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에 오기 전 이 나라 사람들은 지나가던 할머니들도 무척이나 친절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몇 개월 살고 있지만 친절한 사람을 만날 기회는 흔치 않다. 거리를 지나가다, 혹은 러닝을 하며 마주 오는 사람에게 환한 미소를 지어 인사하는 건 내가 먼저 하고 있다. 크라이스트처치 근교 트레킹을 하거나, 남섬 캠핑카 여행을 하면서 계속 아이에게 보여주었던 건 맞은 편 다가오는 낯선 이에게 먼저 인사하기이다. 남섬 캠핑카 여행 트레킹을 할 때 주로 마주치는 사람들은 뉴질랜드 현지인보다는 여행객들이 많았지만, 어느 나라에서 온 사람들일까 예상하며 여행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Hi”라고 해봤다가, “Hello”라고 해봤다가 인사말도 바꿔서 시도해본다. 어떤 이는 반갑게 우리가 한 인사말을 똑같이 하고 어떤 이는 “How are you?”라고 변형하기도 한다. 어떤 이는 우리의 인사를 못 듣고 지나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인사를 듣고도 모르는 척하고 자신의 길을 간다. 아이는 이를 통해 타인에게 먼저 인사하기, 말 걸기, 거절당하기를 배운다. 여행의 묘미는 여행의 장소에서 만나는 사람일 때가 많은데 아이가 커서 홀로 여행을 다닌다면 타인에게 호의적인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한 방법이다. 낯선 이에게 먼저 인사하는 뉴질랜드 여행은 자연히 이 전 아이와 했던 여행을 떠올리게 된다.
치앙마이에 온 둘째 주에 아이와 내가 간 곳은 찡짜이 마켓이다. 치앙마이는 낮과 밤, 요일마다 열리는 마켓 천국이다. 찡짜이 토요 마켓에서 다른 동네 나이트 마켓으로 이동하는 길에 택시를 타고 싶었는데 볼트라는 앱으로 택시를 부르면 약 10분 정도 기다려야 했다. 찡짜이 마켓에서 나오자마자 픽업트럭 뒤에 열린 공간에 승객이 앉아 이동하는 이동수단인 썽태우 기사가 우리를 불러 세웠다. 뚫린 공간이기에 당연히 에어컨도 선풍기도 없다. 일 인당으로 비용을 받는데 인당 30 바트라고 했다. 썽태우는 다른 승객과 함께 타는 구조인데 두 명의 젊은 여성이 우리 뒤에 따라 탔다. 꽤 짧은 거리에서 마주 보고 앉아있으려니 어색했다. 두 명의 여성이 속닥속닥하더니 우리를 향해 말을 걸었다.
“너희들 한국에서 왔니?"
반가운 마음에 "yes!!"라고 대답했다.
그들은 "안뇽하쎄요"라고 어설픈 한국어로 우리에게 인사했다. 외국인이 나의 모국어로 인사를 하면 당연히 친근감이 상승한다. “안녕하세요!”라고 밝게 웃으며 인사하니 일주일 전 둘은 한국 여행을 다녀왔다고 했다. 함께 호들갑 떨어주며,
"어머! 한국에 다녀왔구나!! 한국 어디를 다녀왔니?"
"우리가 시간이 짧아서 서울에서만 있었어."
"아! 나는 제주에서 왔단다"
본인들도 제주에 가고 싶었는데 시간이 부족해서 못 갔다고 한다. 짧은 시간에 많은 이야기를 하며 호구 조사를 마쳤다. 둘은 중국 베이징에 중국어 어학연수 갔다가 친해진 독일인과 태국인이었다. 독일인과 태국인이 영어가 아닌 중국어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는 게 꽤 흥미로웠다. 둘은 중국어 연수를 마치고 여기저기 함께 여행을 다니고 있다고 했다. 태국 친구는 방콕 출신으로, 독일 친구를 데리고 치앙마이에 여행 중이었다.
"What a international!"이라고 하며 다 같이 웃었는데, 아이가 옆에서 "엄마 영어로 수다 좀 떤다"라고 말했다. 짧은 시간 동안, 본인들이 다녀온 치앙마이 명소도 추천해주고, 서로의 사진도 찍어주며 즐거웠다. 중고 마켓에 간다고 내리는 두 명의 누나들을 보며, 아이가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짧았던 순간에도 정이 들었나 보다.
