 작은 짐에는 허용 무게보다 좀 더 많이 담았다.
다음 날 무사히 독일 공항에서 체크인을 마쳤다. 기내에 가지고 들어가는 짐은 체크인 담당자가 보지 않는 먼 곳에 두었기 때문이다. 안도하며 동료들과 보안 검색대를 통과했다. 내가 먼저 들어가면서 캐리어를 보안 검색대에 넣었다. 이어서 같은 부서였던 직장동료가 컨베이어 벨트에 짐을 놓고 나를 따라 검색대를 통과했다.
그런데! 보안 검색대 직원 두 명이 우리 둘을 향해 뭐라고 했다. 한참 웃으며, 두 명의 보안 검색대 독일 남자들이 칼싸움하는 흉내를 냈다.
‘쌍둥이 칼!!’
술 취해 비몽사몽 간 짐을 쌌기에 쌍둥이 칼 세트를 기내에 들고 들어가는 짐에 넣었다 확신하며 좌절했다. 검색대 위에 놓아두었던 짐을 들고 다시 체크인 카운터로 갔다. 어라? 근데 내 뒤에 따라 들어온 직장동료도 기내에 갖고 들어가는 짐에 칼을 넣었나 보다. 우리는 나란히 체크인 카운터로 가서 직원에게 설명하고 앞에서 짐을 풀었다. 직장동료의 쌍둥이 칼이 기내에 들고 가려고 했던 그녀의 짐에서 나왔다. 문제는 아무리 찾아도 내 캐리어 안에는 쌍둥이 칼이 없었다. 허무했다. 직장동료가 내 뒤에 바로 따라오는 바람에 칼이 발견된 짐이 내 것인지 동료 것인지 알 수 없었고, 술 취해 짐을 싼 내가 스스로 믿을 수 없었기에 내 짐에 칼이 들어있을거라 지레짐작하고 같이 체크인 카운터로 나온 것이다.
문제는 우리를 가만히 지켜보던 체크인 카운터 직원이 얼굴이 굳은 채로 우리에게 물었다.
"너희, 지금 앞에 있는 짐이 들고 들어갈 짐이니?"
"응"
"여기 무게 재는 곳에 좀 올려볼래?"
"....."
"무게가 10kg 오버하는데?"
"응??"
"kg 당 계산해서 250유로 더 내렴."
"응???"
항의해보려고 했지만, 엄격한 독일 여자는 짐의 무게는 규정보다 훨씬 넘었고, 추가 비용을 내지 않으면 보안 경비대를 불러서, 쫓아낸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쌍둥이 칼은 10만 원 정도의 금액으로 샀는데, 기내 짐 무게 때문에 30만 원 이상을 오버 차지를 냈으니, 쌍둥이 칼을 40만 원이 넘게 산 게 되어버렸다. 얄미운 직장동료가 내 뒤에 따라와 바로 본인의 짐을 컨베이어 벨트에 놓지 않았더라면, 무사 통과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세월이 한참 지났지만, 이 글을 쓰는 순간 ‘억울하네’라고 생각하다 말았다. 이런 황당한 일, 손해 본 것 같은 일에서 의미 찾는 연습한 지 오래다. 칼을 공항에서 뺏기지 않고 가져와 지금까지도 잘 쓰고 있으니 값어치를 톡톡히 했다. 재작년 가족 캠핑카 여행을 떠날 때 여행지에서 쓸 가위를 분명히 부치는 짐에 넣었는데, 검색대를 통과할 때 가위가 아이 가방에서 발견되었다. 아이는 잡혀가는 줄 알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겁을 먹었다. 오래전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가위는 공항에 버리고 왔다. “너 왜 가위를 빼서 가방에 넣었어!”가 아니라, 아이가 실제로 경험할 기회로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