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쓰는 뒤죽박죽 세계여행기
남유럽에서 달리기를 할 때 겪는 두 번째 문제점은 다름 아닌 개다. 길에 내놓고 키우는 개가 정말 많다. 게다가 개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조깅하는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으므로 내가 달리고 있으면 신기한지 뒤쫓아온다. 인간의 경우는 좀 귀찮기는 해도 이야기하면 알아듣기도 하지만 개는 그렇지가 않다. 말로 이해시킬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즉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 이건 자칫하면 목숨이 걸린 문제다. (중략) 할 수 없이 처음 몇 주일은 호신용 몽둥이를 들고 달렸는데 이게 또 문제였다. (먼 북소리/무라카미 하루키. p199)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약 34개국을 다녔다. 황당한 일, 힘든 일, 괴로움도 있었지만, 사람을 만나는 즐거움과 어느 것도 정해진 건 없다는 유연함이 장착되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떠나지 않는 사람은 모르는, 떠나는 자만이 알 수 있는 이야기들이 모인다. 편견을 갖지 않고 내가 있는 곳에서 온전히 살아보는 게 나의 목표가 되었다. 그걸 깨달았던 순간 아이와 치앙마이 여행을 계획했다. 아이는 이미 방학 때 아빠와 단둘이 치앙마이에 다녀왔지만, 이번에는 엄마와 극과 극 체험을 하게 될 터였다. 초등학생인 아이와 매일 여행을 다닐 건 아니고 스포츠나 미술 캠프에 가 있는 동안 각자의 시간을 보내다 오후에 만나 함께 하는 일정이었다.
치앙마이에 밤늦게 도착했을 때, 택시가 우리를 데리고 간 곳은 세린 레이크 (Serene Lake) 마을이었다. 콘도 출입구에서도 한참을 들어갔는데, 상점, 카페, 마트 등 편의 시설이 없는 곳이었다. 덩그러니 콘도와 고급 주택들만 모여 있는 막 생성된 단지라는 건 다음 날 오전에 알게 되었다. 전날 자정쯤 잠이 들었지만, 치앙마이 시각으로 새벽 5시쯤 눈이 떠졌다. (한국 7시) 아이도 새벽 6시에 일어났는데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콘도 밖으로 나갔다. 오전 6시가 조금 넘어서 그랬는지 사람을 한 명도 만날 수 없는 거리를 걸으며 출구 쪽으로 아이와 함께 걸었다. 지도상으로는 25분 정도만 걸으면 대로변에 작은 식당을 포함해 편의 시설이 있었다. 5분 정도 걸었을까, 양쪽 도로에 한 마리씩 누워있는 누렁이들을 발견했다. 순간 아이와 나는 움찔했고, 걸음을 멈춘 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데 우리의 고민을 알아차린 건지 누렁이 한 마리가 터덜터덜 우리를 향해 다가왔다. 순간 아이와 나는 등을 보이고 걸어온 방향으로 걸어갔다. 나뭇가지라도 주어 혹시 모를 공격에 대비해 볼까 하는 생각으로 주변을 둘러봤지만 깨끗한 동네라 나뭇가지는 고사하고 작은 돌도 없었다. 갑자기 뒤따라오는 개를 보고 아이가 달리려고 해서, 달리면 안 된다고 손을 잡아끌었지만 떨리는 심장은 터질 것 같았다. 빠른 걸음으로 걷다 아무도 살고 있지 않은 공사 중인 콘도 안으로 들어가자 개가 멈췄다. 두려움을 잠시 가라앉히고 숙소 건물로 가서 경비원에게 파파고 번역기를 내밀었다.
"저기 개가 있어요."
경비원이 태국어로 된 번역을 보더니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제가 이 빗자루를 가져가도 될까요?" 경비실 옆에 놓여 있는 커다란 빗자루를 가리키며 파파고 번역기를 보여주었어요. 그랬더니 잠시만 기다리라는 제스처를 취하고, 60cm가량의 멋지고 긴 막대기를 나에게 선물했다. 그러면서 태국어로 파파고 번역기 없이 말한다.
"괜찮아요. 물지 않을 거예요."
바디 랭귀지로 다 알아들었다.
