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20년 가까이 지난 일.
할머니 한분이 교실 문앞에서 서 계신다. 출근하는 나를 기다리셨다. 내 얼굴을 보자마자 대뜸 손주를 호되게 때려 달라신다. 할머니께서 이런 민원을 교사에게 요청하신 이유는 분명 있었다.
자초지경을 듣고나니 복받치는 감정에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긴숨을 연이어 내쉬며 그래도 참아보려 했다.
할머니를 돌아가시게 하고 교실로 들어섰다. 이 녀석은 아무일 없다는듯 표정이 태연하다. 조용히 불러 요즘 집에서 잘못한 일이 없는지 물었다. 절대 그런건 없다고 한다. 수업을 해야 했기에 일단 자리로 돌아가라했다.
'어쩌나 고민했다.'
수업은 끝났고 남아서 상담 좀 하자고 했는데 가방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창밖을 보니 뭔가를 입에 물고 있었다. 그걸 보고는 뚜껑이 열리고야 말았다.
이 녀석을 데려다 놓고 군것질에 사용한 돈의 출처를 물었다. 길에서 주웠다고 거짓말을 한다.
아침에 이 녀석의 할머니가 손주를 때려달라 하신 이유가 납득 되었다. 동생의 학원비를 훔쳐 이렇게라도 군것질을 하고 싶은 이 녀석의 마음도 오죽할까 싶었으나 할머니는 두달 소일거리로 겨우 학원비를 마련하셨다 했다. 난 할머니의 돈을 찾으려 했건만 내줄 생각이 없어보이는 녀석이었다. 몇대 맞고 훔친 돈은 지키겠다는 생각이 엿보였다.
지금 생각하면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지금보다 훨씬 미숙했던 난 그 녀석을 할머니 요청대로 때리고야 말았다.(지금이라면 내돈을 할머니에게 드리는 것으로 마무리 했을것이다.) 두대까지는 엉덩이 힘으로 참나 싶더니 세대를 맞기 전 훔쳤다고 나에게 털어 놓는다. 남은 돈은 어디 있냐 물었더니 이미 다 썼다고 한다. 몇 만원이나 되는 돈이 그리 쉬이 쓰일리 없었다. 다시 빗자루를 집어들자 어디선가 꼬깃하게 접은 지폐를 꺼내 놓았다.
할머니에게 다시 돌려드린다는 확답을 듣고 집으로 보냈다. 그 이후 할머니가 교실로 찾아오시는 일은 더 이상 없었다.
그렇게 잘 해결된 줄 알았던 이 녀석의 습성은 내 손길이 미치지 않는 시간과 장소에서 다시 벌어졌다. 중학교로 진학한 녀석이 같은 반 친구들의 가방을 뒤져 돈을 훔쳤다는 소식을 들었다. 체벌은 아무런 효과가 없었던 것이다.
이 사건 이후로 잔소리를 늘어놓을 지언정 체벌은 하지 않았다. 힘에 의해 학생들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아동학대 방지법으로 잔소리도 하면 안되는 시대이다. 학생들의 모든 생활지도 권한과 책임은 가정에게 있다고 알리며 공을 넘긴다.
'할수도 없는 아이들 행동변화를 난 왜그리 오래 잡고 있었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