"엄마, 왜 저 사람들 연락처 안 받았어?"라며 아이가 물었다.
"사람은 누구나 만나고 헤어지고 하지. 너무 짧게 만난 사람이라 다시 볼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연락처는 받지 않았는데…."라고 대답했는데 아차, 했다. 여행지에서의 만남을 소중히 여기자고 했으면서 그냥 스쳐 지나가듯 일회용 만남을 보여준 것 같아서였다. 모든 만남이 항상 이어지지 않는다는 건 아이 스스로 깨달아야 하지만, 옛날과는 다르게 요즘은 인스타, 페이스북이 있으니 어디서 만난 ‘누구는 요즘 이렇게 지내는구나’라는 연결고리를 갖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 만남으로, 작년 스위스 캠핑카 여행 중 피르스트에서 만난 신혼부부도 생각났다. 스위스 유명관광지에는 한국 사람들이 여전히 많은데, 신기한 건 규칙처럼 한국 사람들끼리 절대 아는 척하지 않는다. 그런데 피르스트에 가기 위해 그린데발트 역에 도착했을 때 우리에게 어떤 한국인 남자가 다가와 인사하고 먼저 말을 걸었다. 피르스트가려면 어떤 버스를 타면 되냐고 했다. SBB 앱을 보여주며 자세하게 설명해주었고, 같은 방향이라고 친절히 알려줬다. 그들은 신혼여행을 온 부부였다. 같은 버스를 타고, 피르스트 매표소까지 함께 갔다. 피르스트에는 액티비티를 하러 왔다고 했다. 안개 자욱한 피르스트 꼭대기에서 식당에서 다시 한번 마주쳤다. 그때 이야기를 나누며 호구 조사를 했다. 얼마 전 결혼 했고, 스위스와 프랑스를 신혼여행지로 삼은 광주광역시에서 온 부부였다. 우리는 캠핑카 여행을 왔다고 했더니 부러워하길래 캠핑카로 저녁 식사 초대를 했다. 원래 그런 초대는 잘 응하지 않기도 하는데 신혼부부는 덥석 물었다. 우리 부부도 여행지에서 어울리는 걸 꿈꿨기에 초대에 응해준 두 사람이 고마웠다. 아이도 물론 좋아했다. 다음 날 저녁에 와인을 세 병이나 사 온 신혼부부에게 우리는 캠핑카에서 스위스 COOP 마트에 산 안심스테이크를 대접했다. 와인을 거의 마셔본 적이 없다는 신혼부부는 맥주 마시듯이 본인들이 사 온 와인과 우리가 가지고 있는 와인 2명을 모두 해치웠다. 젊은이들과 오랜만에 이야기하니 좋았다. 남자분은 아이를 가질 계획이 없었는데 우리 아이를 보니까, 아이가 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기도하고, 나는 몇 달 전 출간한 독서의 기록을 선물했다. 젊은이들의 물개 반응을 보니, 우리 부부도 기분이 좋아져 꼰대 같은 조언을 좀 해 주기도 했다.
거의 1년이 지난 후 아이는 "엄마, 그때 스위스에서 만난 신혼부부 있잖아? 아기가 태어났을까?"라고 물어봤다. 이후에 <여행의 기록>을 출간하고, 전국 북토크 일정을 잡으며 광주광역시의 책방을 일부러 수소문했다. 인스타크램 이웃이고 카톡 아이디를 알고 있어, 1년만에 연락해 북토크에 초대하고 싶다고 했다. 책은 읽지 않으니 북토크 같은 자리는 처음이었다는 부부는 일 년 전 인연이 일회용으로 끝나지 않고 본인들을 생각해주며 광주로 찾은 사실에 감동했다. 인터라켄 호수 앞에서 잔뜩 마신 와인으로 술 취한 신혼부부가 잘 갔을까 걱정했는데, 그 이후의 에피소드도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각자 삶을 살다가 다시 이어질 날을 기다리며 헤어졌다. 그러고 보니, 아이 말대로 찡짜이 마켓에서 오는 길에 만났던 활달한 두 대학생의 인스타 아이디라도 받아서 서로의 안부를 눈으로라도 볼 걸 그랬다. 앞으로 어떻게 선으로 연결될지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