아이와 나는 두려움이라는 괴물을 마주하기로 했다. 아니, 내가 두려움이라는 괴물을 마주하고, 아이는 보호하기로 했다. 그 당시 '데일카네기의 자기관리론'을 오디오 북으로 듣고 있을 때인데, 두려움이란 나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신기루에 불과하다는 걸 배웠기 때문이다. 한 손으로는 막대기를 들고, 한 손은 아이의 손을 꼭 잡은 채 조금 전 개를 마주쳤던 곳으로 걸어갔다. 같은 자리에 개들이 이번에는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누워있었다. 아이에게 쳐다보지 말라고 복화술로 이야기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막대기를 위아래로 흔들며 걸어갔더니 다가오지도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고비를 넘기고, 세린레이크 마을 한 바퀴 (3.6km)를 돌았다. 어린 시절 살던 동네에는 들개가 떼로 몰려다녔다. 일요일 오전 일찍 걸어서 교회를 가는 시간이 되면 항상 긴장했다. 멀리에 들개 떼가 보이면 한참을 돌아 개들이 없는 쪽으로 피해 다녔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무도 없는 골목을 가다가 삽살개 한 마리가 무섭게 짖으며 나를 향해 달려왔는데, 울며불며 도망 다니다가 막다른 골목에서 어떤 청년이 구해주셨던 두려웠지만 고마웠던 경험도 있다. 그래서 처음 만나는 개들은 나에게 긴장과 두려움을 주는 존재이다. 지난겨울 치앙마이 여행을 다녀온 동생이 거리를 돌아다니는 들개 때문에 두려웠다고 했던 게 생각났다. 호수를 끼고 한 바퀴를 돌면 3.6km인 세린레이크 마을은 달리기에 최적화되어있는 마을인 건 알았는데 '들개'라는 복병을 만났다.
치앙마이 한 달 살기 시기에는 한참 달리기에 푹 빠져있을 때였다. 치앙마이에서 한국에 입국하고 이틀 후에는 있을 8.15런을 위한 훈련이 필요했다. 나는 달리기를 포기했을까?
아니다.
새벽 5시 49분, 경비아저씨에게 선물 받은 긴 몽둥이를 오른손에, 휴대폰을 왼손에 들고 달리러 나갔다. 개가 나타났던 곳 말고 반대쪽으로 먼저 달려볼까 했지만, 어차피 호수 두 바퀴는 돌아야 하니 피하지 않고 정면돌파하기로 했다. 저 멀리서 누렁이가 나를 향해 달려왔다. 그런데! 몽둥이를 들고 달리는 나를 보더니 방향을 돌려 반대 방향으로 달려 멀어졌다. 손에 든 몽둥이가 마법 지팡이 같았다. 세린레이크 한 바퀴를 도는 동안 약 열 마리의 들개를 만났고, 한 마리도 나를 쫓아오지 않았다. 나에게 몽둥이가 들려있었기 때문이다. 두 바퀴째 돌 때 마지막으로 흰둥이가 잠시 따라오기는 했지만, 모르는 척하고 달렸더니 어느 순간에 사라졌다. 흰둥이의 존재가 느껴지는 순간에는 목덜미가 찌릿했지만 다행이었다. 그렇게 치앙마이에서 첫 러닝 7.96km를 마무리 짓고, 몽둥이에 고마워하며 여행지에서도 달리고 쓰는 삶, 지금 여기에 살고 있다며 뿌듯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태국에서는 막대기를 들고 가지 않았더라도 마주치는 들개들을 모르는 척하고 달린다면 개들은 나에게 해코지 안 했을 것이다. 하지만 몽둥이라는 생명력 없는 존재가 심리적으로 든든한 힘이 되었다. 인생을 살면서, 내가 가진 두려움을 물리쳐줄 심리적인 몽둥이는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만드는 경험이었다.
이후에도 치앙마이에서 달릴 때 몽둥이를 가지고 달렸다. 하지만 무모하게 들개들이 있는 곳을 돌파하지는 않았다. 새벽이 되면 화난 듯 으르렁거리며 몰려다니는 들개떼들이 보이면 반대 방향으로 달렸다. 어느 날은 정면으로 마주쳤고, 어느 날은 서로 길이 엇갈려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한국에 돌아와 들개 없는 거리에서 달리는 자유를 느꼈다.
몽둥런은 나만의 에피소드인 줄 알았는데 대선배가 있었다. 바로 무라카미 하루키다. <먼 북소리>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유럽 여행 에세이인데,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와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는 나오지 않는 에피소드가 있다. 오랫동안 달려온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오래전 이야기가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야 러너가 된 나에게 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