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 부재
딴에는 어울리겠다고 접근한다. 누군가의 등에 올라타거나 동물을 빗댄 별명을 지어서 마음껏 부른다. 분명 이 녀석은 다른 또래들이 하는 행위를 보고 따라한 것이다. 그런데 의아할 것이다. 다른 친구들이 같은 행위를 했을 때는 별문제 없이 즐겁게 넘어갔건만, 자신이 하면 문제가 되어버리니 말이다. 전혀 상황이 납득되지 않고 억울한 표정이다. 자신의 모든 행위에 불만을 드러낸 상대와 이를 고자질한 또래, 그리고 그렇게 하면 안 된다 말하는 교사인 나까지 이해불가 상황으로 보인다.
"왜 반응이 다를까?"
이미 눈물 콧물 범벅이다. 한해를 겪어보니 저런 행위 또한 방어기제가 아닐까 의심도 든다. 이미 이런 질문과 이유는 수십 차례도 더 언급해 왔던 사안이다. 이 정도면 뇌리에 기억될 법도 하건만 티끌만큼의 달라짐도 없으니 말이다. 순한 아이는 절대 아니다. 손가락 욕부터 거친 말까지 할 수 있는 수위는 이미 넘어섰다. 혼남을 줄이기 위한 위장전술이 눈물 콧물이라 짐작하는 까닭이다.
이 녀석은 또래와 교감이 단절된 상태다. 호의적 감정은 주고받음이 있어어 한다. 상대 표정을 읽고 눈치껏 행동해야 한다. 이 녀석은 그럴 의지가 없다. 오롯이 내 감정만 충실하게 행동으로 드러낼 뿐이다. 그래서 자신이 즐겁게 논다고 친구를 놀리며 좋아라 한다. 그 대상의 표정이 일그러짐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이제 몇몇 아이들은 이 녀석이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도 매우 거북함을 온몸으로 드러낸다. 또래와 정서적 교감이 철저하게 단절된 상태로 살아왔지 싶다.
내겐 인간을 개조할 신적 능력은 없다. 난 직업상 교사일 뿐 정서적 측면을 담당하는 종교지도자 또한 아니다. 이 아이들의 모든 것을 책임지는 부모 또한 아니다.
아이는 어른의 축소판인 같은 레벨의 인간이다. 살아온 행동양식을 고집스레 유지하려는 성향들 또한 기성세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 간혹 스펀지 같이 지도하는 바를 빨아들이는 녀석들도 있긴 하지만 신기하게도 이런 부류의 아이들은 대인관계나 학습적인 측면이 사실상 거의 완성형에 가깝다. 어딘가 이가 빠진 녀석들이 오히려 고집스럽게 버티며 가르치는 모든 것을 튕겨낸다. 이제까지 25년 가르쳤던 녀석들이 그래왔다.
갑작스레 눈치가 생겨 타인을 고려하리라 기대하지 않는다. 가급적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으면 싶은 바람일 뿐이다. 물론 문제는 계속 일어났다. 앞으로도 마찬가지라 에측된다. 기성세대가 되면 어떠할지는 상상조차 하기 싫다.